-이해되지 않는 자리에서 곁을 지킨다는 것-
“그 사람은 내가 왜 힘든지 이해하지 못해요. 그래서, 더 외로운 거예요.”
그렁그렁하던 그녀의 눈에서 결국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온 그녀의 고통을 그는 끝내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고통이라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것이다. 고통의 곁에 있는 타인은 그것에 대해 그저 상상하고 짐작할 뿐이다. 그러니 공감은 결국, 누군가의 고통을 잠시 자기 것처럼 상상해볼 수 있는 감수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상상은 언제나 현실과 다르다. 그래서 아주 가까운 관계라 하더라도 우리는 늘 "이해의 공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녀는 바로 그 공백 때문에 외롭다고 말한다.
외로움이라는 감정 끝에서, 그녀는 결국 이 공백이 사랑의 부재를 증명한다고 믿게 되었고, 그 믿음이 그녀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나는 조심스레 반문한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랑은 불가능한 것인지요?”
“그럼… 가능한가요? 사랑이?”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우리는 사랑하면 상대를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상대의 행동과 마음, 침묵의 이유까지 투명하게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 마음이 끝내 이해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그 좁고 어둑한 틈에서 우리는 날카롭고 차가운 아픔을 느끼곤 한다.
알 수 없음이 주는 불안,
닿지 못함이 남기는 외로움,
그리고 그 사이에 깃든 미묘한 무력감 같은 것들.
사랑은 종종 그 지점에서 시험을 받는다. 어쩌면 성급히 조언하거나 단정하고, 해석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도 사실은 그 불안을 견디기 어려워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상대를 돕고 싶은 마음보다 내 안의 혼란을 빨리 정리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오히려 상대를 더 먼 곳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이해되지 않는 자리에서의 사랑은, 말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일인지 모른다.
판단을 유보하고, 상대의 세계가 당장 나에게 열리지 않아도
문 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 일.
그 사람의 마음이 아직 언어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한 채 함께 머무르는 것.
그저 함께 머문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이 아니라, 가장 깊은 존중의 몸짓이 된다.
그 지점에서 비로소 누군가의 고통은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은, 서두르지 않는 방식으로 깊어진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일,
그럼에도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일.
어쩌면 그것이 사랑이 열어가는
어렵지만 유일한 가능성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