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하고 의연한 나를 만나는 법

1인분의 등산 여행

by 홑들

거의 매일 빼놓지 않고 산책을 한다. 어디서든 잘 걸을 수 있도록 늘 길이 잘 든 운동화를 신는다. 어떤 날은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제멋대로 엉키게 내버려두고, 어떤 날은 딱 하나의 단어만 골라서 입속에서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굴려본다. 발바닥이 지면을 차는 리듬에 따라 생각은 멈칫거리기도 하고, 숨차게 앞서나가기도 한다.

그해 나는 내내 걸었다. 힘없이 축 처져서 걷지는 않았다. 혹시 그러면 조금이나마 더 내가 단단해질까 싶어 온몸에 잔뜩 힘을 주고 걸었다. 산책하는 동안만이라도 똑바로 걷고 싶었다. 이어폰은 아예 두고 나왔다. 음악에 기대 괜스레 흥이 날까 봐, 혹은 내 기분이 외부의 자극으로 손쉽게 휘발되어버릴까 봐, 생각이 원치 않는 데로 휩쓸려갈까 봐. 이제 와 돌아보면 나는 그저 나의 슬픔을 애지중지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만, 그래도 걷는 동안 생각은 차분히 정리되었고, 마음도 많이 회복되었다. 그 깊은 적막 속에서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었다.


ChatGPT Image 2026년 1월 16일 오후 08_26_46.png 산책을 하는 동안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된다 (챗 gpt 생성 이미지)


우리는 늘 ‘혼자’를 말하지만, 사실 오롯이 혼자인 시간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함께’를 위해 카페의 백색소음이나 타인의 시선을 쇼핑하듯 찾아다닌다. 유튜브에는 ‘스터디 위드 미’나 ‘리드 위드 미’ 같은 영상이 넘쳐난다. 화면 속 모르는 이의 책장 넘기는 소리에 안심하며 내 책장을 넘기는 풍경이라니. 어쩌면 인간은 혼자 하는 일을 굳이 ‘함께’라는 외피로 감싸야만 안심하는 유약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외로움을 피하려 선택한 그 ‘수동적인 소음’이 결국 내면을 더 어지럽힌다는 점이다. 집중력을 위해 틀어놓은 음악이 오히려 생각을 앗아가고, 적적해서 켜둔 팟캐스트가 잠을 쫓는다. 박연준 시인「혼자와 세계」에서 “혼자는 외로운 순간에도 바쁘다”고 썼는데, 요즘의 혼자를 이에 빗대자면 적막한 순간에도 너무 시끄럽다.


내면의 소음이 산책만으로 가라앉지 않을 때면 배낭을 둘러멘다. 동네 뒷산도 좋지만 가끔은 ‘알레버스’ 같은 1인 등산객 전용 버스에 몸을 싣는다. 길치이자 뚜벅이인 내게 이 버스는 최적의 이동 수단이다.

처음 곰배령에 가던 날, 새벽의 푸르스름한 공기를 뚫고 사당역 탑승지로 향했다. 행여 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맞대고 갈까 봐 1인석 쪽으로 예매했는데, 막상 버스에 오르니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평일의 베테랑 등산객들은 이미 2인석을 혼자 널찍하게 차지한 채, 익숙하게 실내화로 갈아 신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등산 양말을 덧신고 무릎 보호대를 조이는 그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며 감탄했다. 자신과의 대화에 익숙하고 혼자 잘 노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단단한 ‘장비’와 ‘의식’이 있다는 걸 알겠다.


ChatGPT Image 2026년 1월 16일 오후 08_38_51.png 혼자서도 즐거운, 혼자라서 더 즐거운 산행 (챗 gpt 생성 이미지)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발바닥이 땅에 단단히 닿는 감각이 먼저 온다. 경사가 시작되면 발이 앞서나가고, 머리가 아닌 몸을 움직이는 동안에는 오롯이 나와 함께 있을 수 있다. 장딴지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호흡은 점점 거칠어진다. 땀과 함께 남아 있던 잡념도 하나씩 빠져나간다. 발밑과 지금 오르고 있는 이 길에만 집중한다.

너무 무서웠던 속리산 문장대 계단

그러다 어느 순간, 시야가 열린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이고, 풍경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눈이 시릴 만큼 시원하다. 숨이 한결 가벼워진다. 오르고 오르다 보면 몰랐던 나도 만나게 된다. 앞이 뚫린 계단을 잘 오르지 못하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 그럼에도 벌벌 떨면서 기다시피 해서라도 끝까지 오르고 싶어 하는 나. 산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모습이다. 현실에서는 늘 도망치기 바쁘지만, 산에서는 도망치지 않는 나를 만난다.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마주치는 인연도 소중하다. 길을 묻거나, 인사를 나누거나, 잠깐 속도를 맞추는 동안 마음이 잠시 헤실바실 풀린다.

“아, 여기서 또 만나네요. 잘 내려오고 있는지 걱정했는데.”

“스틱도 없이 여길 왔다고요? 이거 짚고 내려오세요. 다쳐.”

누군가 산에서 주워 다듬었을 그 투박한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내려오며, 나는 이름 모를 산신령에게 돌봄을 받은 기분이 되어 배시시 웃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기분 좋은 근육통이 온몸을 감싼다. 시끄러웠던 내면의 소음은 온데간데없고 맑은 정적이 그 자리를 채운다. 혼자 살고 혼자 일하는 삶이란, 어쩌면 매일 나만의 산에 오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가파른 절벽 앞에서 발을 떨겠지만, 내 발바닥이 지면을 단단히 딛고 있는 한 나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오롯하고 의연한 나를 만나는 법은 멀리 있지 않다. 몸을 움직이고, 숨을 쉬고, 지금 이 길을 끝까지 걷는 것. 적막함을 이기지 못해 외부의 소란스러움을 들이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보고 듣고 내 안으로 들이는 것. 나와 대화하며 나의 목소리를 가다듬는 것. 산책을 하고 등산을 하는 동안, 나는 다시 한번 내가 된다. 혼자서도 충만하다.

산행을 마친 저녁, 바짓부리에 남은 옅은 흙먼지와 종아리의 묵직한 통증을 가만히 느껴본다.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았다는 훈장 같다. 다가올 봄, 내 배낭 안에는 잡념 대신 연두색 잎사귀처럼 싱싱한 기운이 담길 것이다. 혼자여서 시끄러웠던 마음이 비로소 혼자여서 고요해지는 밤. 다시 한번 나를 믿어보기로 한다.


KakaoTalk_20260116_200657279.jpg 고요한 나를 만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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