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폐업기> 간단히만 하고 가실게요.
책방에 있던 책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건 원치 않았다.
남은 책들 중 제작자가 회수하지 않겠다고 한 것들과 "마지막 세일가에 파시고 수수료는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답장을 주신 작가님들의 책과 굿즈를 모아 굿바이 세일을 했다.
지인들에게는 30,000원짜리부터 100,000원짜리까지 부담 능력에 따라 <묻지마책꾸러미>를 택배로 꾸려서 강매했다. 웃프게도 책방 운영의 마지막 달에서야, 그런 식으로 매출의 최고점을 찍었다.
그리고 내 방은 두 벽면 중에 한 면 전체를 차지하던 책장을 버렸다(물론 그 안에 있던 책도 함께).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사놓기만 하고 안 읽은 새 책들, 습관처럼 들르는 오프라인 중고매장에서 충동적으로 야금야금 사들였으나 이젠 시대착오적인 너낌마저 불러일으키는 애매~한 장르의 책들, 저자 사인본이라 차마 버릴 수 없어 소장(만) 하고 있는 책들... 오랜 시간 동안을 정리라는 이름으로 이쪽으로 치우고 저쪽으로 밀며 지내왔다. 지금까지도 안 읽었는데 앞으로는 언제 읽게 될까?
무엇보다 결정적인 사건은... 좀이라는, 나로선 처음 보는 해충의 출현이었다! 습한 날일수록 책장 밑에서 자꾸만 기어 나와있어 소름이 돋았다. (사실 문제는 책이 아니라 오래된 책장이었지만...)
커다란 책장과 작은 책장 하나를 들어내고 나간 자리를 소독했다. 며칠 동안 집 밖으로 실려나가는 가구와 책들을 보고 경비아저씨는 이사 가는 거냐고 물으셨다.
무엇보다 힐링되었던 건 책이 쌓여있을 땐 전혀 몰랐던 벽 스크린의 발견이었다! 비워진 벽 위로 흔들리는 나뭇잎들... 매일 새로운 키네틱 액자다.
사는 평수를 늘리긴 쉽지 않으니 그 안에 가구를 치우라는 말이 맞는 것이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