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자기주도성을 회복하는 것이 이 환자의 핵심 과제라고 생각해요.”
치료가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 환자에 대한 증례 토론 자리에서, 동료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부모의 기대에 못 이겨 선택한 진로, 그 이후 꾸역꾸역 버텨온 삶. 오랫동안 무기력과 우울 속에 머물러 있던 환자는 분명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오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의 말을 들으며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녀에게 자기주도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정말로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가면 우리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걸까?
더 나아가, 우리는 과연 오롯이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일까?
자기주도성을 회복하는 것이 곧 좋은 삶이라는 믿음은,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근대 이후 인간은 자연보다는 인간이,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능동적인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믿어왔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고, 계획하고, 통제하며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 결과 현대 사회에서 ‘자기주도적인 인간’의 전형은 대개 이렇다.
빽빽한 빌딩 숲 속 오피스에서, 자기 능력으로 경쟁을 뚫고 성공을 쟁취해 나가는 모습.
자기주도성은 어느새 현대인의 삶에서 세속적 성공을 가늠하는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오죽하면, 입시현장에서 늘 회자되는 말이 "자기주도적 학습"이 아닌가? 그러나 기나긴 "자기주도적 학습" 끝에 많은 아이들이 마주하게 되는 삶은 "자기주도적 삶"일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오롯이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세상 속에서, 타인과 자연, 수많은 다른 존재들과 함께 존재한다. 삶이란 나의 욕구와 지향만으로 꾸려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타인, 그리고 자연과 끊임없이 조율해가는 과정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서로에게 빚을 지며 살아간다.
우리는 먹고 살아가기 위해 동식물을 필요로 하고, 성장하기 위해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어쩌면 다른 존재 역시 나를 필요로 하거나, 나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우리는 그렇게 다른 존재와 얽혀 살아가는 존재다.
그렇다면 인간은 ‘능동적 주체’라기보다, 다른 존재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수동적 주체성’을 지닌 연약한 존재에 가깝지 않을까.
이 수동성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자기주도적인 삶은 어떤 모습이 될까.
아마도 그것은 다른 존재에 무감한 채,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홀로 우뚝 서 있는 삶일지도 모른다.
강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관계도, 온기도, 회복의 가능성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 말이다.
그러니 어쩌면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는
조금 덜 주도적이어도 괜찮은 존재,
서로에게 조금 더 보드랍고, 조금 더 연약한 존재가 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