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식탁에 찾아온 두 사람
1인분의 식탁에는 대화가 없다. 내 식탁의 맞은편은 유튜브 채널 차지가 된 지 오래다. 가끔은 이렇게 혼자 지내는 게 어딘가 나를 비뚜름하게 만들지는 않을지, 영영 말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 고요한 식탁 위에서 느끼는 불안은 사실 나만의 것이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과 혼자 사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주제니까. 혼자서도 충만한 밤과 둘이 있어도 외로운 밤에 대한 이야기도. 위대한 철학자와 작가도 그 질문과 고민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니체는 함께하는 생활을 꿈꾸며 결혼을 ‘긴 대화’라고 했고, 카프카는 독신의 괴로움에 대해 썼다. 백여 년 전을 살았던 그들 역시 오늘을 사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있음’과 ‘혼자 남는 일’ 사이의 오랜 진자운동. 카프카는 독신자의 삶을 이렇게 묘사한다.
언제까지나 독신자로 산다는 것은 괴로운 일인 모양이다. 나이가 들어 하룻밤 정도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싶을 때, 그는 품위를 지키면서 함께 어울려주기를 애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늘 한 손에는 자신의 저녁거리를 들고 집으로 와야 하고, 낯선 아이들을 놀라워하며 바라보아야 하지만 ‘나에겐 아이들이 하나도 없구나’ 하고 줄곧 되풀이해서도 안 되며, 젊은 시절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한두 독신자들을 따라 외모와 태도를 꾸며 나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 실제로 오늘 혹은 또 장래에 누구나 그런 형편이 될지도 모른다. 자신이 살아 있는 몸으로, 정말로 현실적인 머리와 또 이마를 손바닥으로 철썩 칠 수밖에 없다. _프란츠 카프카, 『변신-단편전집』, <독신자의 불행> 중에서
심각하고 건조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글 속에서의 그는 어쩐지 안절부절못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사람들 곁을 맴돌고, 아이의 부재를 한탄하고, ‘혼자’라는 자각에 이마를 철썩 칠 만큼 괴로워한다. 그 모습이 조금은 귀엽고 또 짠하다. 감정을 거의 배제한 문체로 유명한 그가 혼자라는, 그리고 앞으로도 영영 혼자일 거라는 실존적 공포 앞에서 머리를 탁 치는 장면을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난다.
그에게 사랑이 없었던 건 아니다. 같은 사람과 약혼과 파혼을 두 번이나 되풀이했고, 또 다른 이와도 약혼의 문턱에서 되돌아섰다. 그 마음 아픈 반복 끝에 함께하는 삶보다 혼자만의 고독한 문장을 선택한 셈이다. 『카프카의 일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결혼할 능력이 없다. 결혼하는 순간 나는 내 글쓰기를 잃게 될 것이고, 글쓰기를 잃는다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글쓰기는 관계의 대체물이 아니라, 존재의 조건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니체는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상대방과 대화를 잘 나눌 수 있는지”가 결혼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이며 “결혼 생활의 다른 모든 것은 일시적이지만, 함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대화에 속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긴 대화를 실제로 나눈 적은 없다. 루 살로메에게 청혼했지만 거절당했고, 이후로는 쭉 독신으로 살았다. 사랑과 결혼, 관계와 우정에 대해 그렇게 많은 문장을 남겼지만 정작 그 세계에는 오래 머물지 못한 셈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다수의 모임에서는 입을 다물고 경청하는 편이었다. 가벼운 잡담에는 서툴렀고, 그런 대화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이 맞는 단 한 사람과 마주 앉았을 때는 깊고 열정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그에게 대화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서로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예술적 행위였던 것이다. 현실에서 그런 대화 상대를 찾기 어려웠기에 그는 책과 일기 속에 수많은 문장과 독백을 쏟아부었다.
한번 상상해본다. 깊은 밤 우리 집, 조용한 식탁 위에 니체와 카프카가 마주 앉아 있는 장면을. 니체가 콧수염에 묻은 커피 거품을 닦지도 않은 채, 턱을 괴고 심각하게 말한다.
“결혼은 대화예요. 대화가 안 통하면 지옥이죠.”
카프카는 내 식탁의 귀퉁이를 불안한 손길로 만지작거리면서 고개를 숙인다.
“독신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래도, 괴로움 속에서 문장을 얻을 수 있죠.”
두 사람의 말이 식탁 위에 내려앉는다. 나는 그 사이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엄근진’한 두 사람이 이렇게 ‘함께’와 ‘홀로’에 대해 토로하는 모습이 조금 웃기고, 어쩐지 위로가 된다.
“니체, 사실은 수다쟁이였던 거 아닌가요?”
그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안 그런 척하고 사느라 힘들진 않았어요? 긴 대화를 나눌 사람을 찾지 못해서 외로웠나요? 닿을 곳을 찾지 못한 그 많은 말들은 어디로 갔나요?”
니체는 잠시 웃더니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다.
“책으로 갔죠.”
카프카가 자기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의 고백이 고요히 공기 중을 떠돈다. 글쓰기는 역시 고독한 일이고, 혼자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혼자이기 때문에 쓰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평생 쏟아낸 말은 결국 ‘누군가에게 가닿지 못한 대화’ 아니었을까. 그 닿지 못한 말들이 지금 내 손끝까지 흘러와 나를 움직인다. 어쩌면 모든 글쓰기는 그렇게 늦게 도착한 대화일지도 모른다.
공상에서 깨어나니 식탁에는 나 혼자뿐이다. 유튜브 속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지만 그건 나를 향한 대화가 아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나에게 혼자는 충분한가, 긴 대화를 나눌 사람이 필요한가, 혼자인 나는 과연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같은 것. 맴맴 돌기만 할 뿐 막상 답을 내릴 만큼 부지런히 고민하지는 못하는 생각. 그 질문들을 잠시 식탁 위에 올려두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이미 다 식어 있다. 오늘 밤 내가 확실히 알게 된 게 있다면, 이런저런 생각을 굴릴 이 혼자만의 식탁이 꽤 근사하고 이 정도의 혼자는 아직 감당할 만하다는 사실 정도다. 그리고 니체의 말처럼 여기 이곳에 깊은 대화는 부재할지언정, 카프카의 말처럼 그 부재가 나를 쓰게 만든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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