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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다 Sep 19. 2020

미니멀라이프로 가는 길 (3)

X세대라서 다행이야

계속 이어가기 전에 중간에 한 번쯤 짚고 넘어가고 싶어 졌다. 나는 얼마큼 채워보았나.

사람들이 인생을 미니멀 방향잡을 땐 대체로 맥시멀의 정점을 찍은 후인 것 같.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로 이사하기 전까지 지식/ 재산/ 일/ (지치는) 인간관계의 최고봉에서 살았던 것처럼.

누구는 레벨10까지 축적하다가, 누구는 레벨5부터 숨 막혀하는 등 게이지는 다르지만 정점이 있었을 것이고 머무는 기간도 다를 것이다. 나 역시 나의 기준 안에서는 "려 가는 삶"을 갈 만큼 가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어떤 책에서 피력하는, 채워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비우기부터 요구하는 건 상업의 얕은 상술 때문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들어맞지 않는다. 어지러움에는 어지러움이 미학이 있다는 말도 맞다. 그러나 내 방, 재충전 기능이 탁월해야 하는 지금 여기 서울 내 공간 안에서만큼은 어지러움이 미학이 아닐 것이다.

멋지게 표현된 미니멀리즘을 쉽게 만날 수 없는 것은 한 번도 제대로 쌓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없애기부터 요구하는 상업의 얕은 상술 때문이다. 단칸방을 원룸으로 둔갑시켜 더 비싸게 팔아먹는 것처럼 가난을 포장해 더 비싸게 팔기 위한 상업의 얕은 상술··· 채워보지 못한 사람이 비우기부터 한다는 것은··· 어지러움에는 어지러움의 미학이 있다. 깨끗하게 계획된 신도시의 아름다움 외에도 스스로 태어나고 성장하며 어지러이 생선 된 구도시 달동네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과 같다.

<아무튼 서재> 중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니멀 라이프든 아무개라이프든 정답이나 better/worse 는 없다. 삶의 다른 모든 옵션처럼 선택일 뿐. "때가 되었다"는 기분은 본인만이 느끼는 영역으로,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된 데에 일조를 한 배경과 역사는 있을 것이다.


나는 90년대 호황기 끄트머리에서 십 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보내고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와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구 X세대 현 중년이다. IMF라는 사태도 원체 좀 "사는" 집에만 부침이 있었던 건지, 원래부터 작고 소중 소박했던 우리 집에 국가부도사태는 별 영향이 없었고 와중에 난 작은 기업에 취직했다.


그때부터 소비하고 사들이는 삶이 시작되었다. 대체로 내 능력 안에서 이루어졌으나 물욕이 이성을 마비시킨 어느 기간 동안은 사고 싶은걸 당장 손에 넣기 위해 카드론까지 당겼던 기억이 난다. 가장 비중이 큰 건 역시 옷, 신발, 가방, 그리고 책과 여행. 무시할 수 없는 종목 "자기 계발"까지.

아니 왜 통장에 돈을 쌓아? 평생 이렇게 벌면 되는데(라고 당연히 생각했던 그 시절. 은행이자도 나쁘지 않고 월급 위주로 저축하다 보면 내 집 마련도 가시거리에 있었던 그 시절. 무엇보다... 평생 나는 이렇게 기운이 넘치고 일자리 구하기도 어렵지 않을 거라 여기던 그 시절 )

현관에 신발장을 열 때마다 엄마는 한숨을 쉬며 "니가 이멜다*냐?" 하셨던, 참 좋~은 시절이었다.


그렇게 십수 년을 보내며 마흔을 코앞에 두니, 먹고 살기는 더 수월해지고 집 평수도 늘었으며 여전히 체력도 좋...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세월이 나한테만 자비를 베풀었을 리 없다.

대신 "하늘은 복 없는 사람을 내리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 는 말처럼 나이를 먹어가며 그래도 얻어지는 게 있다.

아 나란 사람은 이런 복은 타고났지만 저쪽으론 복이 없구나.(앞으로도 요원할 테지) 음... 나는 이 정도 크기의 그릇이겠다, 하는 자각. 그건 정말 다행이고 축복이다. 힘은 전보다 못해도 지혜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다.


현재까지의 데이터로 스스로 내린 공간적 바운더리 이러하다. 주택 관련 청약들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기준인진 모르겠으나 국가에서 1인 가구에게 허락한 사이즈 12평 40제곱미터. 딱 그만큼 공간은 하고 살 것 같다.

사랑하는 직계존속이 돌아가시면서 내 앞으로 무엇을 남기실지 아니면 인생 전반전엔 눈곱만큼도 없던 기가 막힌 횡재수가 인생 후반에 깜짝 선물로 들어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그런 가정은 하지 않기로 한다.

그만큼이란 말은,  흙수저로서 그 이상은 더 기를 쓰고 노동하지 않겠다는 결심이기도 하고 이제 더 이상 쓸데없는 데에 물질과 마음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기도 하다.


이제 막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한 20대 때는 해보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게 많다. 한계를 정해놓고 아있기보단 시간과 돈을 투자해 가능성을 더 알아봐야 할 때이기도 하고.

그러니 미니멀 라이프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만큼 해본 후 기운이 조금 빠졌을 때 찾아오는 게 맞다. 아니 자연스러웠다. 물론 나는 여전히 크고 작은 시도를 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예전엔 몰랐던 한계를 일부 인정하고 나 자신의 기질을 들여다보다 보니 집중을 위해 선택을 하느라 들던 시간이 매우 단축되었다. 일상의 소거법으로 물리적/심리적 빈 공간을 확보하는 점이 후련하다. 사들이느라 힘들고, 찾느라 시간 들고, 분류하고 버리느라 또 힘이 든다. 만약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체력과 공간이 무한정이라면... 굳이 만나지 않았을, 가고 있지 않을 미니멀라이프의 길일지도 모른다. 아, 물론 계속 진행 중이다.

자발적으로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과 등을 줄여 본인이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게 특징. 물건을 적게 소유하면서 생활이 단순해지고 나중에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면서 오히려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 방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로 부른다. 소비나 사용 시간을 줄이면서 남은 시간에 다른 관심사를 추구한다.
: <미니멀라이프> namu.wiki에서 발췌, 수정



*이멜다: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부인. 호사스러운 생활로 유명했으며 일명 "구두여왕"으로 불렸다.

**명심보감 天不生無祿之人 地不長無名之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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