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하셨다. "빛이 있으라."

같이의 가치

by Gabrielkim

10/07 오늘의 말씀

[롬12:2, 21]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요즘 어떤 고민에 빠져 있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성도로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에 자주 빠지곤 한답니다.

성도로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사회에서 얼마나 어려운지 저는 매일 느끼게 돼요. 왜냐하면,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그 기준을 따르도록 요구해요. 경쟁하고, 손해 보지 않기 위해 타협하는 모습이 일상이 되어버리곤 해요. 이런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외롭고, 손해 보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이어져서 솔직히 많이 지칩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구별된 삶이 무엇인지 분명히 상기시켜 줘요. 이 세상의 가치와 방식에 따르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에요.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으로 변화되기를 바라신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그 변화는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깨닫게 돼요. 마음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게 되면, 우리는 세상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대신, 하나님의 기준에 맞춰 행동하게 돼요. 그것이 바로 구별된 삶의 본질이죠.

21절의 말씀도 생각해보면, 상황이 어려울 때 세상이 가르치는 방식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방식일 거예요. 누군가 나에게 악을 행하면, 똑같이 갚아주고 싶을 때도 있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셔요. 즉, 우리의 방식은 세상과 달라야 한다는 거예요.

구별된 삶은 단순히 세상과 다른 행동을 취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본받아 악을 선으로 이기며 사는 것임을 기억해야 해요.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잘하고 있어요. 때로는 내가 성도로서 부족해 보이고, 나에게 실망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작지 않으시니까, 그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힘낼 수 있어요.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낙심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가자고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인답게 말이죠 :)


10/14 오늘의 말씀

[롬7:21-23, 10:17]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지난 한 주, 누구를 미워한 적 있나요? 저는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누군가는 예의가 없어서, 또 누군가는 저를 불편하게 해서와 같은 이유로요.

그런데 제일 미웠던 건 솔직히 하나님이었어요. 제게 주어진 상황들 속에서 무기력함만 느껴졌고, 울부짖어도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왜 아무 대답도 안 하세요?’ 하고 묻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제 안에 있는 죄성을 더 깊이 보게 되었어요. 말씀을 가까이하려 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구하지만, 그 마음이 채워지지 않으니 더 낙심하게 됐어요. ‘내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나?’라는 의문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그러던 중 오늘의 말씀이 떠올랐어요. 바울도 로마서 7장에서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면서도, 죄된 본성이 여전히 그를 괴롭게 한다고 고백했어요.

바울은 뒤에 이어지는 로마서 7장 24~25절에서 예수님에 대한 감사를 표현합니다. 예수님이 죄인인 자신조차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런 자신을 위해 대속하심에 감동하였기에 그렇게 고백하는 거예요.

그는 예수님께 직접 말을 듣고,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어요. 저도 이 말씀을 붙잡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려 합니다.

기도할 시간도 없고, 삶은 여전히 각박하게 느껴지지만, 그 순간마다 잠깐이라도 예수님을 떠올리고 마음을 다잡으려 해요. 그러면 하나님이 분명히 평온한 마음을 주실 거예요. 화가 나도, 낙심이 찾아와도 하나님은 결국 위로하시고 다시 세워주시니까요.

그러니 이번 한주도 힘내서 살아가요! 무너지지 않고, 낙심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우리의 내일을 열어주실 거니까요. 계절이 바뀌면서 마음이 심란하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동행하시는 힘으로 하루하루를 걸어갈 수 있을 거예요. :)


10/21 오늘의 말씀

[계8:3-4]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오늘은 질문으로 시작하고 싶어요. 언제 기도하시나요? 힘들 때? 기쁠 때? 아니면 하나님과 나만 알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저는 생각이 많아져 가슴이 무거워질 때,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혼자 조곤조곤 기도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가끔 생각해요. ‘내가 기도를 그런 일이 없으면 했을까?’

그런데 한 해를 돌아보니 생각보다 많이 기도했더라고요. 눈을 감고 기도할 시간은 따로 내지 않았을지 몰라도, 제 마음속 작은 생각과 말들이 이미 기도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기도는 꼭 따로 시간을 내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욥기의 후반부에서 하나님은 온갖 원망과 분노를 쏟아낸 욥을 의인이라 하셨어요. 팀 켈러 목사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요.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 말은 욥의 원망과 분노, 고통의 표현조차도 하나님과의 대화, 곧 기도였다는 뜻이에요.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께 드리는 솔직한 마음의 표현이죠.

오늘의 말씀은 기도가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줘요. 요한이 본 계시에서, 성도들의 기도가 금 향로에 쌓여 하나님 앞에 올라갔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저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두 듣고 계신다는 의미예요.

이 말씀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내가 기도를 많이 하지 않아서 삶이 힘든 게 아니라, 그저 인생 자체가 그런 순간들로 가득할 수 있다는 것 말이에요. 하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계신다는 거죠.

그러니 마음껏 기도해요. 힘들 때는 ‘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 하며 하나님께 따지고, 기쁠 때는 ‘저 잘했죠?’라며 하나님께 장난도 걸어보세요. 작은 속삭임이라도, 울부짖는 기도라도,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시니까요.

이번 한주도 그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를 돌보신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힘을 얻길 바랍니다 :)


10/28 오늘의 말씀

[눅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살면서 쉽게 내려놓기 어려운 게 있나요? 완벽하고 싶은 마음이라든가, 내가 하는 일에서 인정받으려는 마음 같은 것들이요.

올해 학교에서 mbti 검사를 했을 때, 상담사께서 저에게 “보통 끝자리가 tj인 분들이 자기가 하는 일에 있어서 완벽주의에 잘 빠지죠. ㅎㅎ”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처럼 저는 어떤 일을 할 때, 부정적인 피드백에 취약하고, 때로는 긍정적인 반응이 크게 와닿지 않더라고요.

예전에는 이런 마음이 저를 더 열심히 노력하게 했지만, 전역하고서는 오히려 저를 갉아먹는다는 걸 아파보고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삶에서 완벽보다는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과 겸손을 배우고 있어요.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에 걸맞지 않게 말구유에서 태어나시고, 사람들에게 온갖 비난과 핍박을 감당하시며 낮은 자의 모습으로 사셨죠. 심지어 예수님은 죽음이라는 가장 비참한 일까지 겪으셨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끝내 부활하시며 그 모든 것을 이기셨어요.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편이라는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가셨죠.

예수님은 오늘의 말씀을 통해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주셨어요. 나 자신을 높이려 애쓰기보다는 하나님께 나를 내려놓을 때, 하나님이 제 삶에 일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이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겸손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오늘 다시 배운 것 같아요.

저는 오늘 다짐하며 기도해 봅니다. “하나님, 저의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게 해주세요. 높아지려 애쓰지 않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해주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낮아질 때 우리를 들어 올려 높아지게 하시는 분이시니까요.”

이번 한주도 여러분이 예수님을 닮아 낮아지길 두려워하지 않고, 힘차게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에 오늘도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흔들림 없이 걸어가길 바랍니다 :)


11/4 오늘의 말씀

[마6:20-21]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사람이 무엇을 쫓는지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는 말 들어봤나요? 저는 삶에서 ‘의미’를 쫓으며 살아갑니다. 저는 무언가를 할 때, ‘이게 어떤 의미가 있나?’를 깊이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누가 저에게 근황을 물으며 “요즘 행복하니?”라 물으면. “음...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서 좋아요.” 아니면 “요즘 좀 지치네요. 하하...”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가끔은 이런 질문이 제 마음을 콕 찌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의미’는 뭘까요? 요즘은 이 질문을 하며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러다 오늘의 말씀이 떠올랐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라 말씀하세요. 왜 이 말씀을 주셨을까 생각해 보니 너무 간단했어요. 하늘의 것을 쫓으면, 제 마음도 어디에도 뺏기지 않기 때문이에요.

사실 저는 세상의 유혹과 인정에 약해요. 때로는 사람들의 위로가 필요하고, 누군가의 칭찬이 마음을 채워 주길 바랄 때도 있죠. 최근엔 회사 스트레스로 ‘이래서 사람들이 힘들 때마다 위로를 찾는구나’ 하고 깨닫기도 했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의미를 제시하세요. 우리가 쌓아야 할 보물은 사람들의 인정이나 일시적인 안락함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라고요. 성도가 추구해야 할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언제나 즐겁지는 않답니다. 때론 내가 감내할 것이 더 늘어난다 생각하고, ‘왜 이 짐을 저에게 지우세요?’라는 의문이 수없이 들죠.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더 큰 의미와 목적을 주십니다. 내 삶의 고통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하심과 같거나, 그보다 클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주도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번 한주도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갑니다. 때론 육신이 지치고, 마음이 무너져도, 제가 하늘의 보물을 기억하며 나아가게 해주세요.”


11/11 오늘의 말씀

[전12:1-2]

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저는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두 찬양이 생각났어요. 이 찬양들은 제가 하나님께 자주 던지는 질문인 ‘하나님 저를 이 세상에 왜 나게 하셨어요?’라는 질문과 ‘저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해요?’에 대한 답으로 느껴지거든요.

출근길에 자주 듣는 ‘다윗의 기도’는 “여호와여 내가 누구이기에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는지”라는 가사가 제 질문과 너무 닮아있어요.

또 ‘청년의 기도’라는 찬양은 “청년의 시절 지날 때, 날 지으신 주님 뜻대로 ‘하나님 예배하는 삶, 복음을 전하는 삶’ 그렇게 살기를 기도합니다.”라는 가사로 이십춘기에 빠진 제 마음을 달래요.

그래서 오늘도 성경을 찾던 도중 이 말씀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리고 생각했어요. ‘예수님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사셨지?’ 성경에는 그 답이 나와 있죠.

제가 여러 번 묵상하면서 깊이 깨달은 사실인데, 예수님은 정말 겸손하셨어요. 본인이 창조주, 참 하나님이심을 자랑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한없이 용감하셨어요. 낮아지는 것이 두려우셨지만, 기도하시며 죽음이라는 잔까지 받아들이셨죠.

다시 오늘의 말씀으로 돌아오면, 저희에게 전도자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라고 말하고 있어요. 저는 이 말씀을 ‘주님을 바라보며 일어나 걸어라.’라는 말로 받아들였답니다.

오늘 하나님은 쉽게 낙심하는 저에게 이 땅의 것을 구하지 않고, 허무한 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도 이 말씀에 순종하려 합니다.

때로는 삶의 무게가 정말 무거워요. 짊어지기에는 힘들어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곤 하죠. 하지만 그렇게 해결되는 것은 없기에, 또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그런 길이 아니기에, 오늘도 짐을 짊어지고 나아갑니다. 모두 그런 성도, 주님의 자녀, 친구로 살아가는 한주가 되길 바랍니다 :)


11/18 오늘의 말씀

[마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나님 우편으로 올라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당부예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신 다음에 혼란스러워했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만 따랐으니까요.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모든 이에게 나의 말을 전하렴. 내가 너희와 끝까지 함께할게.”라 말씀하셨죠.

본문의 상황처럼 우리도 제자들처럼 혼란스럽고, 낙심할 때가 있지 않나요?

저는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말을 자주 마음에 새기면서, ‘세상 앞에 강하고, 선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요.

하지만 이번 해를 돌아보니, 저는 오히려 제 연약함과 악함을 더 많이 보게 되었어요. 낙심과 화가 마음을 지배하고, 점점 감사와 기도가 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차가워지고, 먹먹하고, 이런 나와 주님이 정말 함께하실까 하는 의심도 들었죠.

그런 제 마음을 보고 계셨던 걸까요? 어제, 오늘 작은 기적을 통해, 주일 말씀과 찬양을 통해 다시 하나님의 뜻을 새기게 해주셨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시기 위해 언제나 복을 주신다는 걸. 그리고 그것이 우리와 동행하심의 증거라는 걸.

그제야 제 마음이 녹아내리고, 기도가 나오고, 감동의 눈물이 흘렀어요. 한없이 낮은 인간을 위해 더 낮아지길 자처하신 예수님이 동행하시는 것이 와닿으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다짐합니다. 주님이 동행하심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며 살아가겠다고요. 모두 기억해요. 우리의 발걸음에 하나님이 언제나 동행하신다는 것을. 모두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한 주가 되길 기도합니다.


11/25 오늘의 말씀

[롬5:3-6]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이제 정말 연말이네요. 이번 주가 지나면 벌써 이번 해의 마지막 달이라니 믿겨요?

다들 이번 해가 어땠을지 모르겠어요. 즐거운 시간, 무료한 시간, 힘든 시간 그 모든 게 섞인 시간이었겠죠.

저는 솔직히 지난주를 보내면서 정말 괴로웠던 것 같아요. ‘이게 정말 맞나?’ 싶은 시간도 있다 보니까 위로가 필요했어요.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 ‘로마서를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이겠지.’ 싶어 보다가 오늘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답니다.

힘든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죠. 때로는 그런 시간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잊곤 해요. 누군가는 힘든 시간을 지나며 하나님을 부정하죠.

하지만 오늘 바울은 말하고 있어요. 그런 환난 속에서도 즐거워함으로써 우리가 소망을 이룬다고. 그리고 그런 소망이 우리는 부끄럽지 않다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던 대사가 있죠. ‘너를 위해선 죽을 수도 있어.’ 개인적으로 이런 대사를 보면 웃겨요. ‘죽어서 뭐 어쩔 건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달랐어요.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셨어요.

여러분, 이번 한 주를 살아가는 데, 이 사실을 기억하며 나아가요. 정말 한없이 높으신 예수님께서 한없이 낮은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줘요.

그리고 그걸 생각하면 소망이 생기고, 그 소망이 우리를 힘든 시간 속에서 즐거워하게 해요. 그러니 걸어가요. 주님을 의지하면서. 즐겁게 주님과 동행하면서.


12/9 오늘의 말씀

[마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삶 속에서 왜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까요? 저는 성경을 읽을 때 ‘어째서 하나님은 신약 이후로 인간에게 기적을 보이지 않으실까?’라는 의문이 들어요.

솔직히 살아가면서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 일이 많나요? 저는 그런 순간 속에서 ‘나도 정말 기적이 일어나면 의욕이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흔히 ‘기적’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기독교는 세상과 구분된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에 일어났나요? 또 하루를 시작했나요? 그런데 전날 밤 잠들면서 내일 아침이 온다는 확신은 어디서 왔나요? 그냥 ‘자니까 다음 날이 오는 거지.’라는 생각인가요?

저는 요즘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기적이구나.’라고 생각해요. ‘나는 잠들 때 내일이 온다는 보장이 어디 있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위에서 말했던 그런 힘든 순간들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삶이 끝나지 않고, 오늘날까지 살아온 것이 정말 은혜 아닌가요?

하지만 그 순간들 속에서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 특히 오늘의 말씀과 함께 생각해본다면,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면 삶이 너무 비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래. 내 삶이 힘든 게 어찌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것이라 할 수 있겠어?’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리고 그 마음으로 이번 한주도 살아가려 합니다.

삶이 지치고, 힘들어도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내 기도에 응답이 없는 것 같아도, 내 삶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180도 달라지는 ‘기적’이 없더라도,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 삶 속에 찾아보면 무한하여서 감격스럽답니다. 이번 한주도 그러한 ‘기적’을 느끼며 살아가요 :)


12/16 오늘의 말씀

[엡5:8-10]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저는 일본 선교를 가기로 하고 마음에 계속 품고 있는 말씀이 있어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데, ‘너희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라는 마태복음의 너무나 감사한 말씀이에요. (tmi지만, 너무 소중한 말씀이라 제 한 줄 소개에 일본어로 ‘빛과 소금’이라고 적어놨답니다 ㅎㅎ)

하지만 이 말이랑 저의 이번 한 해, 더 나아가 지나온 날들을 같이 생각하면 저는 너무 부끄럽습니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내가 이런 사람인데, 내가 의로운 사람이 맞나?’라는 생각이 자주 나왔어요. 그런 저에게 “찬영아, 아니야. 너는 내가 빛이고 소금이라 했어.”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말씀을 붙들고 10절의 말씀처럼 계속 시험한 것 같아요. ‘이러면 주님이 기뻐하실까?’ 고민하고, ‘선이 뭘까?’, ‘의가 뭘까?’, 그리고 ‘솔직함이 뭘까?’ 계속 물으며, 행동한 것 같아요.

동시에 나의 선행이 구원을 얻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기에, 내가 선행을 베풀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도 다시 하게 해줘요.

그래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빛과 소금’이라 하신 그 말씀을 깊이, 아주 깊이 묵상할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음이 아립니다. ‘나를 어둠에서 끌어내시고, 주님이 나를 빛 안에 거하게 해주셨구나. 그리고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의 죄를 보시고도 나를 빛이라 소금이라 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오늘도 그 소명 다하려 합니다. 날마다 주님을 더 닮아가며, 은은한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고 싶다는 소망을 마음에 품은 채 오늘도 세상에 나아갑니다. 모두 삶 속에서 ‘나는 주님이 빛이고, 소금이라 하셨어. 그 기쁨을 삶 속에서 전하자.’라는 마음으로 이번 한주도 살아가길 바래요 :)


12/23 오늘의 말씀

[잠3:27]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저는 5개월 동안의 인턴 생활을 내일이면 마칩니다. 몸도, 마음도 자주 지쳐서 힘없던 시간이었어요. 저는 음식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는데, 햄버거를 일주일에 한 번은 먹게 되는 생활을 하다 보니 햄버거가 정말로 싫어졌어요. 이런 작은 깨달음부터 큰 깨달음까지 일하면서 많이 얻었답니다.

그런데 가장 큰 것은 ‘다들 힘들구나.’라는 생각이었어요. 전화로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상대방과 다투는 모습, 짜증 난다고 수화기를 내리치듯이 내려놓는 모습, 상사에게 실적에 대해 잔소리를 듣는 모습까지. 정말 다들 너무 힘들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한 게 ‘나만 힘든가. 다들 힘든데 나라도 이 자리 묵묵히 지키면서 조금이라도 돕자.’라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수화기를 내리치는 사람에게는, 웃으면서 “바쁜 일은 다 하셨어요? 힘드신 건 아는데, 조금만 조용히 내려놔 주세요.”라고 말하며 초콜릿을 주었답니다. 매번 전화로 싸우는 분에게는 부탁하신 일을 끝까지 하고, 몸이 힘들어도 도와드리곤 했어요.

그렇게 행동하면서 이 생각이 들었답니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오늘의 말씀은 저에게 그 답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힘들어도 그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한 것 같아요. 사람이 힘들 때, 그 상황 속에서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쉽진 않지만, 그 행동 하나가 조금은 세상을 밝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했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면서 보내려 합니다. 조금이라도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제 안에 올라오는 불평이 먼저가 아니라, ‘내가 힘든 만큼 저 사람도 힘들어.’라는 마음으로요.

부디 이 마음, 주님이 주신 마음이라 믿으며, 기억하며 남은 삶도 살아가길 기도하며, 여러분도 각자의 위치에서 조그마한 선이라도 베풀 수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베풀길 바랍니다 :)


12/30 오늘의 말씀

[창1:3-4]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2024년 마지막 오늘의 말씀입니다. 적기 전까지 이날을 생각하면서 이어왔어요. 매번 적으면서 정말 많은 고민에 빠졌었죠. 그런데 2024년 동안 어찌어찌 다 적었네요. 그럼 잔말 말고, 묵상 내용을 공유해드릴게요.

태초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과학에서 이야기하듯이 세상을 커다란 폭발로 만드시지도 않았어요. 하나님은 말로 세상에 빛을 주셨고, 그 빛이 세상을 비추면서 어둠으로부터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빛을 좋아하셨어요. 빛은 어둠에 덮여 있던 이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 나누었죠.

저는 오늘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만유의 하나님이라는 사실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로 세상을 비췄다는 것이 너무 감격스러워서입니다.

살아오며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주었던 기억이 누구든지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사람의 기준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나는 이런데.”라고 한쪽에서 이야기하면 다른 한쪽에선 “나는 저런데.”라고 말하며 서로 의견이 충돌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갈등에 놓인 우리에게 말씀은 성도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것 같아요. 성도의 말은 하나님의 말을 닮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하셨죠. “‘옳다, 아니다’만 말하라.” 이 말씀처럼 우리의 말은 질서 있고, 분명해야 해요.

그래야 세상이 더 밝아지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질서가 바로잡히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이 혼란스러운가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나 싶을 때가 있나요?

그럴 때 오늘의 말씀을 떠올리며, 한 번 내 말이 어땠는지 생각해보고 바꿀 게 있나 고민해보세요. 그리고 삶이 바뀌는 걸 경험하길 바래요. 하나님이 어두운 세상을 빛으로 밝히신 것처럼.


1년간 꾸준히 주일 밤~월요일 새벽 사이에 묵상한 후기


힘들기도 했지만, 꾸준히 말씀과 거리를 더 좁히고 싶었다. 안다. 내 마음은 계속, 자주, 그리고 쉽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 한다. 내 안의 두 법이 싸운다. 하나님을 따라가려는 마음과 내 뜻대로 하려는 마음.


하지만 결국 옳은 길로 인도하심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닐까. 그게 이번 해를 보내며 하는 생각이다. 이 생각이 이번해에 내가 가장 깊이 품게 된 말씀인 마태복음 5장 13~16절이 말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칭하신 예수님께 감사와 사랑의 말을 올려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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