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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Lee Jun 29. 2022

전과 같지 않은 미국의 영향력

단극 체제의 종언의 신호탄

줄어든 영향력과 전과 같지 않은 위상

미국의 입김이 더는 예전과 같지 않다. 가깝게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멀게는 지난 해의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던 미군 철수에서 엿볼 수 있다. 좀 더 시계를 되돌려 보면,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 분쟁을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미국이 더는 예전과 같은 상황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미중 간 양자 무역 관계에서 미국이 중국산에 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대내 시장 물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단순 중국이 싫어서 당선된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는 단순하게 보면 호쾌하고 시원해 보이나, 장기적이면서 심층적으로 본다면 결코 미 대내 시장 유지에 결코 이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조처는 당연한 것이었으며 필요한 것으로 인식된 경향이 팽배했다.


아프간 철군도 마찬가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철군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두 번째 임기 때 오히려 병력을 증파했다. 전쟁 종식을 통한 깔끔한 철군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도 이를 두고 백악관 내부에서 찬반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결정은 병력 증가였고, 이로 인해 훨씬 더 많은 비용이 아프간에 투입됐다. 당시 조 바이든 부통령은 아프간을 방문한 바 있으며, 미국의 예산이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을 넘어 버려지고 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후 그는 대통령이 된 이후 신속하게 철군을 서둘렀다. 미군이 철군 결정 이후 집을 버려두고 떠나는 과정은 긍정적인 의미로 신속했으나 부정적인 뜻으로는 장기 주둔이 얼마나 무익했는 지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철군 이후 아프간이 다시 탈레반에 의해 재전복되는 것을 보면, 미국이 그간 연간 20조원을 아프간에 그냥 버렸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세 번째는 러시아의 침공이 자행됐고, 이후 미국의 수습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서방 정상들은 강도 높은 제재를 내걸기로 했다. 러측의 침공이 자행된 첫날 백악관을 시작으로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물론 유럽연합까지 각 정상들이 직접 나와 제재와 교역 단절을 거론했다. 유럽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매입을 본격적으로 포기했을 정도. 이게 다가 아니었다. 서방 진영은 SWIFT 제재를 포함해 금융 시장에서 러시아의 제외를 내세웠으며, 이도 모자라 러시아 재벌들의 자금을 묶어버렸다. 이로 인해 미국, 캐나다, 유럽은 팔 하나 내줄 각오를 하고 러시아를 철저히 시장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배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물며 대한민국과 일본을 비롯한 미 동맹과 지구촌 내 대부분의 국가들이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했으며, 스위스와 같은 대표적인 중립국은 제재에 참여했고, 스웨덴과 핀란드는 손을 잡고 북대서양조약기구에 들어가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아 보였다. 개전 이전에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고, 바이든 행정부의 이중적인 인권 문제 강조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시진핑 주석의 이른 바 러 지지 입장 철회는 불가해 보였다. 미중관계가 양호하지 않았기에 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사우디의 모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바이든 대통령의 전화를 받지조차 않았으며, 이스라엘과 인도가 이른 바 반러 제재에 동승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최우방이면서도 실질적인 동맹 이상의 관계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러시아와 거래를 위해 함께 하지 않았다. 이어 남아시아의 맹주인 인도도 함께하지 않았다. 오히려 러시아와 유가 거래에 나섰을 정도로 인도는 독립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후 미국과 인도는 2+2 회담에서 미국이 강력하게 촉구했으나 인도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즉, 러 침공이 감행된 이후 이스라엘, 사우디, 인도의 이른 바 제재 미편승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았다. 세 국가 모두 미국의 우방이면서 사우디와 인도는 중동(서아시아)과 남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일정 부분 대변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사우디와 미국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사우디 국왕의 회담 이후 안보와 경제(석유)가 교환되는 양자 관계가 됐으며, 이후 꾸준히 양국 관계는 증진했다. 오히려 사우디가 안보 위협으로 이란을 배제하는 것이 당연했기에 미국은 이란을 두고 관계 정상과 적성 국가로 돌리는 것을 서슴지 않았을 정도. 이를 고려하면,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돈독해야 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첫째, 빈 살만 왕세자가 권력 찬탈 과정에서 자행한 살상을 이유로 반인권적 행위로 전격 규탄했으며, 둘째, 이란과 핵협정 복원에 나서면서 사우디의 반발을 샀다.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고 사우디에 배치된 미 군사 자산을 빼내오면서 양국의 관계는 악화됐다. 이란 핵 협정 딜레마가 여기에 있으며, 왜, 미국이 그간 이란을 적대화했는 지는 철저히 이익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번에 바이든 대통령이 오는 7월에 사우디를 방문하기로 하면서 양국 관계는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미 정상이 사우디를 찾는 것은 그간 흔했던 경우다. 사우디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그리 이상한 수순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이미 사우디를 먼저 찾은 바 있다. 다만, 이번 경우는 바이든 대통령이 빈 살만 왕세자와 먼저 유선 연결을 시도했으나 거절된 이후 방문하는 것이다. 즉, 미국이 얼마나 조급한 입장인 지 알 수 있다. 석유 가격이 치솟은 결과 세계적인 유가는 고사하고 당장 미국이 마주해야 하는 상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전쟁 직후,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에 석유 증산을 요청했으나 거절을 당했다. 사우디는 석유 증산을 통해 일 생산량의 단위를 바꿀 수 있는 지구촌의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석유수출기구(OPEC)의 실질적인 수장국가임을 고려하면, 사우디가 미치는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미국의 외교 실패로 인해 사우디가 미 전략에 편승하지 않으면서 유가가 현재에 이르게 됐다.


인도도 마찬가지. 인도의 자이샨카르 외교장관은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부장관과의 회담에서 인권 조치에 대한 권고를 받았다. 이에 인도는 차분하게 반응했다. 미측의 대내 인권 문제도 그리 안정적이지 않은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자이샨카르 장관은 "미국의 편에 설 것인지, 중국의 편에 설 것인지 묻는다면, 인도의 편에 설 것"이라는 자국 외교장관다운, 아주 당연하지만 한국에는 엄청 이상하게 들릴 말을 남겼다. 이를 보면, 인도가 얼마나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지 알 수 있다. 바이오쪽 선진국이기는 하지만 중국과의 무역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만큼, 중국과 관계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쿼드(미일 주도 4자 안보기구)에서 다소 반중 노선으로 향하는 것을 인도가 제어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러시아와의 거래도 만만치 않다. 인도도 유럽 못지 않게 천연가스가 필요한 나라 중 하나라고 봐야 한다. 산업 유지를 위해 러시아산 가스만한 것이 없기 때문. 이에 인도는 미국의 거듭된 촉구에도 불구하고 자국 화폐인 루피와 러시아 통화인 루블로 거래에 나섰다. 미 달러로 결재해야 하나 해당 절차 없이 무역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미측도 반발한 것이다.


현재 상황을 보면, 미국이 내건 "규정에 기반한 자유주의적 국제실서"가 부분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규정은 미국이 제시하는 것이고, 자유주의도 좁게는 미국에서 넓게는 서방의 관점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제재가 역대 최고 수준이었음을 고려하면 하다 못해 인도라도 미국의 편에 섰어야 제재의 효과가 좀 더 강력했다고 봐야 한다. 반대로, 중국을 되돌리지 못한 부분이 2022 올림픽 개최 전후 사정을 통해 이미 예고가 됐던 것을 고려하면, 미 중심 질서에 균열이 인 것은 분명하다. 미국과 함께 해야 하는 국가들조차 자국의 이익을 제쳐두고 미국과 함께 하지 않았다. 그간 한국은 한미 간 수직적인 질서에 있었던 탓에 줄곧 한국보다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정책에 동조해야 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에 미 전력에 의존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이스라엘, 사우디, 인도의 행보를 보면, 이른 바 미국의 말발이 얼마나 전과 같지 않은 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결정적으로, 미국은 큰 두 가지 사건(미중무역분쟁 & 러시아 침공)을 통해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모두 적으로 돌려 세우는 우를 범했다. 냉전 당시 미국은 중국을 우군으로 불러들이고자 했다. 중소 관계가 악화된 틈을 본 것. 이에 1972년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방중에 나섰으며, 이후 덩샤오핑 총서기의 방미까지 이뤄졌으며, 1979년에 미중 수교가 성립된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세계경제체제로 불러들였고, 이를 통해 미국은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일원화된 국제 질서를 수립할 수 있었다. 반대 급부로 중국이 엄청난 성장을 통해 현재의 지위에 이르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러시아와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던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의 외교 실패와 러시아의 호전성에 기반해 영향력 행사에 나섰으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러시아의 악마화를 시작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모두 돌려세웠다. 세계 2위 군사 대국과 세계 2위 경제 대국을 모두 적으로 만든 셈이다. EU와 인도가 미국의 편에 전격적으로 서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EU와 달리 인도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인도는 서방과 중러 중간에 서 있는 입장이다.


종합하면,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가 소집되더라도 UN 주도 대북 제재는 더는 이전처럼 타결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안보리 회원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모두 반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3월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섰음에도 미국이 이렇다 할 논평을 내놓지 못했다. 미 입장에서 굳이 신경쓰지 되지 않아도 되는 사안이긴 하나, 조치가 늦은 부분은 여러모로 미 질서 유지에 좋은 신호는 아닌 것 같아 보인다. 뒤늦게 대북특별대표부가 6월 초에 만났고, 한미일 차관회담과 한미장관회담에 순차적으로 열렸으나, 북한 관리에는 이미 실패했으며, 국제사회가 함께 해 북한의 핵을 버리게 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졌다. 문제는 앞으로 미국이 국제사회를 이전처럼 이끌어 갈 수 있을 지에 달려있다. 이에 우리도 적어도 인도처럼 국익에 기반한 외교를 펼쳐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이를 포기했다. 미국의 끝발이 더는 예전과 같지 않음에도 우리는 다른 영향력이 상당한 국가들(중국, 러시아, 인도)과의 관계에 엄청 회의적인 상황이다. 현 시국에서 친미를 넘어선 종미가 얼마나 위험한 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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