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동 블루스(1)

전세사기에서 살아남기 - 초록마을로

by 홑들
2022년 어느 새벽의 스트레스 지수

2022년 여름 화곡동. 6시 39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명치가 조여와 눈이 떠졌다. 스마트워치를 확인하니 스트레스 지수가 맥스를 찍고 있었다. 강서구, 그중에서도 화곡동은 당시 전세 사기의 온상이었고 나는 그 한복판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벌써 열세 번째 집. 그토록 많은 이사를 다니면서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사기를 작정한 판에서 나의 얄팍한 경험치는 단숨에 무력해지고 말았다.


이동하는 시간은 아무래도 아깝고 힘들다. 프리랜서 시기에는 어디에 살아도 상관없지만 직장을 다닐 때는 늘 ‘직장 가까이’가 주거지 선택의 우선순위였다. 만원 버스나 전철을 타고 이동하자면 예나 지금이나 기가 빨리고 급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난번 직장과 가까워 선택한 화곡동은, 서울 서북부만 맴맴 돌던 내게 꽤 낯선 장소였다.


화곡동 첫 집은 직장까지 전철로 두 정거장. 두 번째 집은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였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나는 그 두 곳 모두에서 전세 사기를 당했다. 출퇴근을 여유롭게 하고 집에서는 편히 숨을 돌리고 싶다는 소박한 욕망이 서울에서는 너무 큰 욕심이었나 보다. 서울이라는 곳은 안전하고 편안한 주거지를 바랄 때마다 손에 쥔 거의 모든 것을 판돈으로 요구했다.




#1. 초록마을로 3길


“이만한 곳이 없지요. 잘 선택하신 거예요. 걱정할 것 없다니까요.”

첫 집을 구할 때, 늘 그렇듯 몇 군데의 집을 구경하고 그중 한 곳을 선택했다. 그동안 쓰던 냉장고 등속을 이번에야말로 다 버릴 생각이었기에 가전제품이 옵션으로 되어 있는 깔끔한 신축을 골랐다. 중개인도 은근슬쩍 권하던 그 집은 단독주택 두 채를 헐어서 올린 8층짜리 신축 건물이었다. 등기부등본에서 표제부, 갑구, 을구, 말소된 권리 이력까지 확인했다. 호실별 구분등기 여부도 확인했고, 계약을 할 때는 해당 호실에 설정된 근저당권을 잔금 지급과 동시에 말소한다는 특약까지 야무지게 써 넣었다.

시세보다 약간 비싸다는 위험요소는 깔끔한 마감과 풀옵션이라는 장점 앞에 희석됐고, 지정한 은행원에게 대출을 받으면 건축주가 이자를 지원한다는 조건에도 혹했고(세상에는 공짜가 없는데 그때 나는 무엇에 씌었을까, 심지어 대출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전세보증금반환보험도 들어준다고 했다(정책이 바뀌어 이미 집주인의 허가 없이 세입자가 보험을 들 수 있게 되었는데 웬 생색). 그리고 전세 계약을 마치면 매매를 해서 집주인이 바뀔 거라고 했다. 싸한 기분이 없지 않았으나 서류나 절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악의는 선의보다 훨씬 성실하고, 사기꾼의 계획과 실행은 법보다 훨씬 부지런했다. 일은 해당 건물에서 2년을 살고 갱신 의사까지 전달하고 나서 불거졌다. 한 집 두 집 이사를 가더니 건물에 빈집이 늘어가고 우편함에는 전세보증금반환보험 시행사인 허그(Hug)에서 온 우편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다른 호실의 등기부등본도 확인해보니, 같은 건물에 두세 채씩 집을 산 임대인들이 보였다. 우리 집 주인도 해당 건물에 두 채를 가지고 있었다. 사기를 칠 의도가 있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어도, 이미 건물 전체에 문제는 번질 대로 번진 상태였다.

IMG_3452.JPG 편안해야 할 보금자리가 한순간에 탈출해야 할 곳으로 변해버리다

빈집이 늘어나면서 아직 남은 적은 수의 세입자들은 건물에 부과되는 공용 공과금을 나눠 내야 했다. 주차타워 비용도 거기 포함되어 있었는데 나처럼 차가 없는 사람에게도 과도한 그 비용을 부과하는 건 매우 불합리해 보였다. 사람이 많을 때는 그냥 넘길 수 있던 불합리가, 사람이 줄자 매일같이 신경을 긁었다. 주차타워 사용을 중지하거나, 사용하는 사람이 조금 더 비용을 많이 내거나, 아니면 이용자에게만 부과하는 식으로 뭔가 개선점을 찾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편리함에 익숙해진 차량 주인들은 아무것도 포기하거나 양보하지 않으려 했다. 그 폐허에서 우리는 점점 더 강퍅해져서 서로의 멱살을 잡았다. 피해자끼리 서로 미워하고 다투는 상황은 나를 더 견디기 어렵게 만들었다. 더구나 허그에서 전세금을 대신 반환해준 빈집임에도 뻔뻔한 집주인들은 단기임대를 내주었는지, 다소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까지 건물에 드나들고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집주인과의 지루하고 숨 막히는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집을 빼겠다는 나와 돌려줄 돈이 없다는 집주인 사이에 타협점은 없어 보였다. 막판에 그는 “허그에서 보증금 받아서 나가세요!”라며 소리치기까지 했다. 후안무치. 아니, 이 뻔뻔함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황당함에 뒤로 넘어가는 것도 잠시, 허그에서 전세금을 반환받아 나가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할 일이 많다. 이사할 집도 알아봐야 하고, 그전에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려면 타임테이블도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바로 전세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집주인은 수령하지 않았다. ‘폐문 부재’라는 도장이 찍힌 내용증명을 반송받기를 세 번째. 여기까지 했으면 해지 통보를 했다는 증빙자료로 이를 제출할 수 있다. 이것만 해도 시간을 꽤 잡아먹는다. 하지만 이제 발걸음을 뗐을 뿐, 아직 갈 길이 멀고 멀다. 일단은 허그와 통화 연결 자체가 어려웠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틈틈이 눈치를 봐가며 전화를 하는데 열 번 전화하면 한 번 통화가 될까 말까 했다. 답답하고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 임차권등기라는 것도 이때 처음 설정해봤다(이때는 허그를 통해서 했고, 두 번째에는 셀프로 진행했다). 이래저래 시간과 에너지와 수명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필요한 절차를 모두 진행하고 마지막으로 허그와 상의해서 이사 날짜를 정하면, 집주인에게 통보해야 한다. 그동안 연락 한번을 받지 않던 집주인은 통보 문자를 보고 이사 날짜에 일찌감치 나타나서 나를 기함하게 만들었다.

열린 현관문으로 당당하게 들어온 그는 허락도 안 받고 마지막으로 남은 짐인 내 소파에 앉더니 “이사 가니 좋아요?”라며 빈정거렸다. 그러고는 “여기 벽에 이런 걸 달아놓으면 어떻게 하나요?”라며 트집을 잡았다. 흠 하나 없이 집을 깨끗하게 사용했건만 억지와 위협은 가까웠고 상식과 법은 참으로 멀리 있었다. 임대인은 내 앞에서 허그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도 안 되는 클레임을 늘어놓는 그의 목소리는 기이할 만큼 당당했다. 그리고 그 담당자는 어이없게도 임대인의 편을 들었다.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전세금을 오늘 지급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삿짐을 다 빼서 다음 집으로 센터 사람들을 보내놓은 상태였다. 그쪽에서는 잔금을 치르지 않으면 비밀번호를 내줄 수 없다고 했다. 이 임대인이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자기 돈 한 푼 안 들이고 빌라를 사고, 당연히 내주어야 할 돈을 안 주겠다고 생짜를 부리고, 의무는 방기하고 있지도 않은 권리를 주장하며 사람 피를 말리는 이유는 오로지 돈에 있었다. 내가 곤란해할수록 그는 더욱 느긋하게 굴었다.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여기서 시간을 계속 끌 수도 없었다. 나는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직 ‘지금 당장 이사를 가야 하는 약자’일 뿐이었다. 결국 약간의 금액을 그의 손에 쥐여 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건축주, 부동산 중개사무소, 은행 대출 담당자, 임대인, (어쩌면) 허그 담당자까지도 한통속이었지 않나 싶다. 심지어 건물 관리업체까지도. 임대인은 마지막까지도 “여기 다 아는 사람들이다”라면서 그들끼리의 결속을 자랑하며 의기양양했다. “화곡동에 카르텔이 있다”라는 소리까지 부끄러운 줄 모르고 했다. 가해자가 더 고개를 꼿꼿이 쳐드는 이 기막힌 전복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두 번째 전세사기 이야기는 다음 회차에 이어집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