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on Lee Aug 31. 2021

끝나지 않은 아프간의 저주

끝이 보이지 않는 아프간의 냉혹한 상황

끝나지 않은 전쟁과 예견된 정치 혼란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군이 공식 철군한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빠르게 탈레반에게 접수되기 시작했다. 철군 직후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는데 약 두 달 여가  소요될 것이라는 예상이 무색한 수준이었다. 탈레반은 사나흘 만에 아프간 전역을 긴장 국면으로 몰아 넣었으며, 카불을 장악해 사실상 아프간 내부를 모두 통치할 준비를 마쳤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긴 하나 사실상 종교를 핑계로 갖은 살상과 테러를 멈추지 않는 탈레반이 다시금 아프간 전면에 등장하면서 아프간은 물론 주변 지역의 긴장도가 한 층 높아졌다. 아프간 정부가 이토록 빨리 무너진 것도 충격이며, 이를 뛰어 넘는 탈레반의 세력 강화가 단연 눈에 띈다. 미 철군 이후 아프간 대통령과 고위 관리가 재빨리 돈을 챙겨 타국으로 향한 것을 보면, 아프간 정부가 얼마나 부패에 찌들 다 못해 병들어 있었는 지 알 수 있다. 군 명부에도 가짜 병력이 많았으며, 미국이 그간 정부에 이양한 무기는 모두 탈레반에 되팔릴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가뜩이나 후진국인 아프간이 부정부패로 인해 얼마나 위태롭게 생존하고 있었는 지가 새삼 돋보였다.


탈레반은 수도인 카불을 장악하면서 사실상 아프간 전역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여느 국가에서 군부가 구데타를 통해 정권 찬탈에 나선 것과 엇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탈레반은 불필요한 무장단체이자 테러집단이다. 각 국이 특별기여자를 수송해 오면서 난민을 최소화하긴 했으나 카불공항에서 테러가 일어나는 등 일대 혼란이 가중되어 있다. 가뜩이나 탈레반이 말로만 이슬람교를 전면에 내세우고 평화 통치를 이야기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이행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상술한 것처럼 종교를 도구 삼아 무자비하게 인명을 살상하는 없어져야 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아프간 정부는 일개 무장단체를 상대로 힘을 쓰기는 커녕 제대로 대항 및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그 옛날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만 한 달 만에 도성을 장악한 것보다 훨씬 더 빨랐다. 그만큼, 아프간의 대응이 무능했으며, 고위직의 부패로 인해 수 많은 민초들이 피를 볼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본격적인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이 31일(현지시각)에 모두 철수했다. 이어 서방 선진국과 일본도 이미 항공편을 통해 필요한 인력을 데려왔다. 유럽 국가는 난민 증폭을 막기 위해 인도적인 수용에 나설 뜻을 보인 바 있으나 이내 철회됐다. 터키도 이미 시리아 난민 수용으로 인해 유럽에 반발심이 높아졌고, 경제위기와 자연재해로 외부 인원 수용이 녹록지 않은 만큼, 아프간발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거듭 알렸다. 미 군용기에 몰리는 인파는 비행기를 붙잡고 이륙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이로 인한 사상자도 꾸준히 발생이 됐다. 정부 기능이 상실했고, 사회적 장치와 규율이 적용되지 않는 만큼, 많은 시민들이 기초 범죄에 노출이 됐으며, 여성 인권을 상식적이지 않은 잣대로 짓밟는 탈레반의 성향까지 더해져 사회적 분위기는 그야말로 아프간 개국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하물며, 탈레반이 기존 사회를 잘 이끌겠다고 말만 하고 시민에 무차별적인 총격과 공포정치를 이어가고 있어 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으며, 인접국인 파키스탄과 이란도 난민 관리를 위해 국경 봉쇄에 나섰다. 파키스탄은 아프간과 같은 민족이라 할 수 있는 파슈툰족이 국경지대에 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도 대표적인 후진국으로 경제지표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난민 수용 의사가 없음을 강력하게 밝히고 있다. 이란도 여전히 미국발 제재에서 자유롭지 못해 쏟아지민 아프간발 시민 행렬에 상당히 부정적이다. 여기에 유럽 선진국조차 외면하면서 아프간 사람들은 졸지에 나라를 잃고 갈 곳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됐다. 최근 100년 사이에 영국, 소련, 미국의 잇따른 침공으로 많은 것을 잃은 아프간은 지난 20년 간 미군이 주둔하면서 정부의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성된 정부는 종이에 불과하게 되면서 아프간을 떠나는 이들과 떠나길 바라나 길을 잃은, 혹은 가족과 떨어지게 된 이들이 실로 많아졌다.


미국도 이번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연간 수십 조의 돈을 쏟아 부었음에도 아프간은 바뀌지 않았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에 아프간을 방문한 바 있으나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재건을 위해 미 주둔이 필요하다고 여겼으나 바뀌지 않은 후진국 지도층의 태도를 보고 상당히 실망했다는 후문. 결정적으로 미국도 재정적으로 여유가 많은 편이 아니며, 대중 견제를 위한 결집을 도모해야 하기에 더 이상의 군비 지출을 원치 않았고, 철군을 단행한 것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예상이 됐으나 여의치 않았고, 바이든 대통령의 전격적인 결단에 힘입어 지난 5월부터 철군을 시작했다. 미 철군이 가속화될수록 탈레반의 세력 확장은 빠르게 전개 됐으며, 이로 인해 아프간 시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받아야 했다. 결국, 미국조차도 아프간 침공 이후 끝내 탈레반을 완전 소탕하지 못했다. 물론, 미국이 가진 대부분의 전력을 쏟았다면 아프간은 리비아처럼 삭제될 수 있었다. 그러나 빈 라덴 사살 이후 미국은 물러서길 바랐고, 금융위기와 재정문제가 겹치면서 철군을 바랐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병력을 증편한 이유도 빠른 소탕을 통한 조기 철군이라는 목표에 다가서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탈레반 완전 퇴치는 어려웠다. 아프간은 지형적으로 힌두쿠시산맥에서 비롯된 산악 지형이 많다. 즉, 탈레반은 여러 산새에 매복하면서 꾸준히 생존을 이어갔고, 이를 통해 미군을 상대로 꾸준히 저항할 수 있었다. 미군이 자리하고 있을 때도 산발적인 전투는 있었으나 전면전은 없었다. 즉, 미국은 탈레반 소탕이 쉽지 않다고 판단, 합의 후 철군을 위한 협상에 돌입했다. 탈레반은 당연히 미군이 물러나는 만큼, 겉으로는 합의했으나, 종국적으로 주요 병력이 빠져나간 이후 본색을 드러냈다. 박현도 교수(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에 따르면, "20년 상간으로 영어만 늘었지 그들의 철학이나 이념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며 탈레반이 다시금 총칼을 전면에 내세운 무시무시한 공포정치에 돌입할 것을 암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프간 정부의 몰락 이후 탈레반의 득세와 다른 단체의 자살 테러로 인해 아프간에는 3중, 4중 이상의 복잡다단한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역내 긴장 또한 점증할 수밖에 없다. 아프간은 중국, 중앙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중동)와 인접한 지정학적 교두보에 속한다. 아프간의 혼선으로 중국과 다른 아시아의 안보 상황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작가의 이전글 홍범도 장군, 대한민국에 잠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