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권력이 갖는 확실한 위력
문화를 언급할 때, 종교를 빼놓을 수 없다. 종교적 행태의 영향으로 문화가 자리를 잡고, 그 문화의 총합이 문화권으로 규명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새뮤얼 헌팅턴이 냉전 이후 '문명의 충돌'을 제시한 것을 보면, 지구촌에는 여러 문명이 지리적 접근성을 기반으로 문화적 군락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지구촌에 가장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유럽에서 발현된 기독교 문명이다. 어느 종교나 여러 분파가 존재하지만, 기독교는 크게 천주교, 정교, 개신교까지 더해 많은 종교로 나뉘어져 있으며, 세부적인 종파까지 다를 정도로 그 형태와 색깔을 달리하고 있다. 즉, 범기독교 문명을 예로 들면 단순 유럽과 앵글로아메리카로 대변되기 쉬우나 러시아와 제국주의 시대에 영국의 영향 아래 놓인 호주와 뉴질랜드 등 기존 영연방과 프랑스 식민지까지 두루 거론하면, 기독교는 지구촌에 가장 다양하게 포교가 된 종교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인 성탄절은 가장 큰 명절이며, 이는 한국에 추석과 설날처럼 똑같은 기독교에 근간을 둔 서양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게다가 연말연시라는 분위기와 함께 주변 이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날로 남아 있으며, 북반구에는 겨울인 만큼, 산타클로스, 사슴, 눈까지 더해 가장 큰 영향력을 주는 문화적 요소로 남아 있다. 어린이들은 선물을 기다리며, 어른들은 아이의 선물을 준비하면서도 가족과 함께 연말을 맞을 준비에 나선다. 각기 다른 설렘과 기쁨을 안고 성탄을 기념하기 위해 분주하다. 거리에는 성탄절과 연말에 걸맞는 노래가 거리를 적시고, 추운 겨울임에도 많은 인파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분위기를 만끽한다. 영어로 된 노래가 길거리마다 울리고 있으며, 상점에 들어가더라도 이와 관련된 노래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가족과 가까운 이들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낸다. 즉, 북반구에서는 단순 종교적 기념을 넘어 이제는 연말연시에 빼놓을 수 없는 날이 된 셈이다.
이는 18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제국주의 영향이라 볼 수 있으며, 19세기에 영국을 위시로 하는 유럽, 20세기에 미국이 세계화의 전면에 나섰고, 지구촌의 패권을 움켜쥐면서 야기된 결과이기도 하다. 세계화의 다른 말은 서양화라고 볼 수 있으며, 20세기부터는 미국화의 여부와 유무가 선진국의 잣대가 되기도 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에서는 미국을 거론하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다. 미군정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군으로부터 받은 음식과 선물로 인해 성탄절이 좀 더 본격적으로 각인이 됐기 때문이다. 반대로 궁핍했던 한반도는 미국의 영향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으며, 그 결과 지금 세대를 살아가는 모두는 미국화된 복색과 복장, 언어와 음악을 듣고 자라고 있다. 즉, 미국은 확실한 원조를 통해 미국식 연성권력을 확실하게 한반도에 주입했으며, 한국은 가장 동방과 아시아에서 단연 가장 서양화된 국가이면서 확실하게 미국화된 국가로 남아 있다.
반대로 보면 지난 200년 동안 전지구촌이 서양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 지 알 수 있다. 비단, 기독교도 수가 적은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한국은 고대서부터 불교가 공인된 이후부터 역사를 보면, 불교적 행사가 더 중요한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불교가 국교가 아닌 문화적 형태로 밀려났으며, 이후 병탄과 전쟁 등 곤궁한 시기를 거치면서 미국식 정치제도와 문화양식이 자연스레 이식됐다. 상류층에서는 영어 사용 권장을 필두로 미국식으로 시작되는 것을 시작으로 따라하기에 나섰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옛날 중국식을 추종했듯이, 이제는 미국식으로 모든 것이 변모해 있다. 즉, 성탄절을 보면 미국이 지니고 있는 연성권력이 얼마나 크며, 더 나아가 영어권이 갖고 있는 현재 문화적 힘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다. 반대로, 중국이 최근 중국식 문화양식 전파에 상당히 앞장 서고 있으나, 반중 이미지까지 더해져 미국이 제대로 지구촌에 안착시킨 문화적 행태를 바꾸긴 쉽지 않다고 봐야 한다.
성탄절에 대한 문화는 당연히 가족내지는 가까운 이들과 함께 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성탄절이 태평양을 건너는 사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상대적으로 젊은 층을 위한 날이 됐으며,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석가탄신일은 장년층, 예수탄신일은 청년층을 대표하는 문화적인 행태로 남아 있으며, 그 중에서도 연인 관계를 위한 날로 남아 있다. 성탄절은 한국에 잘 자리를 잡았으며, 모든 젊은 이들이 미국식 언어를 비롯한 문화적 양태를 보이고 있는 결과이기도 하다. 위계를 중시하는 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한국에, 들어온 성탄 문화는 당연히 젊은 층 위주로 그 맥락을 함께하고 있으며, 연말이라는 시기적 특수, 겨울이라는 계절적 요소, 다소 활기찬 분위기와 맞물려 더욱 위력을 떨치고 있다. 한국에는 천주교도와 개신교도가 인구의 약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점을 고려하면 동아시아에서 상당히 높은 비중을 자랑하고 있으나, 반대로 인구 전체 대비 기독교 수가 많지 않음에도 성탄 문화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문화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다소 이채롭게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성탄절에 본 가장 멋있는 장면은 법정 스님께서 생전에 종로의 명동성당을 방문해 정갈하게 합장하면서 아기 예수의 탄신을 진심으로 축하한 것이다. 정작, 각 종단을 대표하거나, 꼭 종단이 아니더라도 각 종교를 대표하는 참성직자 간의 교류를 보며, 많은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신도랍시고 어설프게 종교를 흉내내고 다니는 이들이 정작 자신이 훌륭하다고 생각해 모시는 절대자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으며, 정작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성탄절은 기독교 문명에게 중요한 날이며, 이제 결과적으로 지구촌에서 연말을 맞는 첫 의미 있는 날로 가족과 함께 한다는 문화적 양식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게다가 금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인해 많은 이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힘든 한 해를 보낸 만큼, 이번 성탄에는 모두가 야외 활보가 아닌 자가에서 가족과 함께 연말연시의 의미를 다시금 새기기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