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부와 미군정 사이
다들 다소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번 솔레이마니 장군 피격이 이라크에서 벌어졌다는 점이다. 미국은 솔레이마니가 이라크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측 인사를 만나 이란의 친서(내지는 이에 상응하는 화답 문서)를 전달하러 가는 길이었다. 이라크가 사우디와 이란의 중간지대인 만큼, 실질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했고, 솔레이마니는 이를 위해 이라크를 방문한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방문이 그의 마지막 방문이 되고 말았다.
미국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다. 시선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타국 장성을 테러리스트로 만들었으며, 이를 제 3국에서 이동할 때 사살한 것이다. 무인기라는 엄청난 무기를 통해 이동 중인 특정 인물을 죽였을 정도로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을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며, 동시에 미국이 얼마나 무자비한 집단인지도 한 번 정도는 느껴볼 만한 상황이다. 즉, 미국 입장에서는 치밀한 작전이면서도 완벽한 전술이었으며, 이로 인해 서아시아 정세를 일거에 회오리로 몰아 넣었고, 이란을 국제사회의 돌출된 이단아로 한 번 더 만드는데 성공했다(여기에 이란의 우크라이나 여객기 피격까지 더해져 이란은 더욱 불리한 프레임에 놓이게 됐다).
이후 이라크는 미군의 행동에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이희수 교수(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에 따르면, 이라크는 곧바로 의회에서 미군 축출에 관한 법안을 상정했으며, 이를 상당한 표 차이로 통과시켰다고 전했다. 이라크에서 반미 감정이 극에 달해 있다. 가뜩이나 부시 행정부 때 당한 폭격과 전후 처리에서 이라크는 다시금 미 군정의 간접적인 지배를 받게 됐다. 이로 인해 이라크는 사실상 행정력을 상실했으며, (유전에서 비롯되는) 많은 이익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 엄연히 자국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자본과 체제가 부재한 가운데서 미국이 실질적으로 이익을 공유내지는 독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리해 보면, 미국은 솔레이마니를 가장 피해가 적은 장소에서 사살한 것이다. 이라크는 사실상 미국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한데다 이라크가 미국에 의해 국가 기능이 일정 부분 상실됐고(전후 회복 중이긴 하나 속도가 너무 더디다), 이로 인해 이라크의 정치력이 사실상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라크가 의회에서 곧바로 미군 축출에 관한 법령을 통과시켰지만, 의미가 없다. 곧바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상응하는 금전을 지출한다면, 퇴각할 의사를 보였다. 즉, 나갈 의도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이는 주한미군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프레임이다).
이라크의 의도와 상관없이 미군이 진주하게 됐고, 당연히 퇴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미군이 이라크에 주둔할 경우 얻는 이득이 많기 때문이다. 시간을 잠시 2004년으로 돌려보자.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4년에 이라크가 생화학무기를 생산 및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공습을 명령했다. 이후 이라크가 쑥대밭이 되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걸프전 이후 미군이 세웠던 사담 후세인은 권력을 곧바로 상실했다. 미군의 폭격 이후 보병이 들어가 이라크를 강제 점령했다. 문제는 생화학무기가 당시에도, 지금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이 이익에 기반해 이라크에게 강제로 폭력을 행사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 때는 이라크의 엄청난 유전때문인 것으로 생각이 됐지만, 이번 사안을 지나면서 이라크가 지니고 있는 지정학적 가치에 좀 더 집중하게 됐다. 이라크에 미군이 주둔할 경우 미국이 필요에 따라 적으로 만들 수 있는 이란을 곧바로 견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름을 가져갈 수 있는 것 이상의 이익이라 여겨진다. 안보에서 굳이 금전적인 관계로 이익을 계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동시에 작은 총성에도 서아시아 정세를 얼리고, 이를 통해 미국이 무기 매매에 보다 적극 나설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미군의 이라크 주둔이 지니는 의미는 예상보다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종합하면, 부시 행정부의 결단은 곧 미국의 이익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귀결된 것이다. 폭격 이후 기름을 확보(?)했고, 최근 들어서는 이란의 장성을 사살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또, 이라크에 군대를 두면서 이란을 감시하고, 서아시아를 미국의 아래에 둘 수 있는 교두보를 확실하게 확보한 셈이다. 최근 들어 터키가 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 이단적인 행동을 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서아시아 전반에 걸친 미국의 적국(러시아와 이란) 견제가 상당히 용이해진 셈이다. 또, 우방인 사우디를 지켜줄 수 있다는 명분까지 갖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부시 행정부 때 이뤄진 공습이, 다소 결과론적일지는 몰라도, 얼마나 치밀한 작전이었는지 거듭 느껴진다.
다수의 미 전략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솔레이마니 장군 사살에 반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미 전략체제와 전략가들의 계산과 전술 수립을 감안하면, 미군의 일아크 폭격 및 점거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다들 경제적인 이유로 미군의 공습을 예단했지만, 지금에서야 보면, 단순 경제적 이득을 넘어 중동 질서의 지렛대를 보다 확실하게 잡고 이를 통해 필요할 경우 전운을 불러 일으키면서 미국의 영향력을 세계적으로 과시하고, 더 나아가 무기를 팔면서 이익을 챙기는 미국의 엄청난 술책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를 보면,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전략연구(Strategic Studies)라는 분과가 얼마나 필요한지 새삼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