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빠지는 착각
1. 묵상본문
창세기 3장
2. 오늘의 주제
무질서의 기원, 타락의 현실
3. 마음에 남는 말씀
5(…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22(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4. 묵상 요약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에게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는 너무 무거웠다. 그 대가는 죽음이었다. 이 죽음은 단순히 물리적인 죽음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말로 들렸다.
내가 판단하는 것이 하나님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내리시는 것의 그림자, 즉 형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이어가면서 자주 반성하게 되는 것은 공의와 사랑 중 ‘공의’에 치우쳐져 있는 나의 모습이다.
믿음이라는 것이 생기기 전까지도, 고전을 읽고, 생각하며 ‘참된 진리’를 찾아 헤매던 나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도 따지고 보면, 선을 지향하는 나의 모습이 존재했던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나의 한계라는 것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크게 깨닫고 난 후 그것을 굳이 표현하진 않는다. 그것이 이전과 달라진 것이라 생각한다. ‘내 생각이 전부는 아니니까.’
무언가를 판단한다는 것은 참 매혹적인 것 같다. 그래서 뱀도 하와를 그렇게 속인 것이 아니었을까. 죄의 속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말씀이다. 죄는 그 자체가 유혹적이고, 쾌락을 준다고 나에게 속삭인다.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이 어떤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기에, 넘어간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아담과 하와는 쫓겨나지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은 그들에게 씌워주시는 가죽옷을 입히고 보내시는 것에 드러난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들은 다시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
일과를 마치고 샤워하면서 추가로 생각난 것은 마귀가 예수님을 광야에서 세 번 시험한 때였다. 하와는 유혹에 무너졌지만, 예수님은 마귀의 세 번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이 대비 또한 나라는 인간의 연약함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5. 적용과 기도
선하신 하나님, 오늘은 주님과 같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행동하였던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숙하지만 삶 속에서 이 말씀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나 생각하지 않았던 과거를 고백합니다. 단순히 죄의 시작이라는 것에 그쳤던 나의 생각이 짧았음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나는 연약합니다. 이 묵상을 시작해야겠다던 이유처럼 죄에 한 없이 연약하지만, 판단하기를 좋아하고, 대의를 쫓는다는 이유로 주님을 멀리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나의 하나님’이라는 말에서 ‘나’만 남고 ‘하나님’은 없어져 가는 나의 생각의 흐름에 반성하고 싶어 시작했습니다.
다시 감사를 고백하고 싶습니다. 갑작스럽게 나에게 이 시간을 가지라는 마음을 허락하시고, 또 말씀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심에 감사합니다. 부디 이 교제가 헛되이 흐르지 않게 해주세요.
또 기도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나와 동떨어진 분으로 보고 있다면, 그 마음 또한 물러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단지 입의 고백이 아니라, 삶 속에서 주님이 보이시는 뜻과 신호를 붙들고 나아가길 원합니다. 이 간구 받아주시옵소서.
때가 악합니다. 이 때에 더 기도에 힘쓰라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 악한 때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무엇인지 더 간구하는 마음을 주시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내가 어떻게 그 길을 찾고 걸어갈지 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느낀 점과 질문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도 결국 뱀의 유혹에 넘어갔다. 하나님이 그들을 꾸짖을 때, 하와를 탓하고, 뱀을 탓하는 모습에서 나 또한 그런 모습이 없는가 생각해본다.
마지막 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이 나의 잘못을 보고, “이때 왜 그랬니?” 질문하신다면, 나도 그 때 이유를 찾고 있지 않을까? 그건 이유가 있었다고.
오늘은 다시 한 번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게 해주는 말씀이다. 그리고 나도 그 인간이라는 사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을 하였지만, 그럼에도 가죽 옷을 입히시는 분을 내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