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by 홑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던 할머니 목소리가 가끔 떠오른다. 방바닥을 손끝으로 사뿐사뿐 두드리며 박자 맞춰 부르던 그 노래.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몰랐을 옛 노래. 남인수의 <청춘고백>이다.


이상하게 꼬맹이 시절에도 가사 속 저 마음이 이해가 됐더랬다. 떨어져서 혼자 있을 때는 보고 싶고 함께 있고 싶다가도, 막상 만나면 지루하고 맥없어지는 마음. 좋다, 싫다가 선명하지 못하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간사하고 변덕스러운 마음의 역사가 이렇게나 유구하다. 이런 감정은 연애 관계에 있어 특히 도드라졌지만, 남녀를 떠나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대체로 그러했다. 사람이 좋으면서도 싫다. 곁에 누군가 있었으면 싶다가도 어서 빨리 나만의 공간에 혼자 있고 싶다. 이런 모순된 마음 때문에 관계 맺음이 쉽지가 않았다. 적정한 거리 찾기란 너무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졌다.


남들은 어떻게 저렇게 경계 없이 허물없이 어울리나, 어찌 저리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 수 있나, 선뜻선뜻 먼저 말을 걸고 뭔가 함께하자고 제안하는 저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건가, 하면서 내게 없는 재주를 가진 사람을 경탄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선망한 적도 있다. 그러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진심이 아닌 것 같은 말, 확신에 찬 위험한 말, 돌아서면 잊어버릴 말, 자기만 앞세우는 말 같아서 나는 저렇게 될 수는 없겠구나 싶을 때도 있었다. 한 발 더 나가서 저렇게 되고 싶지 않구나 하는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나는 너무 내향적이고 자의식이 강했다.


맞아요, 대문자 I, 접니다. (이미지: unsplash)


예전엔 이런 내가 참 별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이런 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껏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나서는 것을 좋아하고 또 한번 나서면 기가 막히게 임무 수행이나 목표 달성(!)을 잘 해낸다고 생각했던 H마저도 최근에 “나 정말 I야”라는 커밍아웃(?)을 해서 박장대소를 했었다.

“에이, 설마. 네가, 그럴 리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어떻게 네가. 그럴 리가(절레절레).”

겉으로는 세상 활달하고 사교적으로 보이는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내성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내향형 인간은 타인과 어울릴 때 외향인의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하는가 보다(물론 나는 지금도 H가 내향형 인간이라는 말을 반만 믿기는 한다).

하지만 내향형 인간이라고 해서 100퍼센트의 ‘혼자’를 바라는 건 아니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라는 책제목에 투영되어 있듯, 내향형 인간에게는(혹은 모든 인간에게는) 이중적 욕구가 있다.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 막상 만나서 시들해질지언정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어울리고 싶은 마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가도 누군가와 풍성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 혼자서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하며 성장하고 넓어지고 싶은 마음.


그날 H와 S의 직장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간다는 나를 두고 직장으로 복귀해야 하는 두 사람은 마냥 부러워했다. 회사 일도 바쁘고 주말에도 아이들과 함께하느라 도통 혼자 있을 시간이 없다는 H는 거의 항상 혼자인 내 시간을 떼어주고 싶을 만큼 고독의 시간을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S는 자기도 혼자 일하는 게 체질이라며 직장생활을 지긋지긋해했다. 사실 혼자 살고, 혼자 일하는 생활에 호사스러운 구석이 있는 건 맞다. 오로지 나의 취향과 필요에 따라 내 생활과 공간을 직조할 수 있고(조도와 볼륨과 가구 배치, 모든 것에서 협상할 필요가 없다), 타인의 방해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며(집중을 깨뜨릴 사람이 ‘나 이외에는’ 없고, 일하다가 별안간 노래를 부른대도 이상하게 볼 사람이 없다), 내 기준에 있어 일의 하한선에 못 미치는 일은 안 할 자유(차라리 굶고 말지, 이 일은 안 해!)가 있으니까.


하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직업적으로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고독은 조금만 무게추가 더해져도, 조금만 채도가 낮아져도 고립이나 우울로 가기 쉽기 때문이다. 혼자가 좋고 효율적이라서 적극적으로 선택했든, 혹은 그 선택지가 그나마 나아서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했든, 어쨌든 혼자 살고 더구나 일까지 혼자 하는 사람은 고독이 너무 무겁거나 짙어지지 않도록 절박한 마음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 외줄 타기는 꽤 위태로워서 삐끗하면 균형을 잃기 쉽다. 내가 직장생활과 프리랜서 생활을 번갈아가며 했던 데도 이런 이유가 있었다.



88f35247-f9c6-4ef0-9e1d-515b53fe4f80.png 대체로 혼자, 때때로 함께 (이미지: Chat GPT)


말만 ‘프리’랜서지 자유는커녕 클라이언트가 제시한 마감일에 휘둘려 온통 일만 하는 생활이 이어지고, 타인과의 접점이 줄어들어 내 세계가 점점 좁아지는 것 같다면 위험신호다. 작업 환경에 변화가 간절히 필요한데 혼자서는 이 패턴을 깨고 변화를 모색하기 어려워서, 그게 답이라고 확신하지도 못한 채 다시 직장을 찾곤 했었다. 이제 다시 프리랜서 생활로 돌아온 지 1년 반째. ‘혼자와 함께’의 균형 잡기는 여전히 뒤뚱뒤뚱 진행 중이다. 그래도 이전과 달리 마음의 균형추가 고립 쪽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몇 가지 방비책을 마련해두었다.




우선 하루에 한 번은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산책을 하든, 시장에 가든, 카페에 가든, 도서관에 가든. 이렇게 정해놓지 않으면 내가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한 달이고 집에만 머무를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타고난 집순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일과 안에 ‘일단 밖으로!’를 끼워 넣을 필요가 있다. 뒤섞여 어울리진 않더라도 사람들과 가까이 호흡하고 짧은 산책이라도 하고 나면, 고여 있는 내면에 바람이 불어오면서 환기가 된다. 발걸음을 따라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진다. 좋은 리듬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발을 까딱이게 만드는 법, 이 작은 외출이 나의 하루에 그런 리듬감을 부여해준다.



세상은 문 밖에 있다 (이미지: unsplash)


그리고 또 하나. 만나자는 제안의 70퍼센트 정도는 받아들인다(다시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누가 만나자고 하면 무조건 만나야지’ 마음먹고 실천해봤는데 그건 좀 무리였다. 70퍼센트 정도가 적당하다). 마감 생각을 하면 나가서 놀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았다. 그건 에너지가 흩어져 없어지는 일로만 여겨졌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고 해서 100퍼센트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도 아니면서 마음만 조급했다. 하지만 좋은 기회나 기억할 만한 일은 언제나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에서 온다. 사람을 만나면 불편하고 피곤할 때도 있지만 그만큼 충전이 될 때도 많다. 이건 경험칙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함께 산책을 하며,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며, 전시나 공연을 보고 충만해진 기분을 이야기하며, 맛있다고 소문난 집에서 이러니저러니 맛에 대해 시시콜콜 논하면서, 오래된 추억담에 깔깔 웃으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며, 함께 도모할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나누며,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고 안부를 챙기며…… 얼마나 큰 위로를 얻었던가. 동떨어진 혼자가 아니라 멀찍이나마 함께 길을 걷는 이가 있다는 감각에 얼마나 안심했던가. 다른 사람이 내민 손을 납죽납죽 잘 잡는 날이 계속 이어진다면, 어느 날인가는 내가 누군가에게 먼저 만나자고, 무엇인가를 같이하자고 권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슬쩍 웃기도 하는 요즈음이다.


마지막으로, 지금보다 내가 확장될 수 있는 일이라면 두렵더라도 시도해본다. 이 글도 그 시도의 일환이다. 늘 하던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리랜서에게는 변화구도 필요하다. 같은 일만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정체되기 쉽다. 에세이를 써보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듣고 한참 망설였다. ‘내가 내 이야기를? 내가 글까지 써가며 뭔가를 말한다고? 할 말이 뭐가 있나? 내가 그럴 만한 감이 되나?’ 그런데 마음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다른 감정이 떠올랐다. 내가 조금이나마 넓어질 수 있다면, 이 이야기에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공감하고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해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이 나도 모르게 거기 있었다. 평생 책을 만들어왔으니, 내 이야기를 책으로 해볼 수도 있으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밀어준 손을 잡는 것이 지금의 내게는 철칙이다.


jamille-garsula--V7VUTPer9M-unsplash.jpg 그대, 내게 손 내밀어주오. 내 덥썩 잡으리다. (이미지: unsplash)


나와 마찬가지로 혼자 살고 혼자 일했던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혼자 있는다는 것, 그 모든 다양한 형태는―혼자 살거나, 싱글이거나, 배우자나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갖거나―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고독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볼 의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교적인 생활을 가꾸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기꺼이 취약해질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사적인 공간이 충분하되 지속적인 교유가 있는” 생활, 그러니까 “프라이버시와 교유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 역시 이제 막 그 평균대 위에서 균형 잡는 법을 터득해가려는 참이다.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 마음이 희미해지기 전에 곧바로 문자라도 남긴다. 만나면 어차피 곧 시들해지니 보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대신, 시들해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생각해본다. 완벽한 고독은 어디에도 없다. 밀폐된 고독은 질식해서 금세 고립으로 변해버린다. 완벽한 연결도 없다. 이심전심의 경지나 인연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오랫동안 교유할 때 자연스레 혼자이면서도 함께인 조화로운 관계를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고독과 연결, 그 사이에서 지치지 않고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마도 인생이겠다. 오늘도 그 여정 위에 선 나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느슨하고 가느다랗게 연결된 마음을 건넨다.





★ 연결 콘텐츠


남인수의 <청춘고백> 1955년

https://www.youtube.com/watch?v=SDGpX0QwArU


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0725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