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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너스톤 Feb 09. 2019

피카소의 막내딸, 팔로마 피카소의 정체

최고의 주얼리 디자이너이자 당대의 셀러브리티였던 팔로마 피카소

얼마 전 파블로 피카소의 고향이라는 스페인 말라가에 다녀왔다. 아득하게 펼쳐진 푸른 바다와 대비되는 하얀 돌집들, 그 위에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흰 벽에 새파란 대문, 양 옆에 늘어져 있는 초록빛 화분과 새빨간 꽃이 어우러지는 경관은, 겨울이라는 것을 잊게 만들 정도로 찬란한 색상으로 가득했다. 이런 동네에서 유년 생활을 보낼 수 있었기에 피카소 특유의 예술세계에 튼튼한 기반이 형성될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팔로마 피카소

주얼리계에도 유명한 피카소가 있었으니, 큐비즘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막내딸인 '팔로마 피카소(Paloma Picasso)'다. 여성편력으로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의 여섯 번째 부인인 화가 프랑소와 질로가 낳은 딸이 팔로마인데, 화가였던 엄마와 아빠를 닮아 미적 감각이 타고났다고 한다.


하지만 팔로마는 회화가 아닌 디자인을 통해 미적 감각을 십분 발휘했다. 팔로마 피카소는 처음에는 의상디자인을 공부했으나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주얼리 디자인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 보석회사 졸로타스(Zolotas)에서 일을 하다가, 1980년에 티파니앤코(Tiffany&Co.)에서 자기만의 컬렉션을 독점적으로 출시하면서 주얼리 디자이너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다.



팔로마 피카소는 티파니앤코에서 걸출한 컬렉션을 하나도 아닌 여럿 선보였는데, 그중에서도 뉴욕의 벽에 휘갈겨진 그래피티에서 영감을 받은 첫번째 컬렉션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피티 컬럭션
러빙하트와 크라운하트


키스와 포옹을 뜻하는 X와 O를 볼드하게 표현하거나 love와 같은 의미 있는 단어를 대담하고 현대적으로 표현한 스털링 실버나 골드 제품은 지금의 티파니앤코의 디자인에 큰 기반이 되어준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러빙하트와 크라운하트는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그 외에도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멜로디 컬렉션과 올리브 나뭇가지를 갖가지 유색 보석과 진주로 표현한 올리브 리프 컬렉션, 자신의 이름인 팔로마가 뜻하는 비둘기 형태의 컬렉션과 사랑했던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영감을 받은 베네치아 컬렉션까지, 티파니앤코에서 절대 잊힐 수 없는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다.


팔로마 피카소가 디자인한 주얼리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유색의 원석을 대담하게 커팅하고 모던하게 세팅한 컬렉션으로 유명해졌는데, 페리도트나 로즈쿼츠 등이 돋보이는 슈가스택이나 지중해를 담은 듯한 비즈 컬렉션으로 유명해졌다.



팔로마는 아버지가 죽고 난 1973년에 영화에도 출연해서 미모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적도 있었던 데다가, 자신의 향수 브랜드 광고모델을 직접 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지녔으니, 집안과 미모와 능력까지, 모든 것을 갖춘 당대의 엄친딸이었을 테다.


유색 보석을 활용한 호화로운 컬러로 명성을 쌓은 팔로마 피카소는 실제로도 원색을, 특히 빨간색을 좋아했다고 한다. 아버지인 파블로 피카소의 전성기였던 장밋빛 시대만큼이나 활기가 넘치고 강렬한 기운을 지녔던 딸이었던 것 같다.


팔로마 피카소의 레드립스틱 광고

그녀눈 얼마나 빨간 립스틱을 좋아했는지, 1987년에는 로레알에서 몬루즈(Mon Rouge)라는 레드 립스틱을 출시했다. 그녀는 그녀를 떠올리면 빨간 립스틱이 자동으로 연상될 정도로 레드립을 자신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고수했으며, 오죽하면 레드립이 아닌 날은 익명 속에 숨고 싶을 때라고 말했을까. 결국 몬루즈는 유럽 전역에서 유행해서 선홍색을 팔로마 레드라고 부르기도 했다니,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가늠이 된다.


팔로마 피카소의 향수 광고

게다가 자기 이름을 딴 '팔로마' 또는 ‘몬퍼퓸(Mon Perfum)’이라 불리는 향수를 출시하기도 했는데, 스스로 말하길 자기를 닮은 강한 여성의 향이라고 했다. 그녀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 향은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얻어서 바디로션부터 샤워젤까지 바디앤배스 라인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파리의 사교계는 화려한 팔로마를 항상 주시했는데, 덕분에 팔로마는 단순히 자신의 이름을 건 향수와 코스메틱 뿐 아니라, 나아가 꾸뛰르 핸드백 같은 패션과 도자기나 크리스탈 같은 홈데코까지 사업을 확장했고,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을 흠모한 전세계의 대중에서 널리 사랑받았다.



(좌) 파블로 피카소와 입맞추는 어린 팔로마.  (우) 티파니앤코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팔로마

그러고 보면 팔로마 피카소는 자기 자신이 브랜드 그 자체였던 당대의 셀러브리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치 카일리 제너가 대중의 아이콘으로서 코스메틱 브랜드로 시장을 평정하듯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집안배경과 미모에 따른 영향력에만 의존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배경, 자신만의 스타일, 자신만의 이야기를 녹여내서 주얼리부터 모든 것을 브랜딩한 스토리텔러였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의복 디자이너에 비해 주얼리 디자이너를 잘 알지 못한다. 주얼리 시장의 특성상 디자인의 폭이 마냥 넓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디자이너의 개성이 반영될 수 있는 역량을 우리 스스로 제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대를 앞서간 팔로마처럼 이제는 주얼리 디자인에도 브랜딩이 필요하다. 자신의 스토리를 담아 만든 주얼리 컬렉션으로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되는 주얼리 디자이너가 한국에서도 많아졌으면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www.connerst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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