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OK
1. 묵상본문
마태복음 5장
2. 오늘의 주제
혼란한 세상 속 성도의 정체성
3. 마음에 남는 말씀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23(…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44(…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48(…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4. 묵상 요약
행복. 위대한 철학자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이 ‘행복’이라는 가치를 인간의 삶에서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최고의 선은 행복이다. 모든 것을 하는 것의 목적이 무엇인가. 궁극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바로 행복이다.
이것이 대부분의 행동의 이유다.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것을 하는가? 때로는 자신을 해하면서 그것이 행복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혹시 쾌락을 행복과 동일하다고 착각하며 살진 않는가?
나는 마약을 정말 싫어한다. 한 개인의 삶을 뿌리까지 뽑아버려서 회복하지 못할 상태로 만드는 순수 악 그 자체이다. 하지만 마약은 최초의 궁극적인 쾌락 뒤에 찾아오는 것은 갈증과 그 갈증을 처음의 마약을 제외하고는, 그리고 처음의 마약보다 더 강력한 마약이 아닌 이상 줄 수 없는 쾌락만을 좇게 만든다.
과거 존 파이퍼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죄를 왜 짓는가? 죄는 우리에게 쾌락(pleasure)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뱀의 혀를 놀리는 위정자를 욕하고, 그에 놀아나는 사람들을 멍청이라 얕잡아 보고, 무심한 대중을 보며 분노한다. 솔직히 화가 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 감정에 집중하게 되면, 끊임없는 굴레에 빠지게 된다. ‘발생-분노-피로-발생…’의 반복이다.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도 존재하지만, 반대로 비관적인 전망도 존재하는 것이 현재 세상이 나아가는 방향이다. 어떤 것이 다가올 미래일지 예측할 수 있기에, 희망을 찾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이 상황 속에서 어찌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면서 거짓 선지자들이 끝날이 다가올 수록 많아질 것이라 하셨다. 실제로 그렇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하는 이단(대부분이 알 것이다. 나는 이것들에게 교회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를 꺼린다.)과 하나님을 부정하는 악한 유물론에 빠진 자들. 그리고 흐뭇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 손을 잡거나, 서로 웃고 행복한 척하는 것. 이런 가짜를 나는 가증스럽게 여긴다.
모두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울부짖는다. 주님, 도대체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바꿀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 안에 답이 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면,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오늘 말씀은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큰 말씀이어서 그 안에서 기존에 내가 누리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 좀더 깊이 들어갈 수 있을까 했지만, 감사하게도 그 기쁨을 허락하신다.
의에 굶주린 마음으로 당신을 향해 울부짖는 걸 아신다. 내 안에 어떤 선한 것이 없기에 마음이 청결하길 구하는 걸 아신다. 그래서 오늘은 나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말씀하신다.
전에 교회 전도사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당신의 아버지께서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어찌 사랑하시는지 여쭤보았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사랑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지난 묵상 중에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에 대한 내용도 기록하였다. 의에 굶주리고, 마음이 깨끗한 자들이여. 너희가 예배하고, 예물을 올리는구나. 그런데 부족한 게 있다. 바로 사랑이다. 용서하라. 잘못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라. 안다. 네가 얼마나 화나는지. 그래도 기도해주자. 한 번 기도해보자.
이것이 오늘하시는 말씀이신 것 같다. 하늘을 바라보며 걸어가면 장애물이 없을 때는 희망차게 걸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다 땅에 있는 것에 부딪히거나, 걸려 넘어지면, 그 대상이 밉고, 걸리적거리고, 분노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작은 분노로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이 상황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다면, 분노할 일을 허락하시는 것에도 감사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며 싸워나가는 것. 참 신기하게도 이 묵상을 위해 말씀을 보고, 잠시 유튜브의 쇼츠를 보니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 하나가 떴다. 어쩔 때는 하나님이 참 완벽한 걸 인간에게 요구하신다는 내용이다.
맞다. 하나님은 당신이 거룩하시기에, 우리도 거룩하길 바라신다. 그리고 그 거룩함을 위해 날마다 걸어가길 바라신다. 그래서 오늘도 무릎 꿇고 기도하게 된다. 내가 그럴 수 없기에, 내가 내 죄의 구정물을 십자가 앞에서 끊임없이 빼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그 작은 쾌락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되기에.
5. 적용과 기도
최고의 선생님이신 하나님, 오늘 익숙했던 말씀을 통해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도 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 밤 또 주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맺습니다.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한 때 정말 힘들 때, 주님이 여러 제자들을 두고 하셨던 이 말씀을 매번 아침마다 읽으며 시간을 보낸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나에게 위로가 되었지만, 오늘은 나에게 도전을 허락하십니다.
어찌 원수를 사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라는 것조차 저는 바라지 않고, 그 악인들의 머리를 짓밟아버리시는 하나님만을 원하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저에게 그들을 긍휼히 바라보고, 그들이 뉘우치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참 많이 참으시는 걸 압니다. 그리고 그 악인들도 주님이 사랑하시기에 참으신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나에게 말하시는 거겠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나에게 큰 도전이지만, 부디 이어나갈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내가 인간을 멀리할 이유가 더 많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님, 주님이 그 고통을 다 알고 계셨기에, 나의 마음을 열어줄 사람들을 보내셨고, 그들이 하나하나 주님께 쓰임 받아 나를 점차 바꾸시고 계심을 압니다. 내가 어찌 그걸 외면하겠습니까.
이 묵상도 결국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의에 굶주려서, 마음이 정결하길 바라기에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 어두운 밤, 혼돈과 공허가 가득한 밤에 나에게 질서와 의미를 허락하시니 오늘도 평안한 밤을 보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기도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만큼 오늘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무거운 것이겠지요. 하지만 주님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며, 또 다시, 잊을 것 같다 싶으면 다시 나에게 말씀을 통해 돌아보게 하실 것을 압니다. 육신의 것,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길 원하기에, 오늘도 이 묵상을 이어나갑니다.
두렵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옳은지. 하지만 나의 등 뒤에서 언제나 나를 나아가게 밀어주시기에, 나아갑니다. 부디 이 땅에서의 여정을 주님의 동행하심을 알고, 느끼고, 경험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태초부터 영원까지 함께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 느낀 점과 질문
쾌락과 행복. 직관적으로, 현실적으로 모두 완벽하게 구분할 수 없는 두 개념 사이에서,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논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그 행복을 제시하는 것이 기독교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그 십자가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오늘도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나에게도, 또 세상에도 주님이 보여주시는 길이 진정으로 세상이 나아가야 할 ‘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구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