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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다 Jul 22. 2022

이거라도 안 하면

오래된 취미에 대해 문득

물가상승률 정도씩 오르던 필름 가격이 최근 일이 년 사이에 겅중겅중 오르고 있다.(주 단위로 가격이 바뀐다. 이거야말로 자이언트 스텝) 이유들 중 첫 번째는 수요의 증가라고 한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이 시대 필름 카메라의 인기라니. 몸담고 있던 인쇄 출판 산업은 다품종 소량 생산의 디지털 시대 속성에 완전 사양의 길로 접어들며 일자리를 잃게 했건만.


대학교 때부터였으니까 필름 카메라 만지는 걸 취미로 한 지 거의 30여 년이 돼간다. 햇수를 세어본 적도 없고 누가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대답으로 그걸 말한 적도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 문득 우리의 관계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찰해보니

다양한 곳에 관심과 취미가졌던 내가 유일하게 "오랜 시간을/ 아무 생각 없이/ 기대 없이/ 습관처럼/ 꾸준히" 하고 있는 건 그거밖에 없었다. 이제 필름 한 롤과 스캔 비용까지 합치면 36장 기준 컷 당 650원 꼴이라(현재가 그렇다) 셔터 누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말이다.


첫사랑은 Nikon Fm2였다. 건전지가 필요 없는 100% 순정 아날로그. 필름을 끼운 채로 렌즈를 교체해서 한 롤 안에도 다양한 시각으로 담을 수 있었던 사물과 풍경들. 무엇보다 그 멋짐 터지는 셔터 사운드. 그러나 세월은 흘러가고 야속하게 나의 기운도 떨어져(사랑이 식은 건 아니다, 정말 어깨가 너무 아팠을 뿐이다) 그 카메라의 무게가 벽돌처럼 느껴졌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었다. 그때 환승해서 지금도 자주 애용하고 있는 카메라가 Contax T3다.

최근에 알아보니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올라있다. 팔까? 새로 산 휴대폰 카메라의 성능도 감탄스럽고, 필카를 따로 들고 다니는 게 언젠가부터 귀찮기도 했다. 필름값 부담도 있지만 그것보다 현상/ 스캔 품질이 갈수록 마음에 안 든다.


그러나 며칠 전 오랜만에 현상소를 바꾸고 필름을 맡기고 오는 길에 문득 들어오는 생각이었다.

팔아 뭐 하리.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뭐 할 건데. 나이 들면서 툭하면 "그거 해서 뭐 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시간과 에너지가 보인다. 한정되어 있다. 어릴 때처럼 기운 뻗치는 대로 이것저것 다 하고 다닐 순 없으니 "선택"이란 걸 한다. 그런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이렇게 슴슴하고 좋은 취미조차 합리성의 저울 위에 올려놔봐야겠나. 그런 기준으로 벌써부터 이 가지 저 가지 다 치고 나면. 그러고나면 뭐 할 건데.


집에 들어와 카메라 선반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만 원짜리 토이카메라부터 희소성으로 무장한 280만 원짜리 똑딱이와 사이에 많은 아이들이 있다. 한때 이 변덕스러운 마음을 만족시켜 주느라 바쁘게 들락거리던 다양한 렌즈들까지. 시작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으나 이제는 제법 재산이 된 나의 흔적들이다.

시장에 내놔볼까 하는 생각은... 사실 애초에 없었다.

필름 카메라의 속성인 기다림을 미덕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과정도 있다.

그러나 셔터 누를 근력이 남아있는 한 앞으로도  관계만큼은 지속될 것 다. 지금까지처럼 "그냥" 자연스럽게. 지속가능한 취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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