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일하는 사람에겐 두 개의 시계가 있다

기분에 지지 않고 '나'를 지키는 법

by 홑들


‘아, 몰라.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야.’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을 것처럼 의욕이 충만할 날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찾아온다.

혼자 일하는 사람에게는 두 개의 시계가 있다. 외부의 시계와 내부의 시계. 마감 일정 같은 시간의 큰 구획은 외부에서 오지만 일상을 오밀조밀하게 굴리는 시계는 아무래도 내부에 있기 마련이다. 그 내부의 시계가 째깍째깍 잘, 충실하게 움직여줘야 외부의 시계도 문제 없이 작동된다. 두 시계가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가면 좋으련만 가끔은 안쪽의 시계가 고장 나 멈춰버리고 만다. 머릿속에 생각만 많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기분은 좋은 핑곗거리다.

이렇게 가라앉는 날도 있는 거지, 뭐. 사람이 어떻게 늘 웃을 수 있나. 아예 슬럼프라면서 손에 면죄부를 쥐여주기도 한다. 그래, 여태 열심히 했잖아. 지칠 만도 하지. 그런데 쉬기로 했다면 마음 푹 놓고 재미있게 보내면 좋으련만 불편한 마음으로 논 것 같지도 않게 무기력하게 보낸 하루의 끝은 늘 입맛이 쓰다. 애써 잡아놓은 일상의 리듬도 와장창 깨진다. 기분의 낙차는 고스란히 생활의 낙차가 된다. 그리고 그 낙차는 결국 어렵사리 쌓아 올린 일상의 둑을 무너뜨린다.

기분에 따라 산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중력을 이기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마음에 여유가 없고 바쁠 때는 정확하게 그 반대다. 일 말고 다른 것은 아예 할 엄두를 못 낸다. 기분 같은 건 돌볼 겨를도 없다. 제일 만만한 잠을 줄인다, 일어나자마자 독한 커피를 들이붓는다, 밥은 대충 질 낮은 탄수화물로 때운다,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눈알을 굴린다, 기껏 쉴 때도 충혈된 눈으로 핸드폰을 붙잡는다. 이쯤 되면 몸이건 마음이건 방전되기 마련이다. 어느 모로 봐도 좋은 하루를 보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분이나 마감 일정에 따라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하는 하루를 보내지 않으려면, 하루의 중심을 잡아줄 시간의 마디를 심어둘 필요가 있다. 의지가 아닌 습관으로, ‘그냥 한다’는 감각으로 행하는 일,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의 기둥 같은 일, 그 자체로 내게 보상이 되는 일을.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생각이나 감정이 아니라 내가 움직인 만큼, 내가 행동한 만큼이 내 인생이 된다는 것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대여섯 시간 글을 쓰고, 오후에는 10킬로미터 달리기나 1,500미터 수영을 하고, 그 이후의 시간은 독서와 음악 감상에 할애하는 사람. 남다른 절제력과 자기 조절력이 아닐 수 없다. 이 부럽고도 엄청난 루틴의 주인공이 바로 하루키다. 그에게 루틴은 아마 매일 마주하는 고독 속에서 소설가로서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투쟁이었을 것이다. 또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 하는 달리기와 수영 그리고 취향을 마음껏 발휘해 행하는 독서와 음악 감상은 지성과 감성, 체력을 채워주는 글쓰기의 자양분일뿐더러 그 자체로 보상일 테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그는 말한다. “정신은 종종 기분의 노예가 되지만, 몸은 늘 반복의 힘에 충실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자유롭기에, 칼날처럼 날카롭다. 제대로 잘 활용하면 나를 키우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주지만, 아무렇게나 방치하면 무뎌지거나 녹슬어버리기도 한다. 계속해서 벼리지 않으면 한없이 뭉뚝해져서 결국엔 스스로를 한심해하고 싫어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다가 결국엔 그 뭉툭한 칼끝으로 자신을 찌를 수도 있다. 하루를, 이틀을, 일주일을 허투루 보냈다는 자괴감이 몰려온다. 그럴 때면 자존감까지 바닥을 친다. 하루키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일상을 튼튼하게 지킬 수 있는 루틴이 필요한 이유다.

더구나 뇌 과학에 따르면 작은 보상이 따르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면 ‘자동적’으로 시스템이 구축된다고 한다. 굳이 의지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저절로 루틴이 굴러간다는 뜻이다.

‘기분이 나면 하겠다’는 마음은 흔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으로 기운다. 하지만 그럴 때 귀찮아도, 마음이 흔쾌하지 않아도, ‘읏차’ 하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중력보다 센 루틴의 힘에 기대야 한다. 일단 몸을 움직여보면 알게 된다. 기분이란 몸을 따라오기도 한다는 것을.





일어나자마자 물을 한 잔 마신다. 그리고 콩이의 물을 갈아주고, 밥을 채워주고, 화장실을 치워준다. 그다음에는 아주 급한 일이 없는 이상 커피를 마시며 책을 30분 정도 읽는다. 책을 읽는 동안 서서히 머릿속이 깨어난다. 식사 후에는 산책을 한다. 점심때도 좋고, 저녁때도 좋다. 하루에 한 번은 밖에 나가 바깥 공기를 마시며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나의 작은 생각과 기분에서 벗어나 물리적인 세계에 발을 딛는다. 마지막으로 저녁이 되면 하루를 회고하며 다이어리를 정리한다. 다이어리에는 그날의 단어가 적히기도 하고 그날 한 일이 적히기도 하고, 기념할 만한 무엇을 적어두기도 한다. 이 루틴이 내게는 내면의 시계가 잘 굴러가게 해주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시시한 것들의 반복에서 제 나름의 기량과 일관성으로 완벽하지 못한다면 혼자라는 존재는 서서히 부스스해지고 부서집니다.” 철학자이자 시인인 김영민의 말이다. 오늘도 부서지지 않고, 부스스해지지 않기 위해 루틴이라는 레일 위를 천천히 걷는다. “생활에서 작게 이기는” 성취감이 나를 다시 내일로 건너가게 한다. 성기게나마 하루의 밀도를 충실하게 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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