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진다. 뜨거운 물이 머리 위로, 어깨로, 등으로 흘러내린다. 욕실 문을 잠갔다. 이제 아무도 들을 수 없다. 그제야 운다.
소리 없이 운다. 물소리에 묻혀서 아무도 모른다. 눈물이 물과 섞여 배수구로 흘러간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5분일 수도, 15분일 수도 있다. 시간이 의미 없다.
왜 우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하나의 이유가 아니라 쌓여온 모든 것들. 오늘 회의에서 들은 말, 어제 못다 한 일, 지난주부터 미뤄온 걱정들. 그리고 그냥 피곤함. 존재하는 것의 피곤함.
사람들 앞에서는 울 수 없다. 회사에서도, 가족 앞에서도, 친구 앞에서도. "괜찮아?"라고 물으면 "응, 괜찮아"라고 대답해야 한다. 진짜 괜찮지 않다고 말하면, 그다음이 더 힘들어진다. 설명해야 하고, 위로받아야 하고, 그 모든 게 부담이다.
그래서 샤워실이다. 여기서는 아무 설명도 필요 없다. 그냥 울면 된다. 물이 계속 흘러서 눈물을 씻어준다. 증거가 남지 않는다.
처음 샤워하면서 울었을 때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하지만 울고 나니 조금 가벼워졌다. 마음속에 가득 차 있던 뭔가가 조금 빠져나간 느낌. 그 이후로 샤워실은 나만의 해방구가 됐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이렇게 운다. 특별히 힘든 일이 없어도, 그냥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몸이 원하는 것 같다. '이제 그만 참지 말고 좀 풀어내라'라고.
울음이 멈추면 얼굴을 씻는다. 찬물로 눈 주위를 식힌다. 거울을 본다. 눈이 빨갛다. 하지만 곧 가라앉을 것이다. 20분쯤 지나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욕실 밖으로 나온다.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는다. 거실로 나가면 평소와 똑같은 얼굴로 돌아와 있다. "샤워했어?" 누군가 묻는다. "응" 대답한다. 그뿐이다.
샤워실에서의 눈물은 비밀이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시간. 여기서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선다. 물과 함께 흘러내린 눈물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내 안에서는 무언가를 정화시킨다.
버티기는 때로 몰래 우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것. 샤워실 안 15분이 나를 다시 세우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