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실망인데요? 관계가 왜 이렇게 힘든지에 대해 답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기나긴 임상심리검사 결과를 설명한 끝에, 나는 그녀에게 ‘사회불안장애’라는 병명을 말했다.
그 병명이 그녀가 기대했던, 만족스러운 답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나는 문득 마음이 불편해져서, 변명을 내뱉듯 말했다.
“심리검사는 개인이 가진 마음의 병리에 대해 이야기할 뿐, 인생의 답을 주지는 않아요. 그건 아무래도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겠죠.”
“음… 선생님 말도 틀리진 않네요.
제가 여기 와서 인생의 답을 찾으려 했네요.”
그녀는 옅게 미소지으며 진료실을 나섰다.
아마도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녀는 그녀 나름의 답을 찾아가며 살아가리라 믿어보고 싶다.
어차피 그 답은, 내가 찾아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삶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면 혹시 ADHD가 아닌지 묻고,
삶이 무기력하고 공허해지면 우울증은 아닌지 질문한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인간의 고통을 병명으로 번역하고,
그 병에 대한 치료를 제시하는 곳이다.
약을 쓰고, 상담을 하고, 증상을 조절한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고통이 정신질환일 리는 없다.
약이나 심리치료가 인생에 대한 해답까지 제시해 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진료실에서는 종종, 치료가 아니라 ‘답’을 기대하는 눈빛을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잠시 흔들린다.
‘이 사람들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걸까.’
나는 그저 의사일 뿐인데 말이다. 현대사회는 많은 고통을 의료의 영역으로 옮겨 놓았다.
특히 심리적 고통은 쉽게 정신질환이라는 언어로 번역된다.
일단 이렇게 번역이 끝나면 해결책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명확해진다.
약을 먹거나 상담을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마치 치료만 받으면 삶도 함께 나아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정신건강의학과가 할 수 있는 일은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삶 전체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일에 더 가깝다.
병을 치료할 수는 있어도,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그래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으려 하면
어쩌면 필연적으로 실망하게 된다.
이곳은 의미를 설명하는 곳이 아니라,
증상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질문들은 결국 병원이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서 오래 붙들고 있어야만 답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