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나이 들지 않는,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마법의 시간이 끝나기 전, 우리가 물어야 할 것

by 홑들

철들지 않는 어리숙한 마음 곁에는 어울리지 않게도 조로하는 마음이 붙어 있다. 철들지 않았다는 건 아직도 세상을 보는 현실감각이 조금은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조로한다는 건 아직 오지도 않은 끝을 자꾸만 먼저 내다본다는 뜻이다. 나는 철이 덜 든 채로 삶의 끝을 상상하는 자리에 종종 서본다.


누군가는 번듯한 경제력을, 누군가는 운전 같은 기능을, 또 누군가는 출산과 양육 경험을 ‘어른의 조건’으로 말한다. 하다못해 “군대를 갔다 와야 철이 들고 어른이 된다”라는 관습적인 표현을 쓰는 사람도 여전히 있다. 생각이 유연해서 다행이라고 포장하기에도 이제는 좀 겸연쩍은 나이가 된 지금, ‘나잇값’하는 어엿한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에 가끔 한숨이 폭 나온다. 내 그릇은 왜 이리도 작은가.

내게는 일과를 조율하며 양보하고 배려할 사람도, 챙길 사람도, 책임질 아이도 없다.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나쁜 버릇을 넌지시 이야기해줄 이도, 티격태격하면서 이해의 깊이를 더해갈 사람도 없다. 업무적으로는 마감만 잘 지키면 충돌이 생길 일이 별로 없다. 시대의 변화 때문인지 일에서 관계의 밀도는 점점 옅어진다. 이렇게 오래 혼자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넓고 깊어질 기회를 잃은 채 멈춘 자리를 맴맴 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그러다 이내 손을 툭툭 털고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이렇게까지 내내 혼자라면 사실 철들 수가 없지 않나. 굳이 철들 필요도 없지 않나.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돌아서자니, 불현듯 영영 이 모습 그대로일지 모른다는 자각이 들며 가슴께가 선득해진다. 어엿해지기도 전에 이대로 저물어버리는 건 아닐까, 또 한 번 한숨을 폭 쉰다.


사람들이 평안을 찾을 수 있는 큰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너무 먼 꿈이다(사진: Unsplash, Cristina Anne Costello)



혼자 사는 사람은 언제 타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느낄까. 언제 아쉬운 마음이 생길까. 뭔가 물을 일이 생기면 늘 조심조심 질문하는, 그야말로 “네가 부른다면 언제든!”라고 응답하고 싶어지는 순한 마음이 들게 하는 후배 J는 이렇게 말했다. “밤늦게 산책을 하고 싶은데, 혼자 나가는 건 좀 위험하잖아요. 그럴 때 누군가 같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다른 남자 후배 Y는 육체적 외로움에 대해 말했다. 혼자 사는 남자의 고충이란 그런 거구나. 나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 때 문득 쓸쓸해진다. 둘이 하던 일을 혼자 할 때, 누군가 함께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 아쉬움은 살아 있는 동안의 일이다.






사는 동안 우리는 필연적으로 삶의 ‘다정한 목격자’들을 잃는다. 시절 인연이 다해서 연락이 끊기거나, 한 덩어리처럼 몰려다녔지만 어느 틈엔가 친구의 자리에서 자연스레 지인의 자리로 물러나거나, 달리 방법이 없어서 난폭하게 뿌리치거나 뿌리쳐지지고 하고, 나의 실수로 멀어지기도 한다. 돌아보면 화사한 구속도 있지만, 군데군데 얼룩진 부끄러움도 남아 있다. 그리고 때 이른 죽음으로,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맞기도 한다.

첫 직장에서 만난 동기 K는 언제나 똑 부러지고, 사리 분별을 잘했고, 주장에 거침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귀엽고 위트가 있어서 함께 있으면 즐거웠다. 생일은 고작 두어 달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간 내가 엄연히 학번이 높은데도 그 애는 입사 초기부터 대놓고 내게 “나랑 친구 하자” 했다. 웃음이 날 정도로 기세 좋고 당돌해서 “그러자” 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 애는 “회사에도 친구 하나쯤은 있어야지” 했고, 회사에 친구가 있어야 한다거나 친구를 만들 수 있을 거란 기대 같은 게 전혀 없던 내게 그렇게 회사 친구가 생겼다.

만화책, 아이돌, 다양한 주제의 잡지 같은 대중문화에 밝았던 그 친구는 세월과 함께 무르익었고 더욱더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관심사가 넓어지고 깊어지고 책에 파묻혀 지내는 날이 늘어났다. 날이 갈수록 그에게선 더 단단하고 깊은 향이 나는 것 같았다. 만화책방에나 있는 슬라이드 책장을 집에 들여놓는 사람을 나는 지금도 그 친구밖에 알지 못한다. 서로 다른 회사를 다니게 된 뒤에도 K는 내게 다정한 목격자이자 든든한 조력자였다.


기댄 책처럼 든든했던 K (사진: Unsplash, Cristina Anne Costello)


내가 다시 혼자 살게 되고 얼마쯤 지났을까. 이런 대화를 우리는 몇 번이나 나눴을까. 돌아보면 아직 새파랬던 그때, 왜 우리는 미리 앞당겨서 나이 들었을까. 죽음을 어떻게 마주할지에 대해 왜 자주 상상하고 이야기 나눴을까.

업계의 일, 최근에 읽었던 책, 서로의 경제 상황, 가족 이야기, 앞으로의 전망과 계획……. 그 끝에 몇 번인가 우리는 “스위스에 갈 돈 정도는 늘 가지고 있어야지” 했다. 마지막까지 존엄을 지키면서,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고, 인간답게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나 역시 동의하는 바지만, 단정하고 깔끔한 성정의 그 애는 아마도 추호의 미심쩍음도 없는 진심이었을 거다. 죽은 후는 어차피 인지 밖의 일일 텐데도 혼자 사는 사람은 죽음의 모습, 그리고 죽음 이후의 자기 모습까지고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죽음을 먼저 상상하고 대비하는 일은 얼마나 어른스러운 모습에 가까울까. 그때는 그런 태도가 철든 모습이라고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하면 죄다 나의 착각이었다.

시간이 더 흘러, K는 회사 서점의 개점 준비 업무를 맡게 되었다. 왜 그 일을 하게 되었는지, 타지에서 지내며 어려움은 없었는지,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그런 걸 나누질 못했다. 함께 지내온 긴 시간 중 그 애와 나 사이가 가장 멀었던 때다. 그때 왜 나는 너와의 긴밀함을 놓쳤을까. 왜 나는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몰랐을까. 내내 후회한다.


어떤 예감이 들었을까. 어느 날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는 너.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도 해보고 다시 문자도 남겼는데 며칠 뒤 K가 아니라 K의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이없게도 서점 일을 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고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어떤 말을 했던가. 수술을 했고 예후가 좋지 않았는데 이제 조금 안정되었다는 이야기. 그때라도 나는 네게 달려갔어야 했는데 무엇을 망설였나. “K는 워낙 강한 친구니까 일어날 거예요.” 내 입에서 나온 그 말을 나는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마 K의 동생도 그랬을 거다.

편집자가 일하다 다칠 일이라고는 종이에 손을 베는 것 말고 없을 거라는 오래된 농담이 무색하게도, K는 크게 다쳤고, 잠시 호전되는 듯하더니 겨울이 물러가는 이즈음 우리 곁을 영영 떠나버리고 말았다. 나는 온기 어린 네 손을 한번 잡아볼 기회도 없이 너를 놓치고 말았다. 그렇게 K가 떠난 지 딱 10년이 되었다.



“배운 도둑질이 이것뿐이라서, 어쩔 수 없는 그런 마음으로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진 않아. 계속한다면 정말 하고 싶어서 할 것 같아.”

“책 정말 좋지 않냐? 난 책이 좋아.”

“회사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혼자 있는 시간이 아까워서 이것저것 하다가 늦게 자게 된다니까.”

한동안 너와 나눴던 말들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생각보다 더 잦게 네가 살지 못한 미래를 상상했다. 갈수록 근사해지던 네가 어떤 모습으로 너를, 너의 인생을 빚어나갔을까 그려보다 끝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이게 너를 향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인지, 그저 여기 덩그러니 남은 내 서러움일 뿐인지를 저울 위에 얹어놓고 재본다. 너를 핑계로 자기 연민에 빠지는 건 너무 꼴사나우니까 자꾸자꾸 분별하게 된다.

영화 <더 룸 넥스트 도어>의 원작 소설 『어떻게 지내요』를 읽는 내내 K가 떠올랐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 여자로 산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 같은 여러 이야기가 섞여 나오지만 책을 덮고 오래오래 남을 말은 역시 책의 제목이다. “어떻게 지내요.” 프랑스어로는 “Quel est ton tourment?”,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라는 뜻. 아마 K를 떠나보내지 못한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는 그때 K의 어려움이나 일상을 너무 몰랐다는, 우리가 너무 멀리 있었다는, 내가 나에게만 골몰했다는 무심함에 대한 후회가 있는 것 같다. 제때 건네지 못한 안부를 끝내 건네지 못하게 되었다는 뼈아픈 후회.

“마법의 시간은 끝났어.” 영화 속 주인공은 마지막을 결심하기 전에 그렇게 말한다. 내게도 이 황금빛 어스름이 끝날 때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 내 삶을 ‘마법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러며 고요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면 좋겠다. 미리 앞당겨 죽음을 연습하기보다, 지금 곁에 있는 연(緣)들에게 “어떻게 지내요”라고 성실히 묻고 싶다. 그것이 K를 제대로 떠나보내는 일이고, 조로하는 마음을 멈추고 현재를 살아내는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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