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체제에 대한 냉정한 접근
북한은 왜 지금과 같이 미사일을 폭죽놀이 하듯 마구 쏘아댈까.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단 냉전 체제가 종식되면서 북한의 생존권에 큰 위협이 따른 것이다. 소련이 붕괴됐고, 중국은 북한과 전쟁 중인 대한민국과 수교에 나섰다. 이도 모자라 미중, 중일 수교가 훨씬 더 이전에 체결되면서 북한은 고립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과 마주하게 됐다. 반대로 이 때 남북 관계를 필두로 외교 관계를 개선시킬 필요가 있었지만, 외교안보적으로 미국의 준식민지배를 받고 있다 여기는 한국과는 굳이 관계 개선에 나서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 때 자기들 보다 잘 살지도 않았으니, 손을 벌리는 것 같은 행동은 자존심상 용납하지 않았던 모양이다(대개 자존심만 내세우는 것은 내가 지니고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발상이 아주 잘 못 됐다. 사사건건 (지금도) 통일 및 민족의 번영을 말하면서도 갖은 도발을 일삼았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도 모자라 미사일 개발에 더욱 열을 올리면서 한국과 일본을 위협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미국과도 맞서겠다는 (굳이 쓸 때 없는) 배포를 발휘하기도 했다. 왕통이라 자신하는 김씨 일가가 북한 내 인민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저 같은 방법은 좋지 않았다. 오히려 숙일 때는 숙이고, 내세울 때는 내세우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이고 더 나아가 외교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꾸준히 아직까지도 자존심만 내세우고 있다.
북한은 병력 강화와 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길 바랐지만, 미사일과 핵을 마구 쏘아대는 이상 제재가 들어올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즉, 앞뒤가 맞지 않는 발상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대에 접어들면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지만, 적어도 김일성 주석 때는 충분히 북한이 폭 넓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김씨 일가의 안위 다음에 국가의 안전보장을 우선시하고 있는 종교적 집단이며 왕정의 행태를 띄는 북한은 그럴 수록 대내적으로 실력을 쌓으면서 외교 관계를 통해 실마리를 풀어나갈 필요가 있었다(물론 제네바 합의 이행을 두고 북한이 협상을 깬 것도 있지만, 미국이 골대를 옮긴 것도 없지 않다.).
하지만 북한은 극단적인 선택을 택했다. 자살 소동을 벌이는 것과 흡사 다르지 않다. 문제는 그 자살 소동이 이웃인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고, 자살을 택하면서 미국이나 일본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힐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즉, 일본이 친미적이면서도 반북적인 외교 행태를 취하는 것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일본으로서는 대한민국만큼은 아니지만 대북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북핵 위기를 안정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본도 북핵 위기로 아베 신조 총리가 권좌를 틀어쥔 만큼, 친미 중심 외교를 통해 북한이 그 이전처럼 미사일 위협을 조금씩 가하는 것이 결국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본은 당연히 친미 일변도의 외교를 취하고 있다.
북한은 현재 너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최근 미사일 실험을 통해 어느 정도 유추가능한 점은 핵실험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여전히 핵 보유에 대한 의문이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미 북한이 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사일 발사를 통해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겠다는 심산이다. 이를 통해 단계적 절차를 밟아 제재 완화, 이후 해제를 통해 종국적으로 비핵화에 나서겠다는 의중으로 이해된다. 이마저도 삐딱하게 본다면 어쩔 도리가 없지만, 일단은 북한이 북미 회담에 나선 것만 보더라도 비핵화 의사가 없다고 보긴 어렵다. 이게 김 국무위원장이 이전의 북한 지도자와 다른 것이며, 그를 믿겠다는 게 아니라 풀 여지가 생긴 점은 한국에게 상당히 긍정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아직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북한의 현 체제가 붕괴되길 바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김 위원장이 실각할 경우 북의 군부가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곧 전쟁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아지는 것을 뜻하며, 중국의 북한으로 간섭이 더 심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군사적 충돌 없이 외교적으로 북한과 관계 개선 및 평화 유지를 답보하는 것은 한국 입장에서 더욱 어렵게 된다. 혹, 급작스런 국가 붕괴가 동반되더라도 마찬가지다. 미군과 중국군이 북한을 두고 대립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종국적으로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바는 실로 작아진다. 이럴 경우 북한을 두고 한미중이 영유권을 동시에 주장할 여지도 없다고 보기 어려우며, 북한 전체가 완충지대가 될 가능성도 높다.
결국, 한국이 바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김씨 일가가 안정적으로 국가를 주도하면서 평화적인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다. 북한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이가 있다면 다소 협소한 시각이다. 미국과 중국은 인권 문제에서 얼마나 자유로우며, 대한민국에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도 있다. 즉, 이는 반대를 위한 반대다. 우리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되는 것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이 맞다. 진짜 보수주의자라면 오히려 이런 것을 감안해야 한다. 어느 쪽처럼 굳이 말로만 안보 타령하면서 군대도 가지 않고, 누구의 대변인이라 말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은 선택인 것은 굳이 묻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다만 셈법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면 용인 가능하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바라고 있다. 이견이 있다. 북한의 경우 미군 철수를 바란다고 볼 수 있거나 적어도 미국발 핵우산 배제를 원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북한도 결국 중국의 입김이 부담스러운 만큼, 미군이 오히려 동북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고 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미군의 존재로 인해 중국발 거대 입김을 배제할 수도 있으며, 역으로 이를 활용해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선다는 전제가 뒤따를 때 오히려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세현 전 장관님께서 한국이 미중 사이의 균형 외교를 펼치듯, 북한도 미중 사이에서 관계 개선 및 외교 관계 구축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신 것으로 스스로는 이해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한미군이 북한이나 중국이 철군하라고 한다한들 움직일까. 얼토 당토 않은 발상이다. 미군이 한국에 진주하고 있는 이유는 군사적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첫째, 냉전시기에 소련의 전력을 동서로 분할시키는데 목적이 있으며, 만만치 않은 군사 강국인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둘째, G2로 떠오른 중국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탓에 사드 배치가 이뤄졌을 당시 중국이 한국을 향해 비난을 아끼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왜? 미국보고 뭐라하진 못하니까. 만만한 한국만 건드린 것이다). 주한미군이 최전선에서 베이징과 상하이를 살펴보면서, 전쟁 위험이 있을 시 상당한 전력의 주일미군이 투입을 통해 종국적으로 북핵과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즉, 북한과 관계 개선이 원하는데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미군이 한반도에서 나갈 일은 죽어도 없다. 이와 같다면 북한과 관계개선에 나서면서도 억지로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우리가 이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북한과 이야기하면 빨갱이부터 미군을 등지고 어떻게 살 수 있냐는 발상은 지극히 사대주의적인 것이며, 우리의 저력을 에둘러 낮추고자 하는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대개 이들은 한국을 선진국이 아니라고 표방하고 있으며, 외교적인 사안에서 미국을 신줏단지처럼 모시고 있는 이일 가능성이 높다. 또 이 말을 하면 한미동맹의 경색을 말하는 이가 있는데, 북한과 관계가 개선된다고 해서 한미동맹이 약해질 이유는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흑백논리를 고집한다면, 외교를 모르거나 국가를 이끌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전쟁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여타 국가들이 내란과 내전으로 겪은 것을 조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전쟁의 참상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한반도에서 중일이 그간 얼마나 격돌했으며, 또한 한국전쟁이라는 전혀 쓸 때 없는 역사적 비극을 겪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전쟁을 막는 것이 우선이다. 동시에 한국의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지나친 친미와 반북을 언급하는 순간 우리의 선택지는 더욱 줄어들게 된다. 평화를 주장하면 무조건 빨갱이인가? 종북이 아니라 평화가 있어야만 우리가 안전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안보를 가장 먼저 우려하는 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덕목이 아닐까. 한국은 충분히 군사강국이며 안보에서 잘 다져진 국가이기 때문이다.
(19. 5. 28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