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위상과 역내 역할 증대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과 로이드 어스틴 국방부 장관이 지난 17일(이하 한국시간) 오산 미군기지를 통해 방한했다. 미국의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동시에 대한민국을 방문한 것은 지난 2000년 7월 이후 처음이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첫 고위급 회담이 워싱턴이 아닌 서울에서 열렸다. 블링컨 장관의 2+2 회담 후 가진 공식발표 자리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각료가 대외 방문으로 한국을 찾은 것은 지역 현안과 양국 관계를 위한 당연한 선택이라며,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을 그만큼 중요한 동반자로 여기고 있는 결과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블링컨 장관은 곧바로 한국이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에 대해 적극 언급하면서 한국의 마스크 50만개가 미국의 코로나 방역에 큰 도움이 됐고, 이중 17만개가 한국전쟁 참전용사에게 돌아갔다면서 한국의 참전용사에 대한 보훈과 이에 따른 관리에 깊은 사의를 보냈다.
사실 미 장관단의 첫 행선지가 한국인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아무래도 북핵 문제와 역내 외교 등 당면한 과제의 신중성과 한국을 좀 더 중국이 아닌 미국쪽으로 좀 더 불러 들이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일정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서 안정되어 있는 만큼, 정부를 대표하는 장관회담을 열기에 더 적절했을 수도 있다. 즉, 그냥 일정이 조정되다 보니 정해진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나라의 언론은 미 대표 장관들이 첫 순방국으로 한국을 찾았음에도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아마 일본부터 찾았다면 아주 그냥 어설픈 난리가 판을 쳤겠지만, 이번에는 왠일인지 이에 대한 내용은 눈을 뜨고 찾아 봐도 나오지 않는다. 미 주무부처 장관이 한국을 먼저 방문했음에도 한국의 국력 신장 및 위신 상승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지난 번에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일본을 먼저 방문하기도 하는 등 미국은 동아시아 정세를 바라볼 때, 항시 미일동맹을 우선적으로 고려했으며, 또한 일정상 순방에 나서고자 한다면 일본을 먼저 찾은 후 한국을 찾는 것이 그간 관행 아닌 관행이었다. 동시에 이를 두고 보수를 대변하지도 않는 보수 정당과 어느 나라 언론에서는 한국정부의 외교무능을 시종일관 꼬집으며 비난을 일삼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사실, 국력 차이에서, 미국의 전략 차원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후순위에 있는 것은 당연하나, 현 정부의 외교 행보를 종북으로 몰아야 하는 사안인 만큼 반미와 종북적 견해를 동일시 해 민심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물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에 가진 정상 간 통화에서도 한국이 뒤로 밀렸다고 닥달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으니, 외교와 안보를 아는 이들이 맞는 지 의심스러웠던 대목은 이미 숱하게 많았다.
방한 이후 블링컨 장관은 대한민국의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어스틴 장관은 서욱 국방부 장관과 각각 회담을 가졌다. 이어 18일 오전에는 외교장관과 국방장관이 함께 2+2 회담을 통해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한미 양국 최고 관료가 의견을 공유했다. 이어 공식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회담의 성과와 함께 향후 동북아의 복잡한 외교정국을 풀어나갈 수 있는 초석으로 삼을 것을 확인했다. 또한, 그간 변함없이 꾸준히 이어온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참고로, 외교와 안보 분야 주무 장관이 동시에 회담을 가진 것은 5년 전이 마지막이었으며, 앞서 언급했다시피, 한국에서 열린 것은 20년 만이다. 무엇보다 미 장관들이 한국을 먼저 찾은 점에서 한국이 더는 미국이 일본만을 동반자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반증할 수 있으며, 정부와 국민의 바이러스 대응에 따른 사회 혼선이 적고, 미국도 한국을 아주 중요한 동맹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블링컨 장관은 미 외교를 대표하는 최고 각료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바이든 부통령 안보보좌관을 지냈으며, 오바마 행정부가 2기에 돌입했을 때는 백악관 안보부보좌관을 거쳤으며, 이후 존 케리 전 국무장관(현 기후변화부문 특별대사)을 돕는 부장관으로 역할을 했다. 부장관으로 일하던 2016년에 외교차관 회담을 위해 한국을 찾은 바 있다. 이후 정권이 교체되면서 4년 간 현직을 떠나 있었으나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차기 국무부장관 후보로 거론이 됐고, 당연하게 국무부 수장으로 취임했다. 미 외교를 이끄는 자리인 만큼, 외교관료로 경험이 다분한 블링컨 장관의 선임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 산하 바이든 당시 부통령을 안보 분야에서 보좌한 경험이 풍부하며,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확실하게 대표하는 인물이다. 블링컨 장관이 모두 발언에서 다른 나라가 아닌 한국을 우선 방문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어떤 동반자로 대하는 지에 대한 반증이라며 이번 방문과 회담에 대한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정 장관은 외교장관 회담에 이어 2+2 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접근과 역내 외교 현안에 대한 접근법을 공유하면서도 한미동맹의 가치를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안보실장으로 만 3년 이상 재직하면서 외교 현안과 북핵 문제 조율에 큰 역할을 담당한 바 있다. 이에 미국도 정 장관의 경험과 입장을 두루 검토하는 것이 당연하며, 무엇보다, 미국이 한국이 그간 북한과 접촉한 만큼 이에 따른 경험과 의중을 공유하고 한미 양국이 지속적이면서 긴밀하게 접근하는데 입을 모았다고 발표했다. 이어 정 장관은 한미동맹이 포괄적이면서도 상호 호혜적인 원칙에 입각해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미 한미 양국은 지난 2019년 가진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을 보통의 군사동맹이 아닌 포괄적 동맹으로 격상한 바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미 행정부가 새롭게 출범한 만큼, 이에 대한 장관들의 유선 통화에 이은 첫 대면 회담을 통해 양국의 관계를 공고하게 다졌다.
그러나 이번 현안에서 역시나 빠지지 않은 것이 바로 한미일 협력이었다. 정 장관은 모두 발언에서 이를 먼저 언급했으며, 순서에 다라 블링컨 장관도 한미일 공조를 적극 강조했다. 오바마 행정부와 미 민주당 정부의 가치 중심적인 외교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며,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화상으로 4자 안보회담(이하 쿼드)을 통해 반중 태세에 대한 대대적인 강화를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을 고려하면 이는 예고된, 당연한 처사이기도 하다. 이에 조만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릴 것으로 보이며, 미국의 한일관계 중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도 이를 적극 수용했으며, 기자회견 이후 블링컨 장관과 어스틴 장관은 청와대를 찾아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도 이에 대해 긴밀한 대화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블링컨 장관과 어스틴 장관의 부임과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대한 인사를 전하며 바이든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의 확실한 리더십을 통해 역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고, 당연히 그 중심에 한미동맹이 자리하고 있어야한다고 확언했다.
서 장관은 2+2 장관에 앞서 열린 양국 국방장관 회담에서 확실한 대북 억제력과 양국 관계를 적극 강조했다. 국방부는 국토를 수호하고 국민을 지키고 군을 통솔하는 부처인 만큼, 확실한 대적관을 통행 양국의 운영에 대해 입을 모았다. 동시에 어스틴 국방장관은 주한미군 방위비협정에 가서명했으며, 이후 바이든 대통령의 최종 서명을 통해 다시금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한 방위비협상이 체결된다. 한국은 2019년 사상 첫 1년 잠정 합의를 뒤로 하고 미국과 방위비 지불에 대한 입장 차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이번 합의로 지난해 지출은 약 1조 1,800억원으로 결정이 됐으며 (2019년 995억원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지출이다), 2021년부터 다시금 종전 형태인 5년 계약으로 진행되도록 합의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 강화를 후보 시절부터 언급했던 만큼, 이에 따른 이행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유예됐던 사안을 지난 대표부 간 협상을 통해 잠정합의한데 이어 이번 미 국방장관의 서명으로 인해 다시금 주한미군에 대한 양국의 이견은 잘 좁혀졌다.
한편, 북한의 김여정 부부장과 최선희 외무상은 미 장관들의 이례적인 첫 방문에 아주 기대가 많았던 모양이다. 한미 양국에 허세가 잔뜩 섞인, 공세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원래 싸울 때 욕을 많이 하는 이들이 으레 허세가 많은 것을 고려하면 이해가 어렵지 않다. 한국이 입장을 잘 전해 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지난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정상회담과 같은 해 6월에 사상 처음으로 열린 남북미 정상회동에서도 뚜렷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던 만큼, 종전과 같은 방법으로 정상회담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사실, 실무 접촉과 정상회담 부재는 북한을 더욱 곤궁하게 만들 뿐이다. 현재 북한이 코로나19 관리에 신경을 쓰느라 경제력이 더 취약해 있을 점을 고려하면, 북한이 굳이 이 시국에 불필요한 언사를 내뱉었는 지 엿볼 수 있다. 특히, 최 외무상은 적대 관계 청산하지 않을 경우라고 못을 박았는데 이는 미국이 적어도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회담에서 출발하길 바라는 의도로 봐야 하며, 동시에 4월부터 재개될 수 있는 한미가 공동군사훈련을 진행하지 않길 바란다는 의도를 허세로 표출한 것이다.
미 국무장관의 첫 공식 방문이 한국인 것은 그만큼 중국의 부상과 북핵 위기로 인해 미국이 한국을 가장 확실한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동시에 양 국의 장관회담이 이뤄진 것으로 봐서는 조속한 시점에 한미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아직 미국내 코로나 관리가 양호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심각한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올 봄은 지나야 회담 일정이 조율될 것으로 짐작된다. 동시에 미일회담과 한미회담 이후 한미일 회담까지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일 기조를 적극 유지할 뜻을 어김없이 보였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단 한 번에 그쳤고, 외교적 수사에서 더는 한미일 간 협력이라는 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관계 복원과 다자체제 복귀를 적극 선언한 만큼, 국제사회의 폭넓은 협력을 통해 중국을 적극 견제하며 북핵 문제를 바라볼 것으로 보인다(민주당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에 나설 이유가 없으며, 나서고자 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분명한 것은 이제 외교무대가 코로나 시국 이전처럼 다시 요동치고 있는 것이며, 이번 2+2 회담은 이에 대한 서막이라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