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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Lee Oct 29. 2021

한국, 과잉 노동 대표 국가

부끄러운 자화상과 여전히 처참한 민낯

사람은 한낱 부속에 불과한 사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하면 국제사회에서 노동 시간이 가장 많은 국가 순위에서 다른 국가들과 압도적인 차이를 자랑하며 1위를 내달렸다. 1등만 고집하는 치열한 대내 경쟁 지표를 국제사회에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많았다. 독보적인 노동시간과 엄청난 자살률이 단연 대표적인다. 행복지수나 만족도 따위는 개를 주기도 미안할 정도로 한국하면 많이 일해서 불행하고, 쉬지도 못해서 만성 피로에 찌든, 당연히 가정 생활에 충실한다는 것이 이상한 사회적 인식을 갖고 있다. 반대로 보면, 가정에 충실할 수 없으며, 피곤하지 않은 직장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당연히 행복은 고사하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바닥에 찌들어 있으니 자살하지 않고, 이혼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 중에서도 한국은 노년 자살율 1위와 청소년 자살율 1위를 동시에 석권하고 있을 정도로 가장 빨리 성공한 국가임에도 가장 빨리 찌들어가고 있는 곳이다. 참고로 자살율 단독 1위에 오른 지는 몇 해 전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오래된, 헤묵은 사안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한국이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애를 쓰는 척만 하는 사이 멕시코가 독보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멕시코는 무려 연간 평균 2,200 시간이 넘는 노동을 하는 것으로 집계가 됐다. 한국은 힘 있는 중견 국가인 것과 달리 멕시코는 중진국(내지는 그 이하)라고 볼 여지가 많기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그러나 1등만 고집하고, 이른 바 소수가 구축하고 있는 특유의 권위 체제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곧바로 패배하고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이 되는 한국에서 멕시코에 단독 선두 자리를 내준 것은 여러모로 기성 세대와 한국 사회가 뼈아파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은 그 많은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도 멕시코에 밀린 것은 사뭇 배아파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치가 떨리는 자조다. 그러나 해갈이 되지 않는다. 과로로 인한 만성 피로를 떠나 이제 죽음과 마주하는 상황 또한 당연히 급증하고 있다. 당연히, 얼마 전에 제기되기 시작했던 것도 아니다. 이전부터 오랫동안 거론이 됐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가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과로사(過勞死)라는 한자의 일본식 병음(카로시)이 세계적으로 훨씬 더 유명하다. 한국은 이 부문에서도 일본에 졌다. 즉, 교통사고율, 사망율, 근무 시간 등 웬만하면 입에서 내뱉기 부끄러운 부분에서 모두 악화일로를 거듭하고 있음에도 세상은 전혀 바뀌지 않고 있으며, 국가를 이끌어야 하는 정치권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주 차갑다. 아니 무관심하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인데, 멕시코에 밀리고 일본에 치인 것은 부끄럽지 않아 하고 있다. 


비단, 정치권만 욕할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 구조와 시민 의식도 집고 넘어가야 한다. 세계적으로 한국의 장점을 거론할 때, 여러 요인이 있지만, 부끄러워 해야 하나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택배에 관한 것이다. 이제는 이전에 비해 엇비슷한 가격을 지불하고도 물건을 집앞이나 근처까지 배달을 받을 수 있는 시대에 도달했다. 이것도 당연히 오래됐다. 문제는 이걸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가만히 보면, 수익 구조에서 배달원이 가져가는 부분이 거의 없거나 엄청 적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택배가 제 때 오지 않으면 짜증내는 이부터 (자랑인 마냥) 성곽을 두루고 사는 있어 보이는 척하는 이들이 배달을 직접 해주길 바라는 등 별 이상한 군상을 다 볼 수 있다. 마치 이를 본인의 권력인 마냥 아주 졸렬하게 착각하는 이가 있는 데, 이 또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수준 미달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택배 업무는 새벽녘부터 시작이 된다. 배달물품을 짐차에 한 가득 싫어 자신이 맡은 구역을 순차적으로 돌아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사람이 하다보니 물류창고에서 물건이 섞일 수도 있으며, 또한 차에서 배달하는 와중에 다른 이에게 잘 못 배달이 되기도 한다. 당연히 짜증부터 내야 한다. 그리고 배달원은 고개 숙여 사과를 수십 번도 더 해야 한다. 좋은 고객이 하나 있으면, 그렇지 않은 고객은 서너 배 이상은 많다고 봐야 한다. 이를 제외하더라도 당장 하루에 소화해야 되는 배달량이 엄청나다. 게다가 한국은 수익 구조상 원청 업체나 기존 기업이 가져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즉, 배달원은 수수료를 받는 셈이다. 실컷 하루 종일 배달일을 하고 이를 한 달 치로 묶었을 때 배달량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구조다. 당연히 고되고 힘이 들 수밖에 없다. 하는 만큼 가져간다는 것을 장점으로 볼 수 있으나, 냉정하게 아직도 숫자와 건수에 연연해야 하는 부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지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그럼에도 일을 해야 한다. 우리 모두 자랑스러운 한국식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아야 한다. 죽는 것도 눈치 봐야 하는 나라인 이곳에서 당연히 회사와 고객의 눈총을 피할 수 없다. 근로 행위의 일환이기에 스스로가 결정할 수도 있어야 하나, 이 곳에서는 '과로'를 투혼으로 오용하는 경우가 아직도 팽배하다. 노동자는 지칠 수밖에 없다. 비단 배달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는 바뀌지 않는 것에 대한 것이다. 당장 많은 근로 시간, 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 이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모두 불손하게 뒤섞여 있다. 그럼에도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택배로 인해 짜증내는 이를 아주 많이 봤다. 이를 보면, 상대를 얼마나 예의 없게 대하는 지 알 수 있다. 정신병리 증상을 호소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확실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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