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과잉의 시대, 최근 커뮤니티의 흐름

by 경연 Community Planner

의미과잉의 시대, 최근 커뮤니티의 흐름


최근유행하는 작은 모임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왜 갑자기 감튀 모임이나 두쫀쿠 모임, 심지어 어렸을 때 하던 경찰과 도둑 놀이 모임까지 다시 등장하는 걸까? 하는 생각.


커뮤니티 기획자로서 한 번쯤 짚어보고 싶은 주제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생산성도 없고, 성장이라는 단어도 없고, 거창한 목표도 없이 그냥 모여 감자튀김을 먹고, 놀고, 웃는 모임들. 그런데 사람들은 기꺼이 시간을 내어 그 자리에 갑니다. 왜일까요?


한때는 완전히 반대의 흐름이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갓생’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던 때. 미라클 모닝모임, 새벽 기상 인증, 러닝 기록 공유, 독서 챌린지. 그 시절의 커뮤니티는 분명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죠. “이 모임에 오면 당신은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정체성의 축은 ‘지금의 나’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의 나’에 있었습니다. 나는 성장하는 사람이고, 노력하는 사람이며, 결국 달라질 사람이라는 선언에 가까운 모임.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들, 조금은 질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성장이라는 단어로 포장만 하진 않았을까?


많은 모임이 ‘성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실제로 성장이 축적되는 구조를 만들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인증은 넘쳤지만 깊은 피드백은 부족했고, 자극은 강했지만 지속을 설계하지는 못했고, 목표는 높았지만 관계는 얕았습니다. 브랜딩이라는 건 경험이 쌓이도록 설계하는 작업이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의미를 먼저 크게 말하고 경험은 따라오기를 기대하는 구조가 되었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의미는 컸지만, 그 의미가 실제로 쌓이도록 설계되었는지는 또 다른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거대한 의미 대신 작은 취향이 등장한 게 아닐까 싶더군요.


감튀 모임의 정체성의 축은 “더 나아지자”가 아니라, “나는 감자튀김을 좋아한다”입니다. 두쫀쿠 모임도 마찬가지죠. 거기엔 개선의 메시지보다 취향의 고백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이런 분위기를 편안해하는 사람이며, 이런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드러냄. 과거의 커뮤니티가 ‘이상적인 미래의 나’를 증명하는 공간이었다면, 지금의 취향 모임은 ‘현재의 나’를 보여주는 공간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죠. 취향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관계가 쌓이는 건 아니고, 실행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성과가 쌓이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제가 생각해야 하는 질문은 뭘까요?

우리는 그 안에 무언가가 쌓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는가? 성장을 말한다면, 반복과 피드백과 연결이 설계되어 있는가? 취향을 말한다면, 만남이 이어지고 관계가 깊어질 장치가 있는가? 커뮤니티가 끝난 뒤에도 무언가가 남도록 설계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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