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로 몰린 이란과 미국-이스라엘의 대립
서아시아에 다시금 전운이 감돌고 있다.
지난 11월 27일(이하 한국시간) 이란의 핵과학자이자 이란 국방부의 차관급 인사인 모센 파크리자데가 암살당했다고 전했다. 지난 주에 현지를 필두로 굴지의 매체들은 특보로 이번 사건을 알렸다.
사건 경위와 암살 과정을 보면 이스라엘의 정보기구인 모사드의 소행인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개발에 이전부터 반감을 강하게 피력했으며, 최근에는 베냐민 네타나휴 총리가 직접 나서 이란의 핵개발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피습 과정을 보면 인공지능의 원격격발로 이스라엘의 짓이 유력하다. 다소 교외이긴 하지만 시가지에서 총격이 일어났고, 즉각 피살된 점을 봐서 이전부터 적극적인 사찰과 감시를 통해 정확한 시간을 계산해 이번 사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이란은 지난해에 솔레이마니 장군이 미국에 의해 피격된데 이어 이번에 차관급 인사이자 이란 핵개발의 핵심인사인 파크리자데까지 암살되면서 국방은 물론 국가에 큰 위기와 마주하게 됐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걸핏하면 암살로 자국 인사를 피습한 만큼, 이란도 이에 상응하는 반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실적으로 이스라엘의 고위급 인사를 암살하거나 전쟁을 일으키진 못하겠지만, 이란의 민심이 2년 연속 성날 것은 유력하다. 이스라엘의 이른바 (예고된) 돌출행동으로 인해 서아시아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으며, 미국이 이를 어떻게 수습할지가 단연 핵심 과제로 떠올라 있다.
서아시아 관계
이스라엘은 이전에도 이란의 핵과학자내지는 핵개발 권위자들을 잇따라 암살한 바 있다. 이번 파크리자데 저격까지 더해 총 5번이나 피격 사건이 일어났으며, 이란 정부는 해당 사안 모두를 모사드의 소행이라고 일찌감치 밝힌 사안이다. 파크리자데 암살시도가 한 번에 성공한 것으로 봐서는 수년 간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적시에 사살했고, 동승하고 있던 부인은 생존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계획이 정확했고, 한 치의 오차가 없었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 볼 법한 저격이 일어난 것으로 지난 솔레이마니 장군 피살과 똑같은 수준의 엄청난 정보전과 이후 전개과정을 담고 있다. 미군은 이라크 상공에서 솔레이마니 장군을 사살했고, 이번에 모사드는 지상에서 파크리자데 차관을 전격 피습했다.
이번 피습에 앞서 네타나휴 총리가 이란의 핵개발을 언급한 점과 함께, 아브라함딜(이스라엘-UAE-바레인 수교)와 맞물려 보면 이스라엘은 수니파와는 외교노선을 구축한 반면, 시아파와는 철저하게 대립할 뜻을 보였다. 그간 이스라엘이 건국한 이후 수 차례 중동전쟁의 결과를 보면, 유대교와 시아파의 대결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암살 사건은 단순히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아주 오래 전부터 기획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피격 과정에서 오차가 야기되지 않았고 추가적인 사상자가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모사드의 작전수행이 얼마나 대담했는지 알 수 있다. 동시에 총포가 탑재된 차량이 사건 이후 곧바로 폭파된 점을 고려하면 너무 정확해 충격적일 정도다.
즉, 서아시아의 외교 구도를 보면 큰 틀에서 수니와 시아가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수니파 국가들과 함께하기로 한 셈이다. 아브라함딜을 통해 이미 드러난 가운데 이번 암살까지 더해 서아시아의 질서는 보다 명확해졌다. 돌이켜 보면, 트럼프 행정부가 JCPOA(이란핵협정)에서 탈퇴한 이후 서아시아 관계가 냉각되고 있으며, 시아와 수니의 대결이 극대화되고 있다. 미국은 이를 적절하게 이용해 우방인 사우디와의 관계를 개선해 무기 매매를 통한 이익 창출에 관심이 있는 것이 1차적인 이유다. 2차적으로는 중국과 궤를 같이 하는 이란을 간접적으로 견제하겠다는 뜻이며, 국제사회 여론을 반중-반이란으로 몰아가겠다는 뜻이다. 이스라엘도 미국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는 만큼, 정치적 이권을 노리면서 반이란을 통한 미 전략에 편승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물론, 미 전략과 상관없이 이스라엘은 여러 차례 이란의 핵개발 권위자를 암살한 바 있어, 비단 미국과의 이익과 상관 없이 독자적으로 진행됐다고 볼 여지도 차고 넘친다. 이스라엘은 서아시아 정세에서 늘 폭탄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팔레스타인을 끝까지 밀어세우고 있으며, 최근에도 미사일 발사를 멈추지 않았다. 또한 골란 고원 차지 문제 등을 빌미로 시리아와 레바논과 접경 지역을 사실상 탈취하고 있거나 분쟁을 격화하고 있다. 골란고원에서 발원하는 수자원이 상당하기 때문. 이는 이스라엘의 식수 확보와 직결되기 때문에 골란 지역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필두로 서아시아에서 꾸준히 분란을 조장하면서 엄청난 대자본으로 미 정가를 움직이고 있기에 타국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거슬리는 존재를 적극 저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관여 및 관리
이번 피격 사건 이후, 미국의 차기 정부가 이를 어떻게 수습할지도 관건이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 최종적으로 당선됐다. 바이든 당선인은 오바마 행정부 당시 부통령으로 그의 대통령 취임은 곧 오바마 행정부 3기 출범이라고 봐야 한다. 이에 이란 문제를 다시금 오바마 행정부 당시로 되돌릴 여지가 없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핵협정에서 탈퇴했고, 이후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미국의 부담도 점증했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에 엄청난 전략자산을 수출하면서 이익을 손에 넣었으나 대신 미국이 짊어져야 하는 부담도 늘어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차기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어떻게 관리할지가 단연 주목된다.
현실적으로는 핵협정을 다시 맺을지가 주목된다. 그러나 이란이 이에 동조할 지가 관건이다. 정권 교체 이후 협정의 일방 파기라는 불가역적인 조건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이란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서 자유롭지 못했기에 현재 경제사회적으로 피해가 심각하다. 여기에 만 1년 사이에 걸친 이란 정부의 핵심 인사가 모두 피살된 만큼, 민심의 분노 또한 상당하다. 이에 미국이 이전처럼 다수의 중재자(UNSC, EU, 독일)를 불러들이면서 협정을 맺을 지가 중요하다.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솔레이마니 피살 이후 악화된 점을 고려하면 중재자가 개입해야만 하는 상황이긴 하다. 즉, 핵 협정이 종전처럼 다시 체결될 지, 체결된다면 어떤 국가가 중재자로 나설 지, 협정의 조건은 전과 동일할 지가 핵심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핵협정 탈퇴와 남북관계 개입을 통해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극대화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의 핵문제는 동결로 대처했고, 동아시아에서 야기된 안보/외교 사안은 관망하면서 미일동맹 중심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이에 바이든 당선인도 오바마 행정부 당시의 관점과 엇비슷한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오바마 행정부가 끝난 이후 4년 사이에 서아시아 정세는 시리아 사태와 이라크 문제까지 더해 더 복잡다단하게 전개되고 있어 적극적인 개입이 이어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또, 이란의 핵문제를 동결로 결정한다면 사우디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이에 대한 외교적 장치 마련도 뒤따라야 한다. 이번 사안으로 서아시아의 관계는 더 난이도가 높아졌으며, 미국은 사우디와 관계를 강화하면서 이란의 이탈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