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지식이 아닌 믿음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by Gabrielkim

1. 묵상본문


아모스 5장


2. 오늘의 주제


오늘 한국 사회를 보는 듯한 말씀


3. 마음에 남는 말씀


7(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12(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13(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14(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15(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21(…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재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23(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25(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4. 묵상 요약


누군가를 혼낼 때, 두 가지가 들어가야 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그것을 바꿔야 하는지. 오늘의 말씀은 이 두 가지를 모두 담고 있다.

지난 며칠 간의 묵상을 통해, 이 묵상의 목적처럼 현재 이 땅, 이 나라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마음으로 묵상을 이어나가고 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에 대해 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조용히 살아가기는 커녕, 자신의 죄에 대해 그것은 누명이다, 거짓말이다, 즉 ‘나는 잘못이 없고,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식의 말을 하고, 진짜로 그것을 믿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그것을 진실로 만들려 하는 것이다.

후안무치한 자가 지도자가 된다면, 그 조직의 수준이 그 지도자를 선출할 정도라는 인식이 자연스레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 지도자는 자기보다 더 더러운 자들을 주변에 둔다. 왜냐하면, 내가 그나마 이 더러운 것들 사이에서는 깨끗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한 책에서 내 인간관계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내용이 있다. ‘나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 이것은 단순히 이익을 바라는 사람을 만나라는 뜻이 아니라, 옳은 길을 찾아 살아가려 하고, 선을 행하며,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 원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숭고한 가치가 ‘좋은 게 좋은 거지.’식의 사고와 거짓된 정의를 내세우며 선동하는 자에 의해 유린되고 있는 것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잠시 생각이 다른 곳으로 나갈 뻔 했지만, 다시 돌아와서 적는다면, 그런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는 것,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바였다.

거짓된 예물과 찬양 앞에서 하나님은 딱 잘라 말씀하신다. ‘그거 멈춰라. 나 그런 거 안 받는다.’

기독교는 단순히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무슨 예식을 통해 내가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은 행위를 통해 그런 것이 성취되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신약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겨자씨 크기 정도의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는데, 그 믿음은 얻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굴레에 빠지는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에.

그래서 그 허물 많고 악한 자들이 지혜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해야 하는 인간의 창조 본 목적에 대해 다시 들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왜 만들어졌는가.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이 나라, 이 땅, 세상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5. 적용과 기도


정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또 이 묵상의 자리에 나를 부르심에 감사합니다. 깊은 잠을 통해 휴식을 허락하시고, 움직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제게 부어주시는 말씀이 기쁩니다. 모든 죄악 가운데에 빠진 나에게 오늘 다시 깨우치게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힘입어 오늘 또 묵상하고, 기도합니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주님이 주시는 말씀과 교제하는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지난 몇 개월 간 주님을 사모하는 성도들과 애국시민이 주님이 바라시는 정의와 공의가 마르지 않고 흘러넘치는 나라를 소망하며 얼마나 힘썼는지요. 그 말씀이 오늘 또 다시 나에게 살아갈 방향을 제시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허물에 덮여 주님으로부터 멀어질 때가 많습니다. 근심하고, 걱정하고, 불안해지는 삶 속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 말씀이신 예수님, 부디 그 은혜를 오늘 깊이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단지 나뿐만 아니라 진리를 찾는 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청춘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또 사회에서 의로우신 하나님의 빛을 어떻게 비출지, 그리고 주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리석은 자들 사이에서 주님의 선하신 말씀과 진리를 향한 열망이 있음에도, 그들이 두려워 말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주님, 부디 그들에게 능력을 더하여주시고, 기쁨으로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알고 있는 하늘나라에 대한 진리를 전할 수 있게 하시고, 전해지는 말씀을 통해 거짓의 비늘이 눈에서 벗겨지고, 들리지 않던 귀가 열리는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 나라를 놓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모두가 주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기쁨과 사랑이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 올라가는 그 날까지 이 땅에서 주님의 말씀에 따라 걸어가게 하소서. 그렇게 인도하실 전능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 느낀 점과 질문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단지 진정한 믿음이다. 어떤 엄청난 것이 필요하신 게 아니라, 그저 살아가며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것이 바라시는 것이시다.

원래 간단한 것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고려해야 할 것이 많고, 그 간단한 것을 복잡한 삶 속에 넣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간단한 것보다는 어려운,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은데, 어떻게 그 간단한 걸 먼저 생각하고 있는가.

하지만 간단한 것을 먼저 시작하면, 오히려 더 쉽게 어려운 것도 해내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저 작은 친절을 먼저 베풀고, 작은 깨달음이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삶 속에서 깊이 느끼고 사는 것. 그 작은 것이 오히려 더 큰 일을 해내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묵상이 더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매일 적은 시간이지만, 다른 일을 하다가도 이 묵상이 시작되면, 잠시 휴대전화 알림을 꺼두고, 물론 중간중간 다른 것도 보게 되지만, 말씀을 읽을 때라도 집중한다. 그러면서 글로 적어내며, 어떻게 글이 나올까 생각하게 된다.

그 모든 것이 쌓여서 나중에 ‘내가 이런 혼란 속에서 어떻게 해야하지?’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께서 이 때 주시지 않았을까?’ 하면서 찾아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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