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에 젊은 피가 수혈되면서, 다시 한번 전세계가 로열 패밀리에 주목하고 있다.
왕세자와 왕세자비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말을 했는지,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사다.
하지만 단순한 관심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로얄'이라는 칭호가 붙으면 그들이 사용하는 모든 물건이 고급 상품이 된다. 왕실의 향수라는 펜할리곤스부터, 왕실의 도자기라는 웨지우드까지.
영국왕실에 납품되는 물건에는 단순히 소비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용 '금'도 있다.
바로, 웨일즈산 금인 웰시골드다.
그 역사는 1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11년 에드워드 왕자가 에드워드 8세가 되는 대관식에서 웨일즈 용 문양이 찍힌 100%의 웰시골드로 만들어진 왕관, 지팡이, 반지, 검, 망토를 수여받으면서, 웰시골드와 영국왕실 간의 긴밀한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익숙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와 결혼한 어머니 엘리자베스의 1923년 결혼식에서 웰시골드로 된 웨딩링을 받으면서 '영국 로열 패밀리의 웨딩링 = 웰시골드'라는 공식이 만들어졌다.
그 이후로 영국왕실의 결혼반지는 웰시골드로 만든다. 이제는 서섹스 공작부인이라는 칭호를 갖게 된 메건 마클의 결혼 반지도 물론 웰시골드다. 캐서린 미들턴도, 카밀라도, 다이애나도, 모두 웰시골드 반지를 받고 로열 웨딩을 올렸다.
웰시골드는 아주 희소해서 보통 사람이 접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영국 곳곳에서 웰시골드 주얼리를 판다고들 하지만, 대체로 1%도 채 되지 않는 아주 적은 양을 함유하는 경우에도 웰시골드라고 홍보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이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아주 오래 전부터 웨일즈 지방에서 금광 채굴이 왕성하게 이뤄졌지만, 이제는 더 이상 금광 채굴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과거의 화려한 영광을 누렸던 Dolocouthi Mine은 이제 대중에게 공개된 하나의 관광지로 변모했다,
19세기 후반이라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채굴이 시작된 Clogau Mine에서도 초소규모의 채굴을 진행하거나, 과거에 채굴한 희소한 금괴를 판매하는 데에 그칠 뿐이다.
대신 Clogau는 웨일즈를 대표하는 주얼리 브랜드로 거듭나, 웰시골드의 명맥을 잇는 고급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서 자리잡고 있다. 현재 유통되는 웰시골드 주얼리는 거의 대부분 Clogau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이런 희소성 탓에 주요 산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호주에 비해서, 웰시골드는 시장에서 작게는 3배 크게는 30배까지 더 비싸게 거래된다.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공급이 제한되어 있으니 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것이다.
웰시골드의 흥망성쇠와 그 희소가치를 보고 있자면,
영국왕실이 21세기 현대사회에서 갖는 의미와 유사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로열 패밀리는 흔적 기관 같은 존재인 것이다.
국민이 주권을 갖고 있는 걸 넘어, 주권의 개념조차 흔들리는 이 시대에, 봉건시대에 절대왕권을 자랑했던 왕실은 어찌 보면 그저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로열 패밀리의 일거수일투족에 그 나라 국민들 뿐 아니라 세계시민 전부가 관심을 갖는 것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가는 과거의 전통, 잊혀져가는 과거의 영광에 대한 그리움을 기리기 위함이 아닐까.
급변하는 현대사회에는 새롭고 스마트한 것들이 너무도 많다. 권력이 분산되고 정보가 분산될수록 개개인이 누릴 수 있는 문화의 몫은 더 평등해지지만,중앙집권의 절대권력 하에서만 이룩할 수 있는 화려한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은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의 희생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노트르담 성당이라거나 태양왕 루이의 베르사유 궁전 같은 것 말이다.
설사 그 문화가 요구하는 민주적 가치에 대한 희생을 지향하는 것은 시대적 퇴행에 불과하더라도, 문화 자체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에는 경탄을 금치 못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코너스톤은 누군가의 소중한 날, 그 날의 아름다움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수만 시간을 노력한 사람들의 노고가 합리적으로 소비될 수 있도록 돕는 주얼리 플랫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