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침대가 삐걱거린다. 침대 다리를 바닥에 끌며 이리저리 위치를 몇 번 옮긴 탓이다. 세상만사 귀찮아하는 주제에 왜 이리 가구 배치는 자주 바꾸고 싶어 하는지……. 침대 다리 어딘가가 헐거워진 모양인데 두꺼운 매트리스를 혼자서 내릴 엄두가 나지 않아서 문제 파악을 차일피일 미뤘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삐그덕삐그덕. 이런, 침대 밑에서 사다코가 나올 것 같다. 고쳐야겠지. 무엇보다 허리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라 방법을 찾긴 찾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얼마 전에 읽고 침대 머리맡에 둔 샛노란 표지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마리아 칼만의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과감한 터치의 그림에 간결한 문장을 곁들인 형식이라 가볍게 넘기며 머리 식히기에 좋은데, 내내 잔잔하다가 마지막에 감동이 폭죽처럼 터진다. 책 속에는 뭔가를 들고 있는 각양각색의 여자들이 나온다. 닭, 컵, 빨간 풍선, 거품기, 양배추, 수영모……. 아, 그래. 그렇지. 지금은 내가 드릴을 손에 들 때로구나. 드릴을 들고 일상을 수선할 때구나. 그날 바로 마음을 먹고 커다란 매트리스를 낑낑거리며 내렸다.
매트리스 아래의 묵직한 평상형 상판도 분리해서 한쪽으로 치워놓으니 앙상한 프레임만 남았다. 이제 다리를 하나씩 점검하면 된다. 한 손에 전동 드릴을 들고 나의 숙면을 방해한 지점을 기필코 찾아내겠다고 결의를 다진다. 그리고 마침내, 이놈이군! 흔들거리는 범인을 찾아 드릴로 단단히 고정한다. 속이 다 시원하다.
둘이 살다가 다시 혼자 살기로 결정하고 새로 구한 집은 낡고 못생겼었다. 수중의 돈으로는 좁은 신축 아니면 넓지만 낡디낡은 구축 다세대밖에 구할 수 없었고, 집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프리랜서에게 좁은 집은 너무 답답할 것 같았다. 구축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마음먹고 집주인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내가 집을 어떻게 고치든 상관하지 않기로. 사실 그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집은 무던한 내 눈에도 손볼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설령 내가 천하의 ‘똥손’이라도 거기서 뭘 더 망치기도 어려울 정도였달까.
집주인은 도배와 장판만 새로 해주었다. 아, 방문 페인트칠도 해주시려 했는데 사람을 안 쓰고 본인이 직접 판을 벌이시더만 중간에 내빼신 통에 내가 친구들과 마무리했다. 톰 소여는 페인트칠이 재밌다면서 친구들을 꼬드겼지만, 굳이 사탕발림으로 속여넘기지 않아도 W와 J가 도와준 덕분에 다시 하는 출발이 마냥 적적하지만은 않았다.
그다음에는 족히 30년 동안 한 번도 교체하지 않고 사용한 듯한 방 문고리와 전등 스위치 커버를 갈았고, 너덜너덜한 갈색 신발장을 하얀 시트지로 말끔하게 덧씌웠다. 의외로 나는 손재주가 있는 편이었다. 설명서만 보고도 문고리를 거뜬하게 교체했고, 시트지는 기포 하나 없이 말끔하게 붙여냈다. ‘아, 내 적성은 이것이었나’ 싶은 실없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자주색 욕조에 욕조용 페인트를 하얗게 칠했고(페인트 주제에 가격이 10만 원이나 했는데, 돈을 좀 쓰자 싶었다. 낡은 자주색 욕조는 아무리 흐린 눈을 한대도 그냥 보아 넘길 수가 없었다), 천장 등도 직접 갈았다. 바야흐로 셀프 인테리어 대 유행의 시대였다. 유행에 발맞추는 데는 영 재주가 없는 편인데 어쩌다 보니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그것도 꽤나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의 기술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자립 생존력이 한 뼘씩 상승했다.
물론 모든 게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1인 가구의 친구, 이케아의 캐비닛을 조립하려는데 설명서를 보다가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이케아의 직관적인 설명서에는 두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조립에 두 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이제 내게는 같이 조립할 사람이 없는데’라는 실감이 엄습했다. 그런 체감은 기습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때려눕힌다. 불시의 공격에 잠시 멍하니 있자니 슬슬 오기가 뻗쳤다. 둘이 하면 더 쉽겠지만 혼자라고 못 할 것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리긴 했지만 어쨌거나 완성의 순간은 찾아왔고, 문짝 위아래를 뒤집어 달았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뭐, 쓰는 데 문제없으니 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직 ‘끝판 왕’이 남았다. 바로 책장 조립. 집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할 가구라 고심해서 골랐는데 네모 칸을 이루는 한 면 한 면의 아귀를 맞춰 조립해서 쌓고 확장해나가는 방식이다. 살 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한 땀 한 땀 작업해서 벽면 하나를 꽉 채우려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반나절을 손 드라이버로 야무지게(야무지게 손목과 손아귀가 결딴나는 느낌이었다) 조립했더니 책장은 조금씩 모양을 갖춰가는 반면 체력과 정신은 몽롱하게 해체되고 말았다. 그래도 시작했으니 끝을 볼 수밖에. 책을 방바닥에 부려놓고 구석구석 쌓아놓은 채로 살 수는 없지 않나. 내 인생에는 백업[backup], 그러니까 대체인력이 없다. 스스로 걱실걱실 해나가는 수밖에.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 뒤돌아봐도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면 가슴께가 뻥 뚫린 것처럼 허하다. 그런 한편으로 기묘하게 힘이 나기도 한다. 혼자여서 더 기운이 생기는 이상한 순간이 있다. 기댈 곳이 없어서 더 꼿꼿하게 서게 되는 날이 늘어난다. 삶을 완전히 흩뜨려서 새로운 곳에 부려놓아야 할 때 이런 감각은 도움이 된다. 힘을 그러모아 책장 조립을 끝내고 책을 착착 꽂아놓으니 하루가 저물었다. ‘내가 왜 이걸……’ 하는 후회의 시간을 지나, 완성된 책장을 보니 처음 골랐을 때 상상했던 것만큼 근사하다. 언제 후회했었나 싶게 마음이 환해진다. 어정쩡하게 포기하지 않으면, 끝까지 해내면 후회는 남지 않는 법이라는 걸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끝판 왕을 깨고도 보너스 스테이지가 남았다. 다음 날의 미션은 선반 달기. 선반을 달려면 벽에 꽤 큰 구멍을 뚫어야 한다. 드릴로 몇 번이고 시도해봤지만 어림도 없다. 구멍은커녕 흠집 정도밖에 안 났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콘크리트 벽을 뚫으려면 해머 드릴이라는 새로운 공구가 필요하단다. 척 봐도 들고 위압감이 드는 모양새다. 다시 망연자실. 힘이 쭉 빠져서 멍하니 검색 결과를 계속 뒤적이다가 구세주 같은 정보를 만났다. 철물점이나 주민센터에서 해머 드릴을 대여할 수 있다는 것. 궁하면 통한다더니, 어떻게든 굴러가게 되어 있구나.
지금이 아니면 공구가 도망이라도 갈 것처럼 서둘러 근처 철물점을 찾았다. 큼직하고 묵직한 공구를 빌려서 개선장군처럼 돌아오는 그 길에 햇살이 환하게 뚝 떨어졌다. 해머 드릴을 든 그림자 속 나는 이미 승리자의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선반까지 달고 나니 이제야 집 정리가 어느 정도 된 것 같다. 완벽하달 수는 없지만 비할 데 없이 만족스럽다. 딱 좋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에 나오는 여자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네들의 삶이, 그네들의 일상이 보인다. 그들이 들고 있는 건 단순한 물건이 아니고 돌봄이고 사랑이고 기쁨이고, 때로는 상처이고 우울이고 분노다. 마냥 혼자일 수 없었던 할머니 시대, 어머니 시대 그리고 어쩌면 우리 시대의 여자들이 품은 복합적인 감정이다. 멍하니 그림을 보고 문장을 눈으로 좇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꼭 버티세요(hold on)’라는 문구를 만나면 저절로 코끝이 찡해지고 만다. 그 말이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 자기 일상을 고치고 복구하고 다독이는 무엇인가도 놓치지 말고 꽉 붙들라는 말로 들렸다. 내가 책을 보고 곧장 공구를 든 이유다.
내 일상을 건사할 사람이 나뿐이라는 막막함 속에는 자유로움도 함께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 자유 속에서 지금껏 몰랐던 내 안의 가능성이 자라나기도 한다. 공허가 삶에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는 아이러니는 살짝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딱 좋은’ 순간은 타인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결국에는 내가 완결해야 하는 몫이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손으로 조인 삶의 나사가 내내 든든하다.
☆연결 콘텐츠
<마이라 칼만,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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