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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Lee Oct 09. 2022

인생의 속도

상대적이면서도 누구에게나 절대적인 것

삶: 유한하다 못해 아주 짧은

아주 먼 옛날 옛적 이야기다. 소싯적에 고등학교라는 곳을 다니기도 했다. 그 곳에서 별로 좋은 기억은 없다. 배운 것도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친구 한 명 정도 만난 것 빼고는 인생에서 덜어낼 수 있다면 가감없이 지우고 싶을 뿐이다. 그런 고교에서 인상적인 공부시간이 없진 않았다. 과목도 이상한 생활국어 시간을 맡으신 선생님께서는 당시에도 연세가 있으신 편에 속했다. 교편을 잡고 오랜 시간 학교를 오가면서 경험을 더한 그분은 수업 중간에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따금씩 이야기하곤 하셨다. 물론, 그 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학생은 밀려오는 졸음을 붙잡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유일한 친구인 짝궁도 마찬가지였다. 그 친구가 잠을 청할 때면 꼭 선생님께서 교봉을 목탁 두드리듯 두드리면서 친구의 이름을 부르곤 하셨다. 옆에 있는 본인이 살며시 깨우면, 세상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본 후 선생님을 보며 연신 고개를 숙였던 기억이 아주 많다. 물론, 이 친구는 공부도 잘 했고, 아주 총명했다. 그 시절 다들 학원 하나씩, 과외 하나씩 할 때 그 친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해당 계열에서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아주 명석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부러웠다. 그 친구의 공부하는 능력과 자신감이. 물론, 바란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공부를 아주 못했던 본인은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사설이 길었다. 선생님은 이따금씩 조는 학생들을 깨우면서 해주신 이야기 중 하나가 있다. 바로 인생의 속도에 관한 것이었다. 살면 살수록 와닿는 이야기다. 선생님의 말씀은 간단했다. 이른 바 나이를 뜻하는 숫자만큼, 인생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껴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고교 시절과 국방부 소속이던 당시를 제외하면 인생의 시계는 아주 가파르게 지나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20대에는 이른 바 20km, 30대에는 30km, 40대에는 40km로 향한다는 것이었다. 갸웃 하면서 들었다. 그러나 듣던 당시에도 이해는 어렵지 않았다. 놀랍게도 살아갈수록 이해가 된다.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은 오랜 만에 만날 때면 연신 시간타령을 하신다. "시간 정말 빨리 간다"부터 "금년도 몇 달이나 지났다"거나 "2021년도 몇 달 남지 않았다"까지 다양하다. 결론은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다.


생은 한 번 뿐이다. 상대적인 시간은 빠르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것을 하거나 적어도 하기 싫은 부분과는 가급적 멀어질 수 있는 인생이 적어도 덜 피곤한 것은 분명하다. 혹은, 행복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도 아직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어디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시간은 나의 삶에 비례해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과 또 해당 분야에서 성취에 도달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며, 많은 시간과 금전을 필요로 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으면 실패한 인생은 아닐 것이다. 반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을 영위하기 위해 다른 것을 택해 일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당연히 성공한 것이며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고교 시절에 추억이 없어 떠올릴 이야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똑똑한 친구를 만날 때면, 아주 간혹 그 때 이야기가 흘러 나오곤 한다. 그 친구도 웃으며 당시를 떠올린다. 내가 알량하게 아는 바로는 그 친구도 고교 시절을 나만큼은 아니겠지만, 썩 좋아하지 않았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같은 시골 출신으로 학교에서 만났지만,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던 친구는 좋은 곳에서 멋진 가정을 이뤄 삶을 꾸려가고 있다. 자랑스러운 친구다.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지만,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거나, 혹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느낄 때면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인생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 고로, 인생은 유한한 것을 넘어 아주 짧다는 것이다. 별볼일 없는 고교 시절 유일하게 건진 인생에 도움이 되는 말이다.


(21. 11. 6.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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