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죽놀이에 대한 진지한 고찰
북한이 예상했던 데로 연초에 언급했던 '다른 길'로 접어들 모양이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금년 신년사에서 비핵화 협상이 여의치 않을 경우 다른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 밝혔다. 이미 판문점에서 벌어진 남북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의 선언이행이 동반되지 않는데다 설상가상으로 베트남에서 진행된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종결되면서 북한의 이와 같은 행동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나마 기적적으로 판문점에서 제3차 북미정상회담과 남북미 회동이 벌어지면서 여지를 남겨뒀지만, 약 6개월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실무진은 이전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현재 북한은 대한민국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높다. 이미 지난 해에 벌어진 정상회담을 통해 결정된 사안들이 좀처럼 이행되지 않고 있어서다. 철도 연결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지난 평양에서 벌어진 남북정상회담에서 다각도로 남북관계 개선에 합의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의된 제재에 의해 이와 같은 행동에 나서지 못했다. 북한은 한국이 제재에서 예외를 두고서라도 경제협력을 위한 첫 삽인 철도 연결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바랐지만, 한국이 미온적으로 나오면서 불만을 서슴지 않고 쏟아냈다. 김 위원장이 현대건설이 지은 관광시설을 덜어내라고 한 이면에는 한국의 미온적인 집행과 소극적인 태도에서 나온 강한 불만이다.
북한의 급박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을 갖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는 미국인 모두가 싫어하지만 원하는 대통령으로서 역할을 해왔지만, 재선이 되기 위해서는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여느 미 대통령들이 그랬듯 재선에 성공할 확률이 낮지는 않지만, 이전에 비해 큰 장점이 다소 희석된 부분은 어쩔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임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런 만큼 북한에서 급한 것은 단순 경제적인 국면 외에도 정치적인 상황에서도 급박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그러나 북한은 그간 여러 차례 국제사회의 천덕꾸러기 역할을 했다. 최초 지난 1990년 북미정상회담 성사를 남겨두고 미국이 협상조건을 바꾸면서 어긋난 것을 제외하면, 비핵화조약에서 탈퇴한 바 있으며, 여러 차례 한국을 향해 도발을 일삼는 등 국제사회가 비준하고 이행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를 감안하면 자기네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적이 한 두 번도 아니면서 국제사회의 통큰 제제에 막혀 한국을 향해 행동도 하지 않는 집단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더군다나 미국과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로 모든 조약이나 선언을 비준하는데 있어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즉, 결정사안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보다 깊이 이해해야 하는 등 셈법이 복잡하다. 북한처럼 사이비집단의 이종이면서 왕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곳과는 엄연히 다른 논리가 통용되고 있다. 즉, 북한의 논법이 오히려 더 엉망에 가깝다.
본인들은 시설이 미비해 각종 연락망을 취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면서도 한국을 향해서는 비준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등, 어린 아이 떼쓰는 마냥 국제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일 관계가 경색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도 북한이 생각이 있다면, 한국에게 손을 내밀어 좀 더 외교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비핵화라는 큰 국면이 우선이지만, 북한 외교집단이 생각이라는 것과 전략이라는 것을 같고 있었다면, 이참에 일본을 해당 국면에서 더욱 배제시키면서 (북한 입장에서는) 한미일 공조의 약화를 도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해당 국면에서도 이득을 챙기지 못했다. 이를 보면 군부가 지배하는 군사, 외교, 안보 집단이 얼마나 무능한지 알 수 있다.
근래 자행된 미사일 실험도 이해가능하다. 북한은 당과 군이 지배하고 있는 집단이다. 이에 당적 권력이 군부의 행동을 용인하면서도 자신들이 그토록 말하는 김 위원장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도 미사일 실험을 통해 군부를 통제하면서도 미국과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국면에서 좀처럼 해법이 나오지 않자 끝내 다른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국의 입장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선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비핵화 협상 자체가 미국이 우선권을 쥐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북한의 행동은 결국 이전에 저질렀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반대로 김 위원장으로서도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군부의 불만과 비핵화 사이에서 결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김 위원장은 군부 장성들을 데리고 백두산으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정세현 민주평화통일회의 수석부의장은 북한이 이전처럼 고난의 행군으로 접어들 수도 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했다. 이를 발판 삼아, 미중러북이 핵 군축을 위한 회담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했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중러와 함께할 일은 없다. 미국과 중국이 이를 받아들일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북한이 역으로 한국과 일본을 배제하고 외교무대에 뛰어들지 말라는 것은 없다. 다만, 미국과 중국의 입장을 감안하면, 성사될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핵심은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이 녹록치 않다고 적극 판단해 다른 노선으로 접어들 경우 다시금 이전처럼 핵개발에 열을 올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미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면 핵실험보다는 ICBM 점검에 나설 것으로 짐작된다. 이에 최근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에서 물자를 옮기는 것이 감지된 것으로 인지된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해체가 일정부분 결정됐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한국이 정상회담 이후 일절 행동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라 명분을 삼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이 하노이에서 셈법을 바꿨고, 이는 북한이 맞추기 쉽지 않은 것을 거듭 강조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는 일정 부분 예측 가능한 행동이다. 북한이 그간 쓸 때 없는 돈낭비에 나선 것만 보더라도 충분히 예상할 만한 사안이다.
결국 비핵화에 나서기 위해서는 선결적으로 남북이 일정부분은 길을 틀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비준한 제재로 인해 여의치 않았다. 이럴 경우 북한은 한국에게 떼를 쓸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에 모습을 보이며 진정성을 말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테면 국제연합총회에서 김 위원장이 연설을 하거나 이용호 외무상이 대독을 해서라도 이를 적극 알릴 필요가 있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사일 발사에 대한 친서를 보내는 등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제재를 풀기에는 한계가 적지 않았다. 다시 말해 다른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을 설득해 미국이 제재 완화에 못 이기는 척 동의하는 방향을 유도할 필요가 있었으나 북한은 오로지 하나 밖에 보지 못했다. 그러면서 정작 중재자인 한국에게 촉진자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성토를 보낸 것이다.
만약, 제재가 일정 부분 완화됐다고 가정을 하면, 우선 금강산 관광 재개와 함께 북한의 철도 보수를 한국 인력이 담당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로 인해 길이 열리면 북한도 여유가 생기는 만큼, 이를 발판 삼아 미국이 바꾼 셈법에 일정 부분 동조했을 수 있다(물론,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극히 낮은 이야기다). 그러나 북한은 정작 꼿꼿하게 자신의 입장만 고수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정작 시간은 북한의 편이 아니다. 미국이 정권교체가 되고 한국에서도 문 대통령과 같은 인물이 더는 없는 것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북한이 좀 더 비위를 맞추는 척 진행해 나갈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전략은 거기까지였고, 무엇보다 이면, 삼면의 외교적 수를 진행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집단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저와 같은 것을 감안하면 미국이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포용적이고 최선진지다운 아량을 베풀 필요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미국이다. 미 정서에서 대통령이 북한 최고지도자와 만난 것도 이미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면서 돌파구가 마련되어 왔다. 그러나 결국 선언적 의미에서 실증적 의미로 전환하지 못했고, 양 실무진과 한국의 입장 한계로 인해 비핵화 국면은 더는 진전을 얻어내지 못했다. 즉, 북한이 쓸 때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군부를 비롯한 지도체제의 무능과 좁디 좁은 외교적 안목의 실패로 인해 다시금 한반도 정세가 얼어붙게 됐다는 점이다.
시계는 다시 2018년 이전으로 돌아갔으며, 다시는 지금과 같은 국면이 오진 않을 것 같다.
(2019. 12. 9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