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처리 및 역사 인식 문제에 관한 고찰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국가들(독일, 이탈리아, 일본) 중 단연 돋보이는 국가는 바로 독일과 일본이다. 20세기 중엽에 막대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각자의 역내에서 엄청난 전쟁을 일으켰다. 식민지 경영에서 후발주자였던 독일은 엄청난 응집력을 선보이면서 유럽을 집어삼켰다. 독일이 유럽을 휩쓰는 사이 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에 본격적인 침략을 감행했다. 이탈리아는 유럽 침공이 쉽지 않았던데다 독일과의 일종의 불가침에 의거해 유럽보다는 다른 대륙을 택했다. 아프리카 진출에 용이한 지리적 접근성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켰다.
독일이 유럽을 휘어잡은 사이 일본은 어렵지 않게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발 아래에 뒀다. 이도 모자라 중국의 동북지방을 괴뢰국으로 만들어 슬하에 뒀으며, 난징까지 침투해 엄청난 대학살을 저지르는 등 이미 아시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한반도와 만주로 이어지는 방대한 대륙 영토를 손에 넣은 가운데 북태평양 도서와 대만까지 품 안에 두면서 본격적인 야욕을 드러냈다. 단순 영토만 넓힌 것이 아니라 일본화를 강요했고, 각 국가들의 독립운동은 물론 문화적인 요소까지 무참하게 말살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두 국가는 미국의 참전에 의해 어렵지 않게 정리됐다. 독일은 멕시코를 이용해 미국의 뒤를 견제하고자 했지만, 치머만 전보 사건으로 인해 독일의 의도가 간파됐고, 그 사이 일본이 하와이를 폭격하면서 미국이 2차 대전에 명함을 내밀었다. 미국의 참전으로 인해 독일과 일본은 쑥대밭이 됐다. 미국과 소련이 한 편이 되어 공적인 독일을 정리했고,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예상보다 훨씬 이른 항복 선언이 뒤따랐다. 잠을 청하지도 않았던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대가는 실로 엄청났다. 이후 독일과 일본은 미군의 보호와 통치를 받게 됐으며, 이후 자연스레 서방세계로 편입, 분류됐다.
다만,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의 태도를 보면 얼마나 다른지 잘 알 수 있다. 독일은 일찌감치 주변국들과의 관계개선에 나섰다.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일으켰던 만큼, 여타 유럽 국가들의 감시망이 매서웠다. 독일은 이 가운데 발전동력을 찾기 쉽지 않았다. 이에 자동차를 위시로 하는 제조업과 워자력 발전을 근간에 두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국가를 재건하고자 했다. 단, 원자력이라는 불가결한 에너지를 다룸에 있어 군대를 포기해야 했다. 독일은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이들과의 관계 개선 및 개전하지 않겠다는 명분을 위해 병력을 양성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비록 군대를 두지는 못했지만, 독일은 경제에 적극 집중하면서 세계대전 이후 빠른 시일 안에 수습했고, 서방세계를 비롯한 지구촌을 이끄는 국가가 됐다.
독일은 외교적으로 유럽통합을 통해 시장까지 넓혔다. 통일 이후 흔들렸던 경제적 돌파구를 유럽통합에서 찾았다. 판을 뒤집는 감각의 결과였으며, 이를 추진한 독일 외교가의 능력을 새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독일의 핼무트 콜 총리는 유럽통합의 서막을 알렸으며, 이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통합을 집대성했으며, 안젤라 메르켈 총리가 이를 완성시켰다. 이를 통해 독일은 유럽연합에서 가장 큰 경제력을 지닌 국가가 됐으며, 이로 인해 역내 안건과 국제정치에 많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록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지는 못했지만, G7에 이름을 올리는 등 선도국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은 독일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독일이 유럽 본토에 위치한 국가로 전후 이웃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이 반드시 필요했던 반면, 일본은 섬나라로 외교 수립에 나서지 않았다. 이미 인접국들(러시아, 대한민국, 중국)과 모두 영토분쟁을 일으켰으며, 각종 섬을 모두 자신들의 영토로 치부하고 있다. 독일이 오히려 관계를 모색해 역내 안정을 추구하면서 경제 발전의 중심으로 삼은 반면, 일본은 섬나라인 만큼 굳이 관계 개선보다는 내부 정리에 나서는 것을 우선시 했다. 결국 이를 위해 일본은 역사 왜곡까지 서슴지 않고 있으며, 역내 통합은 고사하고 근린 국가들과의 관계가 형편이 없는 수준에 직면해 있다.
일본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G7에 속해 있다.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G7에 이름을 올린 일본의 경제력을 새삼 엿볼 수 있는 대목. 그러나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탄탄한 경제력을 지닌 국가지만, 국가적 폐쇄성과 국민적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외교에서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독일도 상황이 급박했기 때문에 사과하는 모습을 취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은 이와 같은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일본은 식민지를 통해 오히려 동북아를 핍박하기보다는 기여했다는 논리를 일본내 극우집단에서 벌이고 있다. 큰 문제는 가장 안정적이면서 큰 경제력을 지닌 일본이 역내 통합에 상당히 회의적이며, 오히려 이를 꺼리는 눈치다. 뒤늦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나섰지만, 미국의 탈퇴로 인해 서명이 쉽지 않다.
결국, 종합해 보면 독일은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사과를 한 것이 볼 수 있다. 물론 독일을 일본하고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독일에 기분이 나쁠 수 있겠지만, 독일로서도 당시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전후 복구와 통일 후유증을 극복하기에는 시장 확대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한국전쟁이라는 (일본에게) 특수를 통해 나라경제를 확실하게 일으켰다. 이로 인해 일본은 제조업에서 상당한 강점을 지닌 국가들 중 하나로 우뚝 섰다. 세계대전 당시 예상보다 빠른 항복을 외친 일본이었지만, 한국전쟁이라는 호기를 놓칠 리 없었다. 다시 말해, 그 결과, 일본은 여전히 반성과는 거리가 멀며, 적어도 앞으로도 할 뜻이 없는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