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라는 말을 되뇌다 보면 그 단어에 배인 어떤 냄새가 나를 질리게 했다.
마치 오래된 생선처럼.
사람들은 종종 누군가를 뭐라 부르기 애매할 때 ‘저기,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미용사든, 의사든, 낯선 사람에게도 예의를 담아 부르는 그 말.
그런데 정작 그 단어를 나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 불편하다.
내가 '선생'이라고 말하는 순간 마치 내 삶 전체가 하나의 틀에 가두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겐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삶의 목적이 비웃음뿐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직업의 종류가 상관없겠지만.)
어느 날은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를 읽고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요즘 선생이 선생이냐."
그 짧은 문장은 칼을 든 강도처럼 날카로워 마음이 베인다.
우호적인 댓글도 있었지만 늘 상처는 단 한 줄이면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직업을 묻는 질문에 자꾸 망설인다.
소속도, 교과도, 학교도 어쩐지 감추고 싶어진다.
며칠 전,
친구와 함께 온 한 아이가 수줍게 편지를 건넸다.
"2학년이 되는데, 거기서도 선생님이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선생님은 어디서나 친절하시니까
꼭 다른 학교에 가서도 즐겁게 수업하세요. 보고 싶을 거예요. ㅠ”
꼭꼭 눌러쓴 연필의 글씨.
귀퉁이가 접히고, 토끼 캐릭터가 프린트된 편지지에 담긴 아이의 마음.
편지라고 말하기엔, 그건 선물에 가까웠다.
나의 수업에서 무언가 재미를 느꼈다는 고백은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지만 짓누르기도 했다.
사무실에서는 동료들과 “어떻게 정년까지 하냐”는 푸념을 나누었다.
요즘은 다른 직업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있다.
어딘가 더 가볍고, 더 자유로운 일을.
하지만
졸업한 아이의 부모님이 드디어 자신의 아이가 대학에 간다고 보내온 커피 쿠폰,
작년 제자가 가지고 온 사과 주스 한 병,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음 날엔 피로회복제와 비타민제를 들고 온 아이들.
그리고
“보고 싶을 거예요”라는 한 문장이 나를 붙잡는다.
(정말 진심인 선생님이 내 곁엔 많다. 이런 물질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삶을 태우는.)
“어디서나 친절하시니까”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정말 어디에서나 친절해야 할 것만 같아서.
좋은 선생님이라면, 늘 좋은 사람이어야 할 것만 같아서.
이 글을 마치면
컬러 프린터로 예쁜 편지지를 한 장 뽑아야겠다.
서랍 속 연필을 꺼내, 조금은 촌스러운 지우개가 달린 그 연필로 나도 편지를 써볼 생각이다.
To. 다원이에게
'어디서나 친절하시니까'라는 문장이 좋아.
그 문장을 곱씹을수록,
내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그런 모습으로 남았다는 사실이 참 고맙고 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