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도망치지 않으려면

by 고양이

감정이 깊어질수록 들키는 게 두려웠다.
그게 누군가에게 드러나는 순간, 나는 어딘가 약자가 된 기분이었다.


살면서 누굴 이겨보겠다고 기를 써본 적 없다.
하지만 약해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약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주변엔 너무도 쉽게 부서지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을 지켜보며 나는 마음속에 스스로의 역할을 정해두었는지도 모른다.
강해야 한다고 적어도 무너지면 안 된다고.


그래서 누군가 가까워지면 본능처럼 도망치는 내가 있었다.
감정이 더 깊어지기 전에, 들키기 전에, 무너지기 전에,
그 앞에서 흔들리기 전에 말이다.


확신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었다.
이 관계가 어디로 갈지, 지금 이 마음이 정말 맞는지, 내가 정말 사랑받는 건지.
확실하지 않으면 마음을 꺼내놓을 수 없었다.
신중함도 조심성도 아니었다.
그건 단지 불안이었다.

상대를 의심하기보다 나 자신을 점검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계속해서 확인하고 확인하면서도 끝내 확신하지 못했다.


불완전한 순간을 감당하는 마음, 그게 시작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지금 이 감정이면 ‘충분하다’는 그 단순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감정이 과열되면 출구를 만들었다.
탈출구. 비상문.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문을 마음 한구석에 준비해 두고 적당히 사랑하다, 적당히 떠났다.
그리고 늘 같은 말로 내 마음을 속였다.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그 문을 닫아야만 한다는 걸
누군가 앞에 서 있을 때는 뒷문부터 잠가야 한다는 걸 알지만.


'내가 가장 중요해'라는 말을 항상 되뇌면서도 나는 늘 내 감정을 미뤘고,
상대를 먼저 돌보는 보호자의 역할에 익숙해졌다.(이런 걸 클리셰라고 해야 하나)

그게 사랑이라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단지 편하게 사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나 자신을 숨기지 않고 한 사람 앞에 솔직히 서는 것.
감정을 들키더라도 그 순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건 정말 아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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