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가문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한 보석의 의미
우리는 흔히 유럽 역사에 있어 중세를 '암흑의 시대(Dark Age)'라고 부른다. 1000년에 가까운 이 기나긴 시간을 하나로 퉁쳐서 암흑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가혹하다고 할 법도 하지만, 18세기 계몽주의 지식인들의 입장에서는 교황으로 대변되는 기독교 질서가 절대적으로 지배하던 이 시절은 인간 중심의 문화가 말살되는 고루한 시대, 찬란하던 고대와 르네상스 이후의 근대 사이에 그저 끼어 있는 중간적 시대로밖에 느껴지지 않았을 테다.
사료가 부족한 데다가 여러 의견이 분분하기는 해도, 교황의 권위가 신분제를 공고화하고 문화의 번영을 가로막으며 사유의 자유를 억압했던 것은 일견 사실인 듯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분명 곳곳에서 변화의 조짐이 있었고 문화적 시류가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대표되는 교회 중심의 건축과 교회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한 종교적 색채가 풍기는 보석의 유행은 고대와 비교했을 때 가히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검소한 생활을 미덕으로 강조했던 기독교 교리로 인해 보석 문화가 일반인 사이에서는 많이 발달하지 못했으나, 역으로 교회, 궁정, 귀족사회에서는 더 화려하게 번창했다. 특히 중세 시대의 보석은 금 중심으로 발달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금을 가장 귀한 금속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가장 성스러운 성물은 대체로 금으로 만들거나 금으로 장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세 시대 보석 중에는 과거에 비해 치장을 위한 장신구보다도 미사 같은 종교의례에 사용된 성물들이 많다.
최상급의 금으로 성물이나 성체를 보관하기 위한 상자(casket), 포도주를 담는 성배(chalice), 십자가나 펜던트, 황금 접시 등을 만들었고, 신학 서적 정리를 위한 북바인더를 만들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금 세공술이 나타났는데, 조금과 돋을새김, 상감과 누금세공, 납땜과 스탬핑, 도금과 주물 등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또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정교한 금 세공으로도 모자라, 때로는 원석으로 이를 장식하기도 했다.
교회의 권위와 종교에 대한 신실함을 표현하기 위해 보석이 사용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귀족들은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기 위한 과시의 용도로 보석을 착용했다. 귀족 가문 출신의 기사들은 가문의 문장으로 만든 펜던트와 함께 종교적인 힘을 얻기 위해 부적처럼 십자가 펜던트로 된 각종 장신구를 착용했다. 광택이 나는 원석과 금으로 장식된 벨트를 착용하기도 했으며, 브로치도 남녀를 불문하고 유행한 장신구였다. 사극 영화에서 줄곧 보는 것처럼 귀족들은 가문의 문양이 도장으로 새겨진 반지인 시그넷 링(signet ring)을 끼고 다니며 편지를 동봉하거나 문서에 날인을 할 때 표식을 하기도 했고, 중세 후기에는 권위적 질서가 조금씩 해체되고 상인들과 길드가 등장하면서 상호의 개념에 해당하는 문양을 찍는 용도로 반지를 착용하기도 했다.
귀족들에게 보석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였지만 중세 시대 귀족 여성들에게는 미적인 의미도 컸다. 종교에 기반한 기사도 정신이 발전하면서 여성의 미에 대한 예찬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고, 이에 여성들은 신분의 나타내기 위한 목적을 넘어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위해 화려한 보석 장신구를 착용했던 것이다. 늘씬한 실루엣을 드러내는 드레스와 함께 말이다. 비잔틴 왕국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귀걸이를 하는 유행이 퍼기지 시작했는데, 귓볼에 달라붙는 납작한 것이 아니라 드롭형 귀걸이를 착용하기도 했다.
비록 인간의 사유는 종교의 울타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표현방식 조차도 종교의 권위를 빌려야 했을 지 모르지만, 하늘을 찌르는 듯한 고딕 양식의 노트르담 성당이나 찬란한 모자이크로 이뤄진 비잔틴 성당들, 그리고 반짝이는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성물들과 당시 귀족들의 화려한 가문 문장을 보면, 중세 시대의 보석은 겉보기에는 암흑기를 거쳤다기 보다는 오히려 더 화려한 양태를 띄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화려한 양식 뒤에 숨어있는 가치는 도리어 단순했다. 권위였다. 하지만 단순한 개인의 권력과 신분과 부를 뽐내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를 지배한 이념과 구조를 수호하기 위한 권위였다. 중세 시대의 보석은 고대와 비견해 볼 때도 개인의 권위를 드러내는 목적이었다기 보다는, 더 큰 집단과 이데올로기를 섬기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더 화려하고 더 정교할 수 밖에 없엇을 것이다. 단순 자신이 아니라 당대를 지배한 지배적인 종교의 권위를 드높이고 자신이 속한 가문과 신분을 드높이기 위한 수단이었으니까 말이다.
중세의 보석을 살피던 와중에, 나의 독특한 개성, 나의 주관적인 미적 기준, 나의 정체성의 과시를 위해 보석을 고르고 착용할 수 있는 시대에 살 수 있다는 건 또 참 행복한 일이라는 아주 의외의 교훈을 얻게 된다.
근대로 이어지는 역사 속 남성들이 사랑한 보석 이야기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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