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행(복합니다)

삶의 의미 있는 순간들

by Gabrielkim

0. “너는 연료가 없는데, 계속 달리려 해. 연료가 한 칸밖에 없는데, 계속 액셀을 밟아봐야 차가 오래 나가겠어?” 항상 나를 지켜보며 조언했지만, 자기의 말을 무시하는 것 같은 나에게 친구가 정말로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 느껴졌다. 이 말이 이번에 나를 움직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왜 갔지?’하고 돌이켜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저 말이다.

1. 여행 전날 밤 집에 22시 반 경에 도착하여 짐을 싸기 시작한다. 싸면서 불평한다. ‘귀찮다. 혼자 왜 간다고 한 거야? 누구랑 같이 가는 거면 좋았을 텐데.’ 맞춰둔 알람에 일어나기 위해 빠르게 잠자리에 든다. 잠도 오지 않는다. 분명 낮잠 한숨 안 잤는데, 눈은 감아도 잠이 오질 않아 뒤척인다. 신기하게도 일어났을 때의 상쾌함은 잊히지 않는다. 가벼운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발한다. 서울역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기 위해 역까지 걸어가는데, 발걸음이 가볍다. ‘나오니까 별거 아니구나.’ 역에 도착하여서는 전광판에 ‘승차 준비’ 문구가 뜰 때까지 대합실에서 기다린다.

2. 열차가 서서히 출발한다. 그러다 빠르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눈을 붙이다 일어나 가져온 빵과 귤을 먹으며 열차가 목적지에 다가가는 것을 느낀다. 도착하여 커다랗게 쓰인 강릉역 문구와 앞에 있는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를 보는 것도 잠시, 점심을 먹기 위해 걷기 시작한다. 지도에선 약 25분, 하지만 비바람이 침에도 불구하고 내 걸음걸이는 느리지 않아 빠르게 도착한다. 그렇다고 길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야, 이 길 걸었던 기억이 아직도 나네. 그렇지~! 여기는 택시 타고 오면 항상 지나던 곳이었는데.” 혼잣말을 해대며, 나름 구경을 하면서 여행 첫 끼를 먹기 위해 걸어간다.

3. 뚱보 냉면이라 쓰인 간판을 보니 추억이 떠오른다. 휴가 복귀 날, 후임과 함께 먹으러 갔던 기억과 전역하고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왔던 기억이 동시에 지나간다. 평양냉면 한 그릇, 그리고 새로운 만두 한 접시를 주문한다. 여기를 오게 되는 이유 중 하나, 따뜻한 육수를 한 입 마신다. 감격스럽다. 마치 시골 할머니가 푹 삶은 고깃국물 같은 맛이 난다. “이거지~!”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 감탄사. 냉면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냉면 본연의 맛과 담백하면서도 깊은 국물의 맛, 만두의 새콤하면서 약간의 매콤함이 가미되어 ‘야, 나 김치거든?’이라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맛. 즐겁다. 이것이 여행 첫 끼라는 사실이. 맛있게 먹고 사장님께 내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계산한 뒤 발걸음을 옮긴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소화하기 위해 걷다가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간다.

4. 숙소에 도착한다. 닫혀 있던 커튼을 열어 광활한 바닷가를 본다. 감탄하면서 오길 잘했다 생각한다. 그러다 피로가 갑자기 몰려온다. 침대에 누워 평소에 보지도 않던 상황극 유튜브를 보다 잠시 잠든다. 일어나 계획했던 대로 움직인다. 순두부 젤라또. 순두부라는 토속적인 음식과 젤라또라는 조합이 어색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꼭 맛보고 싶었다고 하니까 흑임자와 같이 익숙한 맛이 아니라, 순두부 젤라또를 주문한다. 입에 넣으니 느껴지는 담백한 단맛. 단 것을 싫어하는 내 입맛에 맞는다. 먹으며 걷기 시작한다. 정처 없이. 그러다 지도에서 괜찮아 보이는 백반집을 향해. 허영만 선생님이 나왔다고? 이건 가봐야지.

5. 젤라또를 다 먹었을 때쯤 쓰레기 버릴 곳이 없나 걸어가면서 생각한다. 우중충한 날씨와 서서히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면서 숙소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실내가 그리워진다. 그렇게 생각하며 걷다 보니 우연히 도서관을 발견한다. 프런트에 있는 사서 한 분과 공부하는 학생이 보인다. ‘들어가 볼까?’ 문을 열고 들어간다. 1층 서가를 보다 2층으로 향한다. 아, 손에 들고 있던 젤라또 컵과 숟가락은 버리고. 올라가 책을 몇 권 본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오니 집중이 잘되지 않지만, 집에 돌아가면 읽어봐야겠다 생각하며 사진으로 남긴다. 다시 걷기 시작한다. 봐뒀던 백반집 앞에 도착하니 2인분 이상이라는 것과 메뉴가 끌리지 않아서 발걸음을 돌린다.

6. ‘낙심하지 말자. 이럴 줄 알고, 오는 길에 닭강정 집도 봐뒀으니까. 거기서 포장해서 숙소로 가서 먹어도 되잖아. 아니면 가는 길에 괜찮은 식당 하나는 있겠지.’ 숙소 쪽으로 다른 길을 통해 가기 시작한다. 아파트가 많아 여기에는 맛있는 곳이 딱히 없겠다고 생각하며, 걷는다. 터벅터벅 걷다가 어두워지는 하늘과 다르게 조명이 은은하게 빛나는 가게 앞에 멈춰선다. 네이버 지도, 카카오맵 모두 평이 나쁘지 않다. 카카오맵 평이 적지만, 괜찮겠지 생각하며 들어간다. 대표 메뉴가 텐동이구나 생각하며 주문한다. 기다리는데 좀 걸린다는 평처럼 진짜 기다리다 보니 텐동이 나온다. 비주얼이 만족스럽다. 푸짐해 보인다. 맛은 어떨까 생각하다 고추와 가지를 먼저 꺼내놓고 밥을 한 젓가락 떠먹어본다. ‘소스와 어우러졌을 뿐인데, 이렇게 밥이 맛있다고?’ 한 젓가락 또 뜨기 전에 튀김이 어떨지 고민하다 고추 튀김부터 먹는다. 완벽하다. 하나하나 들어간 재료들을 음미하며 먹는다. 가지, 김, 새우, 버섯, 관자 튀김까지 모두 만족스럽다. 반찬도 깔끔하다. 우동 국물, 김치, 생강, 오이, 그리고 마지막에 먹었던 체리 한 알까지 식사하고 주방에 계신 사장님께도 정말 잘 먹었다고 말하고 나간다. 돌아가는 길, 이렇게 완벽할 수 있나 생각한다. 이게 여행의 묘미구나 생각하게 된다.


7. 숙소로 돌아오는 길 봐뒀던 닭강정과 음료를 샀다. 먹고 즐기며 친구와 통화하다 새벽 두 시가 넘어 잠든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씻고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아점을 먹으러 발걸음을 옮긴다. 친구의 추천에 갔는데, 맛이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와서 먹었던 세 끼 중 두 끼가 일식이라는 것에 놀란다. 먹고 바로 카페를 갈까 하다 숙소에 들러 좀 더 쉬다 가자고 판단한다. 숙소로 돌아와 쉬면서 바다를 본다. 유튜브로 음악이나 틀어놓을까 하다 찬양 두 곡을 듣는다. ‘에벤에셀 하나님’, ‘세상을 사는 지혜’.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바다를 바라보며 내가 눈물이 갑자기 난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렇게 바다를 보며 음악을 듣다 누워 잔다. 얼마나 잔 것일까. 카페로 가자. 여행 친구인 용구를 깜빡해서 다시 숙소로 돌아와 데리고, 부르지 않았는데도 택시가 딱 숙소 앞에 와서 타고 카페 거리로 간다.

8. 전날 밤 추천받은 카페로 들어간다. 오후에 커피를 안 먹지만, 여행이니까 이번에는 예외로 하자 마음먹고 들어간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느껴지는 커피 향에 나도 모르게 다른 음료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겠다 결심한다. 커피와 크로플을 들고, 4층 자리로 올라가 바닷가를 보면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에코백에 들고 온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읽고, 바다도 보면서 생각나는 대로 노트에 적는다. 생각나는 문장. 책에서 말하는 게 이런 것인가 생각하며 적는다. 질서와 혼돈의 조화. 그것이 무엇인가 개념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이 여행이 그렇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여행을 질서 있게 해준 알아본, 추천받은, 그리고 알고 있던 곳들. 한편, 걸어 다니며 우연히 마주친 도서관, 텐동집, 그리고 바다라는 무한한 혼돈을 보면서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을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체감하게 된다. ‘아, 만약 이 여행이 내 계획 100%였으면 만족스러웠을까? 오히려 지루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카페에서의 한 시간 좀 넘는 시간이 두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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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숙소로 돌아와 저녁으로 낙곱새를 먹는다. 이후 보고 싶던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본방송으로 보고 쉬다 잠든다. 아침에 기상하여 먹다 남은 닭강정을 아침 식사로 한 다음 체크아웃하고, 봐뒀던 카페로 향한다. 카페에서 아인슈페너 한 잔을 주문하고, 성경을 읽고,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예전에 밑줄 쳐뒀던 문장 중에 끌리는 문장을 노트에 다시 적는다. 아인슈페너가 바닥을 보일 때쯤 점심을 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하며 친구에게 물어 추천받는다. 이동하기로 하고 택시로 근처에서 내린다. 비가 와서 얼른 들어가자는 생각에 추천받은 가게로 들어간다. 자리에 앉으니 라멘집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어라? 지도를 확인하니 몇 블록 옆에 있는 다른 가게잖아? 일식집 분위기이기에, 여기가 맞는 줄 알았는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나갈까?’ 그런데 분위기도 괜찮아 보이고, 여기에 온 것도 뭔가 내 의지가 아니지만, 만족스럽지 않을까 싶어 그대로 앉아 주문한다. 마지막 식사는 치킨 남방. 촉촉한 치킨과 양배추, 타르타르소스와 맛있는 국까지, 만족스러웠다. 나나. ‘나나’ 알고 싶은 그런 가게 이름이다. 이제 택시를 타고 역으로 향한다.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역에서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10. 역 도착한 것은 14시 반 정도. 열차는 16시 40분. ‘두 시간을 뭐 하면서 보내지? 폰 배터리도 얼마 없네. 충전해야겠다.’ 가방에 있던 성경을 꺼낸다. 요한복음을 처음부터 읽기 시작한다. 깊이 와닿는 구절을 밑줄 치며, 그리고 받은 은혜로 인하여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끝까지 읽는다. 그렇게 시간이 한 시간 좀 넘게 지나고, 폰으로 사진을 보고, 정리하며 시간을 보낸다. 열차에 타고,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고 잠든다. 서울에 거의 다 왔을 때, 눈뜨고 창밖을 바라보다 폰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서울역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탄다. 도착하니 거의 20시가 되어간다. 잘 다녀왔냐는 부모님의 질문과 즐거웠다는 나의 답과 함께 일상으로 복귀한다.



11(?). Q. 그래서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A. 자신에 대한 깨달음이라 생각합니다. 연초까지만 해도 ‘지난해에 대한 미련이 남아 새해에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여행을 떠나니 그런 생각조차 안 나더라고요. 원래 A를 하면서도 B, C, D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지는 성격이라 이번 여행에도 이런 식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죠. 그런데 이번 여행은 온전히 자신을 돌아볼 계기가 되었어요.


항상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자는 것을 다시 마음에 새기게 되었고요. 이번 여행을 돌이켜 보면서 느꼈던 그 순간순간이 모두 아름다웠다고 생각해요. 여행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여행하는 동안 궂은 날씨에 대해 아쉬웠을 수도 있겠다는 질문에도 오히려 좋다는 식의 답변을 하니 이렇게 긍정적이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만족스러웠나 봐요.


Q. ‘혼돈과 질서라는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을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라는 문장을 이번 여행과 엮어서 한 번 설명해주시겠어요?

A. 물론이죠. 이번 여행이 그 문장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깊게 공감하는 문장이라 따로 적어두기까지 한 것 같아요. 이번 여행을 가게 된 계기는 불분명했어요. 단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쉬어야 할 상황이라 판단했고, 이걸 바로잡으려면 나만의 시간이 간절하다는 생각 하나만 분명했죠. 그 상황에서 저는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이날에 여행을 간다. 계획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라 생각하고 승차권을 구매했어요. 아무런 사전 조사도 없이요! 그런데 때가 다가올수록 조금씩 계획을 세우고, 큰 틀만 짜놓자 생각했어요.


그래서 숙소도 예약하고, 음식점도 알고 있던 곳과 추천받은 곳을 가자고 계획했죠. 그리고 남은 시간은 온전히 그때의 나에게 맡기자.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에 대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어요. 실제로 일어난 것도 그랬죠. ‘나는 강릉을 2박 3일 동안 다녀올 거야!’라는 큰 틀 속에서 혼돈의 개입을 허용했어요. 궂은 날씨, 간간이 느껴지는 외로움, 예상하지 못했던 음식점들. 이것들이 모두 나쁘지 않았어요.


궂은 날씨는 제게 숙소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고, 파도치는 바다를 보면서 숙소에서 생각에 잠기게 해주었죠. 외로움은 사색에 필요한 도구라 생각해요.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도 즐거운 것은 사실이지만, 혼자 떠났다는 사실이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로 여겨졌고요. 마지막으로 제가 생각했던 음식이 정해져 있진 않았지만, 지도를 통해 봤을 때나 먹어보기 전에는 몰랐죠. 이렇게 우연히 발견하는 음식점들이 훌륭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정말 즐거웠답니다.


이는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향해 그냥 달리라는 말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흔히들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이 무조건 순탄하기를 기대하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것이 삶이었다면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한 대사가 생각나요.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걸요!” 정말로 그렇다니까요. 삶은 직선이 아닌 것 같아요. 목적지를 정했다 해도 항상 직선으로 갈 수 없어요. 직선이 아니라 돌고 돌아서 도착하는 곳이 비로소 목적지인 것 같아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가 할 일은 단지 계획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찾아오는 불확실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도 깨닫게 해주네요. 그래서 질서와 혼돈의 경계를 걷는 여행이었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A. 어렵네요. 하고 싶은 말은 많으니까요. 그래도 짧게 하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에게 그 말을 실천하였냐고 하면 그렇지 못했던 기억이 더 많은 것 같네요. 대처가 말했죠. ‘말을 조심하라. 행동이 된다…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라는 말이요. 그 말처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을 저는 계속하고 살래요. 그렇게 하면 행동이 된다는 걸 믿고 싶으니까요. 그러면 정말로 이뤄지지 않겠어요? 범사에 감사하는 일이. 이전에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에 상관없이 이번 여행 동안이라도 범사에 감사했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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