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진다는 건
1. 묵상본문
다니엘 1장
2. 오늘의 주제
세속 한가운데에서 거룩 유지
3. 마음에 남는 말씀
8(다니엘은 뜻을 정하여…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10(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내 머리가…위태롭게 되리라…)
11(…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다니엘의 지혜 또는 용기
13(…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15(…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17(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4. 묵상 요약
누구나 한 번은 무단횡단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나도 따라 걷거나, 아니면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두 가지의 선택지가 존재한다. 나는 굳이 따진다면, 기다린다.
이는 작은 나의 양심에 대한 시험이다. 조금 더 빨리 가는가? 그럼에도 규칙을 지키는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하셨다. 너는 선악과를 먹지 마라. 먹으면 네가 죽으리라. 하지만 먹었고, 그로 인해 죽음은 인간의 삶에 들어왔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물이었다.
물론 아담과 하와의 잘못을 무단횡단의 예와 동일 선상에 놓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본질은 동일하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 무엇을 선택하는가?
조금은 다르지만, 오늘의 말씀은 다니엘을 포함한 네 소년이 어떻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넉넉히 누렸는가 보여준다. 그들은 바벨론에 끌려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내 나라를 침략한 왕이 주는 음식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달리 말하면, 거룩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다시 무단횡단의 예로 돌아가보자. 무단횡단을 할 경우, 아무런 차가 보이지 않더라도, 갑작스레 오는 차에 의해 치일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은 자명하다. 또한, 그것이 단속에 걸릴 경우,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도 자명하다. 이는 양심적으로도, 또 실용적으로도 부도덕적인 행위다.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 선택의 순간이 온다. ‘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양심의 신호등은 이럴 때 빨간불을 깜빡이며 경고한다.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어떡하지?’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들게 되고, 이것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럴 때 하나를 선택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설령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어도, 그 순간 마음은 편해진다. 반대로 옳은 것이어도, 그 순간 마음이 불편할 수 있지만, 불확실성의 해소에 대해 개운함을 느낄 수 있다.
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의로움, 또는 옳음이 항상 정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특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움에 부합하는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한편, 의로운 선택을 내린다 하여도 그 또한 힘들어서 하나님께 울부짖게 된다. 대부분의 의로운 선택은 책임, 불편함,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 때로는 열을 버려야 하기도 한다. 그 하나가 의로운 것이라면, 버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책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임을 떠넘기고, 찍어내려 하고, 그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사회를 혼돈으로 빠뜨린다. 최초의 불순종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알지 않는가. 죽음이 이 땅에 들어왔고, 그것은 이 땅을 사는 동안 우리를 항상 괴롭힌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또 그런 고난 속에서 살아가는 이에게 희망을 준다. 거룩한 선택을 한 자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벨론의 왕이 그 소년들을 아름답게 보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상급을 보아라. 순종은 곧 상급이다. 순종 그 자체도 상급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라.
5. 적용과 기도
넉넉히 채우시는 하나님, 오늘도 말씀을 통해 나를 채워주심에 감사합니다. 먼저 나의 어리석음을 고백하며 기도하려 합니다. 지난 밤과 달리, 오늘 이 밤은 더 묵상을 방해하는 것이 많습니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나의 육신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 있는 내 마음을 보고 계시지요. 아버지, 나 두렵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콤하기에, 그리고 이 순종이 나에게 잠깐의 단잠보다 더 달기에 묵상을 마치고 자려 합니다.
주님 어찌하여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은 이렇게 여러 방법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하는지요. 그리고 그런 내가 주님의 말씀을 통해 씻기어 정결하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런 전능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아버지, 내 삶을 오늘 돌아봤습니다. 주님이 주신 말씀을 알기 전, 나만의 법칙에 사로잡혀 살아가던 때에도 나는 의를 찾아 살아왔습니다. 의미를 찾아 옳은 길이라 생각하는 것을 따르며 살아왔습니다.
그 때에도 주님이 나를 이끄시던 때가 있었겠죠. 하지만 내가 주님을 부정한다는 가장 큰 불순종의 죄가 있었기에 나는 의롭지 않았습니다. 나의 오만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지만 어느 날 주님은 나의 고난을 알아보시고, 나의 눈을 열어 주님의 말씀으로 이끄셨습니다. 작게만 느껴졌던 그 음성이 나를 지금 주님의 말씀 앞에 나아와 묵상하고, 예배하는 자로 삼으셨습니다.
아버지, 부디 나를 넉넉히 채워주시옵소서. 물질이 아니라, 이 땅의 것이 아니라, 주님이 부어주시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 불이 세상을 이길 수 있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닮아가며, 가장 약해질 용기를 허락하시고, 섬기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기도가 트이게 하시고,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울부짖을 수 있게 하소서.
오랫동안 모든 죄 가운데 빠져 더럽기가 한량없던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셔서 감사합니다. 이 악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필요없다 말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고, 살아계신 주님을 증거하게 하소서. 그렇게 하실 주님을 믿사오며,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 느낀 점과 질문
나는 숏다리라는 오징어 간식을 좋아한다. 전자레인지에 한 10초씩 두 번 돌리면, 바삭해질 부분은 바삭해지고, 야들야들해질 부분은 부드러워져 씹는 맛이 좋다. 그리고 씹으면서 나오는 약간의 육즙(?)이랄까, 그 즙의 맛이 고소해서 입을 즐겁게 한다.
오늘 말씀도 나에게 그렇게 다가온다. 밖에서 잠시 묵상할 때는 몰랐지만, 집에 돌아와 다시 보니 그 말씀이 주는 교훈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인다. 그래서 말씀이 꿀보다 더 달다고 하는 고백이 있는 게 아닐까.
또 생각하게 된다.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이라는 찬양처럼, 그 길은 ‘만 백성이 나아갈 길’을 하나님은 제시하신다. 그래서 행복하다. 그 길을 예비하셨으니까. 따라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앞으로 한 발 더 내딛는다. 내일도 넉넉히 승리하실 주님을 찬송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