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이후 런던이 안게 되는 손실
브렉시트가 영국에 안기는 이점도 있겠지만, 피해가 만만치 않다. 더군다나 영국은 연합왕국으로 구성되어 있는 준연방제의 국가체제를 고수하고 있어 실질적 지역이면서 사실상 국가라 할 수 있는 곳들의 피해가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영국의 수도인 런던이 안게 되는 피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에도 드러났다시피 런던은 대표적으로 유럽연합의 탈퇴를 반대했던 곳이다. 인구 대다수가 영국의 EU 잔류를 바랐다. 그러나 잉글랜드와 웨일스 표심이 주도하는 대세를 거스르지 못했고,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도 탈퇴표가 적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런던시민들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영국, 그 중에서도 런던이 유럽에서 지니는 의미는 실로 크다. 영국은 미국이 패권을 차지하기 이전의 전 패자로 세계를 호령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다져지고 수에즈사태에서 영국이 힘을 잃으면서 미국이 세계최대경제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이미 1962년에 영국의 국내총생산을 넘어선 미국은 본격적으로 지구촌 곳간의 열쇠를 영국으로부터 넘겨받았다. 그 와중에도 런던이 지니는 입지는 여전했다. 영국은 기축통화 중 하나인 파운드를 융통하고 있다. 기축통화를 갖고 있는 영국으로서는 굳이 유럽연합이 추진하는 통화동맹에 발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영국이 유로를 차용하는 것이 기득권을 놓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만큼 더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이에 런던은 세계적인 금융중심지로 어김없이 자리매김해왔다. 냉전이 도래하기 전 미국, 소련, 영국이 세계를 이끌어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전과 같은 독보적인 영향력을 과시하진 못했지만, 대국들 사이에서 영국이 국제정치의 주체적인 행위자가 될 수 있는 이면에는 든든한 경제력이 크게 작용했다(지금 일본의 예를 보면 이해가 좀 더 쉬울 것 같다). 영국은 이미 해양질서를 다져놓았기 때문에 각종 물류에 해당되는 운송법 등 여러 체계가 영국이 재단해 놓은 법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든든한 맹방이 한 편인 것을 감안하면 굳이 군사력을 집중할 필요가 없었다. 좀 더 솔직하게는 식민지들의 잇따른 독립과 기초 산업 부재로 인해 경제적인 동력을 상실했고, 이는 곧 영국이 더는 이전과 같은 패자로 군림할 수 없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럼에도 런던은 파운드를 쓰는 영국의 수도이자 유럽연합 회원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여전히 역내에서 만만치 않은 금융 중심지로서 자리매김했다. 1800년대부터 런던에서 모든 금융질서가 수립된 것을 감안하면, 굳이 엇나갈 이유도 없다. 냉전 이후 미국이 보다 본격적으로 패권을 휘어잡으면서 이야기가 달라지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굳건한 파운드의 힘과 역내에서 런던이 갖는 위치를 감안하면 런던에서 발생되는 금융업으로 인해 파생되는 일자리 등을 위시로 창출되는 자본규모는 여전히 적지 않았다. 그만큼 파운드화와 런던이 갖고 있는 역량은 이전부터 이어져온 전통까지 더해 여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국이 종국에 유럽연합을 떠나기로 하면서 런던이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이점이 사라지게 됐다. EU 회원국이지만 어차피 다른 통화를 썼기에 무슨 큰 차이가 있나 싶지만, 당장 유럽연합이라는 큰 배에서 하선하는 것만으로도 불확실성이 이만저만 커진 것이 아니다. 당연히 파운드화는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경제를 잘 모르는 본인이 전망한다는 게 웃기지만, 실제 국민투표 이후 파운드의 급락으로 인해 엔이 영향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세계주가가 요동치기도 했다. 아직은 회원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영국이 끝내 탈퇴하게 된다면 파운드가 갖고 있는 힘은 보다 더 약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곧, 런던이 더는 금융에서 중심가로 자리매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미 금융 및 이전 런던에 자리를 잡았던 업체들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를 쓰는 지역으로 많은 업종들이 옮길 경우 이는 런던은 물론 잉글랜드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수준이 정량화하기 쉽지 않아 어느 수준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또 연구 변수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값이 달라지겠지만, 분명한 것은 런던이 이전보다는 방벽이 약해지는 만큼, 런던은 물론 파운드가 지니는 가치는 보다 하락한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런던, 더 나아가 영국이 안게 되는 문제는 더 커진다는 뜻이며, 이는 최근 이슈가 됐던 북아일랜드 문제보다 더 심각하면서도 실질적인 사안일 수 있다는 것이다.
(19. 11. 20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