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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너스톤 Oct 08. 2018

남자가 사랑한 보석: 역사 속 보석이야기 (1) 고대편

인류사 속 권위의 징표로서 보석의 의미

"놓아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더냐?"


가난한 이수일이 부유한 김중배에게로 떠나버린 심순애를 꾸짖으며 남긴 이 대사는 100년이 지나도록 기억되고 있다. 심순애라는 여자를 돈에 눈이 먼 평면적인 캐릭터로 그리며, 심순애를 이수일이 발로 뻥 찬다거나 매춘부라 부르는 통속적인 신파극이 그토록 인기를 얻었다니, 당대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을 곱씹게 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런 류의 스토리 플롯은 한국 뿐 아니라 일본, 미국, 중국에서도 수없이 변주되며 미디어 속에서 재생산되어 왔다.


지금까지도 보석은 여자들의 사치품이며, 남자들에게 보석은 그저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는 묘한 편견이 있다. 하지만 인류의 기나긴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보석이 여성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오히려 미디어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 보석은 남녀를 불문하고 자신을 권위를 드러내는 권력의 징표이자,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장신구였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귀중하고 아름다운 보석을 선물하기도 했겠지만, 단순히 이성간 구애의 수단이라고 정의하기에는, 권력의 상징으로서의 역할이 그 못지 않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남자든 여자든 귀족이든 평민이든 장신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더운 날씨 탓에 의복을 치장하는 데 한계가 있었을 뿐 아니라, 보석이 갖고 있는 신비로운 힘을 신봉했기 때문에, 이집트 문화에서 장신구와 보석 세공 문화가 몹시 발달했다. 특히 왕족과 귀족은 남녀를 불문하고 아이들까지도,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서 화려한 금에 터키석, 라피스 라줄리, 카넬리안 같은 보석으로 대칭적인 비즈장식을 즐겨했다고 한다.


코브라 장식은 왕족들만이 착용할 수 있었고, 오직 파라오만이 착용할 수 있는 화려한 목걸이 장식이나 헤어 장식도 있었다고 하니, 투탕카멘의 묘에 있는 황금 마스크를 보면 생전 파라오가 얼마나 화려한 보석으로 자신을 장식했는지, 남다르게 화려한 장신구를 통해 자신의 태양신의 후손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와 파라오의 보석 장신구


고대 그리스에서는 금 채굴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하고서야 화려한 장신구 문화가 발달했다. 초반에는 섬세한 금 세공 왕관이 인기가 있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헬레니즘 문화를 반영이라도 하듯, 금 위에 컬러풀하고 화려한 보석을 배치한 다양한 장신구가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주얼리는 남녀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아름다움을 사랑했던 그리스인다운 문화다.


고대 그리스의 초기 왕관과 헬레니즘 시대 왕관



이후에 이어진 고대 로마 시대에는 금과 각종 보석은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대장장이를 찾는 귀족들의 행렬이 끊이지를 않았을 정도였다고 하니. 특히 금반지는 로마 제국을 이끄는 귀족이 누리는 권세의 상징이었다.


초기 공화정 로마에서 원로원을 구성하던 귀족들은 금반지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드러냈던 것이다. 평민은 전쟁에서 공을 세운 것이 아니라면 철로 만든 반지만 낄 수 있었지만, 이후 원로원 가운데에도 평민을 선출하기도 하면서 점차 평민이나 군인들조차도 금반지를 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남자들 사이에서도 금반지를 손가락마다 여러개 끼는 것이 유행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못해도 남자든 여자든, 로마 사람이라면 금반지 하나 정도는 갖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시대의 금반지


이렇게 귀족부터 평민까지 화려한 반지에 너무 탐닉하자, 마르쿠스 카토는 사치와 향락을 없애기 위한 대대적 규제를 시작했다. 실제로 검열이란 의미를 가진 영단어 'censorship'의 어원이 카토(Cato)라고 한다. 실제로도 초라한 집에 살고 수수한 옷을 입으며 검소한 생활을 했던 마르쿠스 카토의 규제 이후로 반지에 대한 열광이 주춤하는듯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토파즈,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 진주 같이 보석이 부유한 귀족들을 상징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금반지 위에 귀한 보석을 장식하기도 하고, 옷깃을 저미는 용도로 썼던 브로치에도 화려한 보석 장식을 달았다. 좋은 가문 출신의 귀족들은 반지를 장식하는 보석에는 자신의 가문이나 신분을 상징하는 문양을 새겨넣어 편지를 봉하는 인장으로 쓰곤 했는데, 카이사르 또한 인장 반지나 인장 브로치를 좋아했다고 한다.


로마시대의 브로치와 반지


로마 시대의 예절상 남자들은 장신구로는 반지와 브로치만이 착용 가능했지만, 후기로 오면서 남자들도 다른 보석 장신구를 착용하기 시작했고, 특히 황제들은 금과 보석으로 장식한 메달을 목걸이로 걸기도 했다.


이처럼 로마 시대의 남성들에게 보석이란, 단순히 아름다움을 위한 치장이 아니라, 은연중에 자신의 권력과 부를 드러내고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강조하던 로마의 공화정신에도 불구하고, 실용성과 편의를 중시하던 로마제국의 정치적 사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특별함과 권위를 드러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중세로 이어지는 역사 속 남성들이 사랑한 보석 이야기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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