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은 외교 자주권 상실
유럽이 지난 해 말을 기점으로 중국에 손을 내민 가운데 미국도 연중에 중국에 온화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아직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중국이 세계 최대 시장으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 실제로 유럽연합은 중국과의 무역 조정이 가장 중요했다. 또한, 미국이 실질적인 전쟁 당사국인 만큼, 중재가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중국이 해당 역할을 해줘야만 전쟁을 누그러트릴 여지가 생긴다. 유럽은 정치경제적인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해 베이징 방문을 주저하지 않았다.
당연히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난 5월 말에 열린 상원 외교위원회는 대중 관계 설정을 위한 정부의 보고를 받는 자리였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장관을 필두로 로이드 어스틴 국방부장관, 지나 레이먼도 상무부장관이 배석해 해당 부처의 입장과 함께 현재 미 정부의 기조를 설명했다. 블링컨 장관은 기조연설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종전 상황에 따른 차별화(적대, 경쟁, 협력)가 아닌 다변화를 통한 위험요소를 줄이되, 탈동조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기술 분야를 비롯한 미 국익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를 제외한 대부분의 요소에서 협력할 의사를 보인 것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가장 유화적인 메시지가 발신된 것이다. 그 자리에서 블링컨 장관은 중국과 물밑 접촉에 나설 의사와 함께 펜타일 이슈를 비롯한 현재 미국 내 확산된 실질적인 중국산 약물 규제에 포괄적인 접근을 시사했다.
미국은 유럽과 다소 입장이 다르다. 전쟁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손에 넣었다. 그 사이 멍청해진 한국을 상대로 엄청난 외교적 갈취는 물론 한국 대기업의 이익까지 가져갈 수 있는 초석을 다졌다. 그랬기에 유럽이 미국과 완전 밀착이 아닌 중국과의 접촉을 택한 것이며, 더는 미국을 완전한 동맹으로만 믿기 쉽지 않다는 암묵적인 의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내에는 펜타닐 문제가 심각하다. 필라델피아를 위시로 대도시에 마약 물질이 대거 퍼져 있기 때문. 멕시코를 통해 밀반입되는 문제가 이어진 것은 트럼프 행정부(혹은 그 이전)부터 지속된 사안이었다. 중국산이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블링컨 장관은 연내 중국 방문이 사실상 예고된 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주재 중국대사가 임명된 이후 블링컨 장관은 중국을 찾아 친강 외교부장과 회담에 나섰으며, 왕이 중국외사공작위원회 주임과 만난데 이어 시진핑 주석과도 만나 미측의 외교 기조와 함꼐 관계 설정에 대해 설명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유럽과 미국이 각자 다른 이유로 중국에 접촉을 시도했고, 그 사이 일본은 북한에 손을 내밀었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북한에 북일 수교를 제안했기 때문. 물론, 북한이 일측의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북한이 일본과 수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 협상이 필요하기 때문.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일 삼자협력이 제안하는 단계적 협상, 인권 문제 조치를 모두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 한미가 접근해도 어려운데 북한이 극도로 싫어하는 일본이 들어가 있다면 협상은 고사하고 대화가 열릴 리 만무하기 때문. 즉, 그랬기에 한국은 정부의 성격을 떠나 일본을 제외하고 대북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게다가 우리 문제이기 때문.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현재 여당은 미국과 같이하는 것을 넘어 일본에 고개를 조아리는 것을 넘어 굴종하고 있다(굴욕 외교가 아니라 그냥 굴욕).
그 결과, 역내 모든 국가들이 한국을 무시하고 있다. 미국의 전쟁 지원에 관한 요구를 유동적으로 거절했어야 했다. 이럴 때 북한 문제를 들이밀며 미측의 제안을 돌렸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양안관계에 대한 발언도 마찬가지. 무지식으로 가득찬 이 나라 정상은 물자 이동의 측면이 아닌 미국이 바라는 온도로 그대로 언급했다. 더 치명적인 이유는 중국 외교부의 반응이다. 그간 문재인 정부 때는 외교부장이 직접 거론했으나, 지금은 대변인 선에서 한국을 언급하는 것이 전부다. 그만큼 상대국들이 한국을 어떻게 대하는 지 답이 나와있다. 한국정부와 한국인들만 모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사실상 한국을 준적성국가로 분류했다. 대통령이 무개념하게 우크라이나로 향했다(수해 중에도 갔으며, 개전 이후 배우자가 동행한 첫 국가다). 중국은 한국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만하면 미일을 제외하고 모두 무시하는 수준이다. 하물며 미일도 우리를 정당하게 대우하는 것이 아닌 정황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모든 이들이 모르고 싶어한다. 관심이 없어서 모르는 것은 이해가 되나, 잘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듣고 있노라면 경탄을 금할 길이 없다. 아마 미일이 엄청 대우한다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일측은 현 정부가 모든 것을 내팽겨치고 그들의 제안을 받았음에도 단 하나도 내응한 것이 없다. G7 정상회담에서 와서 밥 먹고 가라는 것이 전부였다. 미국은 상대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의 블링컨 장관은 문 정부 이후 단 한 번도 방한하지 않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이랬다면 아주 가열차게 난리가 났겠지. 언론이 떠들고, 시민들이 또 그대로 믿었을 것이니까. 그럼에도 잠잠하다. 외교 실패? 무조건적인 굴종에 대한 언급과 논평은 없다. 언론에 다들 기대하는가? 그들은 피상적인 것을 다루는 집단이다. 한측 정상이 일 총독 노릇을 해도 별일이 없다고 말하지 않은가? 그 옛날 80년대에 보였던 참언론인과 훌륭한 대학생들의 기개와 얼은 온데간데 없다.
우리의 외교 위상 격하는 더욱 진행될 것이다. 문제는 다음에 정부가 바뀔 확률도 적을 뿐만 아니라 교체가 된다 하더라도 다시 회복하는데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정작 보수성을 부르짖으면 무엇하는가. 국익을 외치면 무엇하는가? 사회에서는 그저 그냥 하찮은 빨갱이 나부랭이로 대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전 정부에서 역대 정부의 총합보다 더 큰 성과가 나왔음에도 온 국민이 외면하고 싶어 안달 나 있었음을 잘 모르는 스스로도 똑똑히 목도했기 때문이다. 당분간 한국이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외교 현장에 있는 것은 보기 어렵다. G7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정상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기라도 했는가? 바이든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 시종일관 대화를 나눴다. 한 정상은 인사를 주고 받은 것이 전부였다. 한미일이 공고해질 수록 우리 몫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