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서막을 올린 미중관계
미중 외교진이 마주했다. 미중 외교라인은 지난 19일(이하 한국시간)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회담을 가졌다. 알래스카는 미중 사이에 위치한 미국 영토지만, 미 본토와 떨어져 있는 만큼 회담 장소로 전격 결정됐다. 미국에서는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배석했으며, 중국에서는 양제츠 국무위원과 왕이 외교부장이 회담에 나섰다. 양국 외교를 대표하는 인물이 모두 나섰으며,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첫 외교진 고위급이 만난 회담인 만큼 많은 이목이 집중됐다. 특히, 미국의 블링컨 장관은 알래스카 회담에 앞서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대한민국과 일본의 외교안보라인과 직접 접촉해 회담을 가졌다. 한국과는 주로 북한 문제에 대해 상호 조율된 입장을 밝힐 뜻을 공고히 했으며, 일본에서는 대중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두 번의 회담을 통한 공식기자회견에서 각기 다른 메세지가 나온 가운데 한국과는 북한 문제 해결, 일본과는 반중 노선을 확실하게 밝혔다. 일본과의 고위급 회담 이후 앵커리지에서 열린 양 정부의 첫 고위급 회담이 열린 만큼 어떤 결과를 나을 지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됐다.
먼저, 미국의 블링컨 장관과 설리번 안보보좌관이 중국에 대한 발언을 시작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의 인권 문제와 내부 정치에 대해 신랄하게 언급했다. 신장, 홍콩, 대만까지 중국과 관련된 모든 지역을 직접 거론했다. 신장은 엄밀히 중국의 영토이며, 홍콩은 특별행정구역이며, 대만은 아직은 중국령이 아니다. 그러나 블링컨 장관은 중국의 내부정치의 약점을 모두 건드리면서 국제사회가 준수하고자 하는 인권 문제에 대한 개선과 해담을 요구했다. 이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한미 외교장관 회담과 외교안보 확대회담에서도 블링컨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그런 만큼, 중국과의 회담에서는 더 날을 세울 것으로 예상이 됐다. 하지만 블링컨 장관이 내놓은 메시지는 훨씬 더 강경했다. 미국이 고위급 이상 회담에서 중국에 이와 같은 강경한 태도를 선보인 것은 거의 처음일 정도로 본격적인 중격 견제와 때리기가 막이 올랐음을 알렸다. 이어 설리번 안보보좌관도 사이버공격 등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중국이 국제사회의 규범을 적극 준수해 줄 것을 강조하는 등 중국 외교의 태도와 국제 관행을 따라줄 것을 적극 거론했다. 단어 선택과 어조를 보면 얼마나 강한 입장을 고수했는 지 알 수 있다.
이어진 중국 측의 답변도 눈길을 끈다.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도 나름 강도 높은 어조를 유지했으나 겸손할 수밖에 없었다. 양 위원은 미국의 흑인 인권과 사회 문제를 언급하면서 서로의 내부적인 입장이 다를 수 있음을 요구했다. 왕 부장도 마찬가지. 다른 국가과 만날 때는 한 없이 콧대를 드높이던 이들이었지만, 미 외교진 앞에서는 조율된 입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면에 적힌 담화를 읽기 보다는 미국의 입장에 반박하기 급급했다. 이를 보면, 중국 외교진이 예상한 것보다 높은 수위의 공세가 이어졌다고 볼 수 있으며, 중 고위급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예상된 발언보다는 미국이 안고 있는 인권 및 사회 문제에 공세적인 메시지를 내놓았다. 결국, 미중 양국은 공개된 최초 2분 여의 공개 발표에서 상호 간 물어 뜯는 모습을 보였다. 즉, 미중의 본격적인 대립이 막이 올랐음을 확실하게 알렸으며, 미국과 중국도 서로의 이익을 침해하는 범주 밖의 문제까지 직접 거론하면서 부딪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블링컨 장관과 설리번 안보보좌관의 발언은 단연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함께 민주당 정부를 대표하는 외교 관료로 자리매김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부임할 당시만 하더라도 블링컨 장관은 백악관 안보부보좌관, 설리번 안보보좌관은 당시 바이든 부통령의 안보보좌관으로 역할을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은 서아시아 철군 작업에 박차를 가했으며, 금융위기로 야기된 미 경제 회복에 전념해야 했던 만큼, 중국 견제가 쉽지 않았다. 하물며 중국의 당시 국내총생산 및 군사력은 지금과는 비교해 현격하게 낮았다. 여전히 가파른 경제성장을 자랑했으나 미국이 적대적으로 밀어 세울 이유가 없었다. 바이든 당시 부통령도 중국의 외교무대 진입과 국제규범 준수만 한다면 충분히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라 치켜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유지한 중국 때리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공식적으로는 협력, 경쟁, 대립 구도를 나뉘어 대응할 뜻을 밝혔으나 냉정하게 적대 국가로 자리매김한 가운데 미국이 얼마나 협력하고 경쟁할 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위시로 경제적인 분야에 집중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외교와 안보는 물론 국제 협력을 통한 다각도로 대중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 확실하다.
일전에 싱가포르의 리센룽 총리도 미중 대립이 5년 전보다 훨씬 더 심각해 질 것이며, 전쟁을 제외한 여러 분야에서 본격적인 대립 국면이 심화될 것을 밝힌 바 있다. 리 총리는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의 아들로 리콴유 전 총리는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하버드대학교 행정대학원)와 로버트 블랙윌 외교관이 저술한 책에서 미중 대립을 예기한 바 있다. 리 총리도 마찬가지로 이에 대한 견해에 동조하면서 현재의 구도를 통해 양국의 대립이 좀 더 격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여느 국제전문가들이 모두 대립을 언급한 가운데 미국의 패권 유지, 중국의 역사적 탈환, 패권 부재 시대 등 학자들이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으나 분명한 것은 미국의 우위 속에 이른 바 많은 이들이 언급하는 신냉전이 도래한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키쇼어 마부바니 교수(싱가포르국립대학교 행정대학원)는 2019년에 내놓은 "중국이 이겼는가?(Has China won?)"라는 책에서 미국의 실책과 중국의 패권 도약을 암시하고 있으며, 호주의 케빈 러드 총리도 중국의 부상이 완성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조셉 나이 교수(하버드대학교 행정대학원)는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Is the American Century Over?)"라는 책을 통해 여전히 미국의 독보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확언했다.
분명한 것은 현재 미중 대립은 시작에 불과하며, 이제 각종 다자회담과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중국을 보다 효과적으로 견제할 지, 중국은 이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임할 지가 중요하다. 미국의 공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이 수세적이지만 어떤 식으로 대응할 지가 관건이다. 물론, 미국이 동맹 복원을 천명한 만큼, 보다 확실한 우군 확보에 나서고 있으며, 중국은 이미 외교통상 대립을 통해 미국의 본격적인 우군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인도와 호주를 미국 편에 가져다 줬다. 그 밖에도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국 견제에 나선다면 국제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동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미 미국의 구매력을 앞지른 중국이 엄청난 시장력을 통해 무역을 통해 중심을 잡으려 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미중 대립 이면에 다른 국가들의 치열한 외교와 협상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소가 대립하던 냉전과는 엄밀히 다른 양상이며, 이에 신냉전이 아닌 전혀 다른 구도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좀 더 맞다. 미중 대립이 본격화된 이 때, 당연히 한국의 외교도 시험대에 섰으며, 첫 한미 고위급 회담을 통해 이를 일정 부분 입증하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