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1세대 도움 받을 사람 하나 없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니.
처음 리얼터를 한다고 얘기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확연히 두 가지로 갈렸다.
“돈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라 좋겠다.” 한 편으로는 “요즘 리얼터가 얼마나 많은데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어찌 보면 두 가지 모두 일리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거래를 많이 한다면 돈은 많이 벌 수 있겠지. 한국보다 중개 수수료율이 높긴 하니까. 하지만 거래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현실적으론 후자가 더 맞는 것 같다.
캐나다에서 가장 많은 리얼터가 활동하는 도시가 토론토다. 온타리오 주 전체의 리얼터가 10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토론토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수가 7만이 넘는다. 우스개 소리로 아무 데나 돌을 던지면 지나 가던 리얼터가 맞는다는 농담도 있을 정도. 이곳에서 정착하고 사는 사람들 중에선 리얼터 두세 명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더군다나 내가 이 일을 시작할 무렵은 부동산 시장마저 침체기였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코비드 이후에 제로금리에 가까운 시절 너도나도 집을 사려 달려들 때가 있었다. 그 이후 무자비한 고금리 시대가 찾아오면서 부동산 시장은 급속히 얼어붙었다. 많은 리얼터들이 1년 동안 한 건의 거래도 성사시키지 못하는 수가 상당할 정도다. 셀링선셋의 화려함은 극히 일부의 이야기이다. 시장의 축소는 경쟁의 심화를 일으켰고 그렇게 서로 제살 깎아먹는 구조의 악숙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리얼터 시장은 그다지 전망이 좋지 못하다. 경제 분야를 넘어 이제는 대다수의 필드에서 많은 사람들이 진부하지만 계속 떠드는 말이 블루오션을 발견해야 하고 니치마켓을 찾을 줄 알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레드오션 중 레드오션. 나는 왜 리얼터라는 직업군에 발을 담그게 됐을까. 심지어 캐나다라는 나라에 거주하게 된 지도 몇 년 안 됐고 부모형제나 친구 한 명 없는 나라인데. 현지에서 학교를 졸업하거나 회사를 다니면서 커뮤니티를 만들지도 못해 한 번도 주류사회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과연 이런 내가 소위 화려한 인맥과 다양한 사람들을 알고 있어야 유리한 이 직업이 어울리긴 할까.
생각보다 그 출발은 간단했다. 나도 ‘일’ 이란걸 하면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에 답을 찾았단 생각에서였다. 홍보 마케팅 에이전시는 클라이언트를 위해 최상의 솔루션을 제공해야 하는데 현실에선 일을 하다 보면 머리와 몸이 따로 놀 때가 많았다. 물론 이 업계에서 나름 성과도 좋았고 나쁘지 않은 평판을 얻었지만 남이 아닌 나를 속일 순 없지 않은가. 속으론 나의 커리어 발전과 성취감이 내면에서 먼저였다. 억지로 버텨 경제적으로 풍요로워 지지만 그만큼 큰 괴리감으로 복잡한 앓이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집은 마케팅이 아니다. 크기가 크고 작은 걸 떠나 누구에게나 꼭 있어야 한다. 한국과 캐나다를 막론하고 서울이나 토론토든지 우리에겐 집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난생처음 다른 나라에 왔다면 얼마나 두렵고 걱정되는 것이 많겠는가. 이건 해 본 사람만이 아는 최상위 레벨의 스트레스다. 나는 그들보다 고작 몇 년 더 빨리 왔다는 이유로 먼저 과정을 겪어봤다. 그래서 그분들이 집을 찾고 정착을 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떤 일을 하면서 누군가를 돕고 돈도 벌 수 있다? 이렇게 좋은 게 있는데 왜 망설이나. 그래 그럼 이 걸해보자라는 마음을 먹었다.
그다음은 내가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를 분석했다. 나는 예전에 내가 했던 일들을 좋아했다. 에이전시에서 온갖 경험들을 하면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해왔다. 그때의 경험들을 적용할 수 있으면서 조금은 다른 분야의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캐나다에서 집을 구하는 과정을 보고 굉장한 흥미를 느꼈다. 한국처럼 중개사 한 명이 가진 몇 개의 매물을 갑자기 문 열고 들어온 오늘 처음 본 손님에게 보여주고 그 자리에서 흥정해서 계약서를 쓰는 구조가 아니다. 이 나라는 부동산 매물이 모두에게 오픈되어 있고 경쟁을 통해 거래가 완성된다. 클라이언트를 상대할 때도 그들이 상황이나 원하는 조건들을 가지고 가장 적합한 매물들을 매칭하고 또 그 집을 얻기 위해 셀러 측과 협상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어찌 보면 내가 한국에서 10년간 가장 잘하고 좋아했던 일과 닮아 있었다. 이 비즈니스 산업의 업무는 나의 관심을 유발하기 충분했다.
이젠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가 남았다. 이 일을 직업으로 하는 동안 몇 가지 지키고 싶은 것들의 다짐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업무에서만큼은 효율성을 따지진 않으려 한다. 많은 선배들의 조언은 대부분 고객에게 끌려가면 안 된다. 딱 봐서 아니다 싶으면 너무 힘 빼면 안 된다 등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다. 물론 맞다. 내가 진행했던 많은 프로젝트들에서 리더 역할을 맡을 당시엔 누구보다 저렇게 일했고 투입 대비 리소스를 고려해서 항상 효율적으로 일하려고 했다. 하지만 집을 구하는 게 어떻게 효율만을 따져서 될까. 내 집을 구할 때 나는 비효율의 끝판왕이었다. 햄버거 고를 때도 이거 먹을까 저거 먹을까 고민하는데 그 중요한 집을 어떻게 칼로 무 자르듯 딱 선택하나. 보고 또 보고 이 동네 저 동네 왔다 갔다 하는 과정에서 정말 100개의 집을 방문한 것 같다. 그래서 지쳐 포기한 게 아니라 내가 맘에 드는 집을 찾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과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본다. 캐나디언 친구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자신의 부모님이 무려 10개월간 집을 보러 다니며 한 리얼터를 괴롭혔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 리얼터는 거래를 성사시켰고 그 후로 몇십 년간 그 부모님과 가족, 자녀들이 집을 구할 땐 해당 리얼터만 고용한다고 했다. 나도 이런 리얼터가 되고 싶다. 거래를 위한 거래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삶에서 정말 엄청난 선택의 과정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집의 가치를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는 내가 선택한 집을 보고 평가절하를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내가 만족하기 때문이다. 집의 가치는 파는 사람이 아닌 앞으로 거주할 사람이 정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두 알 수 없지만 모든 신입들이 그러하듯 열정은 넘쳐난다. 부디 내가 남긴 글에 부끄럽지만 않은 그런 직업이 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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