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1. 묵상본문
이사야 1장
2. 오늘의 주제
외식적인 신앙에 대한 성찰
3. 마음에 남는 말씀
2(…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5(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11(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나는…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6(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18(…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9(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21(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24(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
26(내가…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4. 묵상 요약
나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말이 하나님의 속성을 인간의 인식에 갇힌 인간적인 ‘사랑’으로 치부될까 싶어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의 속성만 갖고 계시지 않는다. 인간적인 사랑이 아닌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공의를 갖추고 계신다.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시고, 어떠한 것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오늘의 본문은 지난 선지자들의 예언서를 묵상하고, 분석하면서 가진 깨달음과 같은 깨달음을 준다. 하나님이 더러운 제물을 받지 않는다는 박보영 목사님의 설교도 이 말씀을 바탕으로 (물론 목사님이 당연히 성경을 묵상하시고 말씀하신 내용이겠지만) 하신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키려 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는 ‘헛된 제물’이라고 못 박고 있다. 못 박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의도적이었다. 거짓된, 헛된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벌하시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런 가증한 것을 하나님은 좋아하시지 않음이 분명하다.
오죽하시면 하나님은 그것들을 보고 곤비하다고 표현하셨겠는가. 기뻐하지도 않는데, 상대방에게 선물을 주면서 나를 사랑해달라고 하는 인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하나님은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쳐주신다. 스스로 씻으며, 깨끗하게 하여라. 그것이 하나님의 바람이시다. 하지만 행위를 통해 하나님이 나의 뜻대로 움직여주시길 바라는 마음. 그것이 거짓된 제물이 아닐까.
오직 그것을 통해서만 나의 더러운 죄가 씻기고, 하나님과 같이 계셨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내려오셨고, 지금 내 안에 거하심을 알고, 믿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을 즐기기를 바라신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그 말씀처럼. 고난을 겪고, 시험받는다고 하여도 그것이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신호라는 것을 알아채고,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오자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리고 공의시다. 그러기에 원수에게 보복하시고, 대적에게 보응하여 벌을 내리시고, 그리고 이 땅이 의로워졌다고 하실 분이다. 이 사실을 의심한다면, 그것이 믿음일까. 아니면 나의 바람으로 하나님을 임의로 해석하는 걸까 고민해봐야 한다.
5. 적용과 기도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오늘도 나에게 말씀을 통해 넉넉한 깨달음을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은 더욱 나를 살아 숨쉬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누리게 합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 오늘은 말씀을 묵상하며, 더더욱 주님이 바라시는 바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갑니다. 오전에는 다른 말씀으로 나를 채워주시고, 잠들기 전 정말 짧은 이 시간을 주님과 함께한다고 느끼지만, 주님은 단지 그 시간뿐만 아니라 오늘 하루 나와 동행하셨음을 믿습니다.
주님, 내 마음이 창기 같지 않나요. 처음에 나를 만나주셨을 때도 내 마음은 창기였지만, 지금도 창기가 아닌가요. 주님의 말씀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작게라도 있지만, 그것으로 주님께는 부족하지 않나요.
압니다. 이 또한 주님이 말하시는, 바라시는 바가 아니겠죠. 주님은 언제나 제게 충분히 부어주시는 걸 테니까요. 하지만 주님 이 욕심은 갖고 싶습니다. 늘 성령 충만하여 주님의 말씀을 들고, 열방의 끝까지 달려가고 싶습니다. 내가 바라는 그 땅에 가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찬양하며 상처입은 영혼들이 주님의 사랑과 온기가 넘치는 품에 안기길 바랍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시기에, 저는 순종하겠습니다. 어떤 뜻을 내게 보여주시리라도, 내가 때론 낙심할 때라도,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넉넉하게 채우셔서 제가 그런 어리석음에 계속 빠져 있지 않고, 주님을 찬양하며 기쁨으로 나아가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다는 것이 어떤지 깨닫습니다. 내게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허락하시고, 그것은 참된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임을 기쁜 소식으로 전하심에 감사합니다. 부디 이 마음 잃지 않고, 주 안에 참된, 사랑받는 양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게 하소서.
복음의 감동이 날마다 커지게 하시고, 선한 주님의 길을 따르며, 불을 내 마음에 내려 멈추지 않게 하소서. 그렇게 이루신, 앞으로도 이루실 거룩하신 내 동행자, 동반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 느낀 점과 질문
이 묵상을 시작하고, 각 파트 별로 보통 묵상 파트에 집중하여 적고, 그 말씀을 통한 깨달음과 기도, 마지막에 느낀 점을 적는다. 하지만 느낀 점과 질문에 대한 파트는 질문이라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하나님께 질문하는 게 필요할까? 아니면 나뿐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게 필요할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것도 질문이 아닐까 싶어서 적고 있었다.
오늘은 단어 하나가 깊이 들어왔다. 13절의 성회(聖會/ solemn assembly-ESV역)는 성회(盛會-성대하게 베풀어진 모임/ major event)과 다르다. 하나님은 이것을 지적하신 게 아닐까. 거룩해야 할 기도, 찬양, 그리고 교제까지 모든 것이 단지 성대한 모임으로 그치니 그것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꾸짖으신 게 아닐까.
나는 이 묵상이 진행되며 두려움과 기대하는 바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이 묵상은 확실히 목적에도 적었지만, 단순히 읽는 게 아니라, 나의 믿음을 주님께 질문하며, 날카롭게 다듬는 것이다. 나는 오늘의 묵상을 진행하며, 너무 즐겁다. 기쁘기까지 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단지 나의 한 부분만을 강화할까 두렵다. 나의 독선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 또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 분명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