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으로

경험주의자가 믿는 이유

by Gabrielkim

오늘 간증의 주제가 ‘새 시작 또는 새 환경’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내용을 풀 수 있을까 고민하다 ‘새 시작’이란 주제에 대해 전하고 싶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유아 세례를 받기 위해 아버지의 품에 안겨있는 사진 속 제 모습을 보면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사실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랜 시간 믿음이 중요하지 않다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청소년기 저에게 교회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고3 때는 수험을 핑계로 교회에 안 나가지 않았습니다. 대학 새내기 때부터 입대할 때까지는 ‘삶이라는 것이 내가 마음먹기에 달린 거지. 신앙심이 뭐가 중요한가?’라는 교만함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 생각은 오랫동안 유지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아도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군에서 대인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와 교대 근무로 인해 피폐해진 제 심신은 훈련소에서 받은 성경에 눈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하는 하박국 선지자의 모습을 보며, 질서의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조금씩 말씀을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전역하고 믿음의 씨앗이 마음에 뿌려졌다고 생각했는지 교회에 등록하게 됩니다. 천천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자 생각하며, 저에게 말씀, 기도, 찬양을 노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타성에 젖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일에 교회 가는 것은 여전히 귀찮다 생각했고, 말씀은 어렵고, 찬양은 즐겁지 않고, 기도는 형식적으로 하였습니다. 이것이 제가 기억하는 믿음의 초기 모습입니다. 저는 교회에서의 활동은 피하고 싶었고, 하나님이 곁에 계신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적으면서 생각하다 보니 부끄럽네요.) 하지만 이런 제가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이 저를 만나주신 것은 하나의 작은 행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였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제가 제일 좋아하고, 기도 제목으로 자주 꼽았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일반적으로 어떨 때 하나님께 감사하신가요? 저는 당연히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하는 마음이 제일 크다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일 때, 우연히 들어간 식당이 너무 맛있을 때, 내가 열심히 노력한 것이 결실을 볼 때와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묻고 싶습니다. 반대의 경우에도 감사하실 수 있으신가요? 누군가에게 미움받을 때, 너무 아플 때, 내 노력이 헛수고였다는 생각이 들 때도 감사할 수 있나요? 이렇게 질문하는 이유는 저도 잘하지 못해서랍니다. 일희일비하고, 눈에 띄는 변화가 없으면 답답하고, 삶이라는 것이 너무나 헛되다는 생각에 자주 빠지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인스타에서 본 MBTI 만화에서 말하더군요. ISTJ의 마음 한 켠에 항상 있는 것이 시니컬함이라고. 아마 교회에 등록하고도 한참 동안 이 냉소는 계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믿음이 물질세계에서 뭘 바꾸겠어?’라는 생각이 항상 기저에 깔려있었다 생각합니다. 특히 이 생각은 제가 강박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였을 때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찬양할 때 평안, 승리, 기쁨과 같이 긍정적인 개념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이런 은혜가 넘치는 삶이 허락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 삶에 그런 것은 어디 있지?’라는 생각이 절 힘들게 했습니다. 초반에 말씀드린 군대 시절에 대한 기억과 생각하기 싫은 것들이 머릿속에 ‘침투’하는 듯한 기분은 제 일기에 나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고 군대에서의 그 사람이 떠올라 그 사람이 아니라 계속 되뇌었다.’ 이런 생각은 제 취미로 하던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취미가 단지 그런 생각을 안 하기 위해 하는 것이 되어 심한 몸살로 돌아오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뭔가 이상하다 여겨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강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생각하며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왜 안 느껴질까?’ 하며 자책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간 삶이 잘못되겠다 싶어 저는 삶을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하는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이런 허무감에 시달리는 걸 알아차렸는지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허무감에 관한 영상을 하나 보여줬습니다. 잘잘법이라는 채널에서 어떤 목사님이 전도서를 인용하시며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받은 복을 세어보라, 현재에 집중하라, 관계로 돌아가라. 지금 보면 그 뒤로 삶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방향으로 흘렀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어느 날 주일 설교를 듣고, 일기에 적은 내용입니다. ‘단지 내가 경험한 것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엡4:21-24] 너희가 그에게서 듣고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생략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말처럼 하나님을 붙잡기 시작합니다. ‘제발 흔들리지 않고 할 일에 집중하고 싶다. 하나님, 붙잡아주십시오.’, ‘철야에 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기도드렸다. 잡념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여 너무 감사했다.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자.’,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우리를 보듬어주시는 주님에 대한 감사함에 눈물이 났다.’, ‘내 우울, 불안이 모두 예수님의 희생 아래 자유로워지리라.’와 같이 계속 주님을 의지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감사하는 마음이 잊힐 때가 되면, 계속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때론 이것이 압박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1. 제 나약함에 대하여 인식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하루를 풍족하게 보낼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3. 언제나 저를 보듬어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날 일기에 적은 하루의 감사한 일입니다. 이렇게 감사를 습관으로 들이려 거의 일 년을 쓴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식하려 하고, 나를 위해 대속하신 예수님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던 지난 1월 혼자 떠난 여행에서 숙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서 ‘에벤에셀 하나님’이란 찬양을 들었습니다. 눈물을 흘림과 동시에 ‘내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구나.’라 생각하게 됩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며칠 뒤 병원에서 상담하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안 나오셔도 되겠네요.”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에 살짝 당황했지만, 진료실에서 나오면서 기뻤습니다. 그러나 기쁨이 생각했던 것만큼 크진 않았습니다. 지금 와서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이미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깔려있기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에 방문할 때 언제 끝날지 몰랐던 생활이 1년이 조금 넘어서 끝났습니다.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누가복음 6장 19절


이 말씀처럼 간절히 주님을 붙잡고 기도하며 시간을 보내니, 하나님께서 제 강박을 낫게 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기장에 글로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아, 하나님의 때는 완벽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도를 들어주셨고, 감사하다.’, ‘감사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 기도를 들어주셔

서.’


여러분,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저희와 함께하시고, 저희를 너무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고, 저희를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이 간증을 준비하며 ‘주제넘은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걱정도 있었습니다. 까딱하면 istj 특유의 꼰대 기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시고, 저희를 너무 사랑하시는 것을 제가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믿음이 흔들리는 분에게는 믿음이 다시 바로 서길,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전할 기회라 생각하여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만났다고 삶이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몇 분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교회에 등록할 때 도움을 준 전도사님 감사합니다. 제게 믿음의 본을 보여주신 지난 두 순장님께 감사합니다. 신앙심을 붙잡게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저를 품어주시는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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