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야?”
“응, 여기 00 식당 앞.”
마음은 이미 도착했는데 그가 보이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은 같은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내 머릿속 지도는 접혔다 펴졌다 뒤죽박죽이었다.
나는 고속도로처럼 단순하고 넓은 길을 좋아한다.
좁은 골목이나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은 아예 들어설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
그런 길에는 늘 무엇인가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예감이 있다.
양옆으로 줄지어 선 차들 사이에서 어느 날은 어린아이가,
또 어느 날에는 고양이가 혹은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차 한 대가 지나가고 맞은편에서 또 다른 차가 라이트를 번쩍이며 다가오면,
나는 매번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선다.
분명 내가 먼저 들어왔고 갈 길도 더 짧지만 결국 기어를 R에 놓고 백미러, 사이드미러를 번갈아 보며
뒤로 후진하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고속도로에서도 나는 2차선만 달린다.
앞지르지 않고 옆을 넘보지 않으며 그저 흐르는 속도에 나를 맞춘 채.
1차선으로 넘어가면 괜히 마음이 바빠지고 뒤따라오는 차의 속도에 내 호흡까지 휘청인다.
얼른 오른쪽 깜빡이를 넣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도로 가장자리로 물러난다.
나는 ‘길치’다.
공간도 마음도 심지어 관계도.
길을 찾는 일이 언제나 어려웠다.
고등학교 때 나는 늘 B반이었다.
교과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반을 이동해 보충 수업을 들었다.
A반은 어딘가 특별해 보였고,
C반은 조금은 무관심해도 되는 분위기였다.
B반은 그 사이에 낀, 애매한 우리들의 자리였다.
영어 시간, 선생님은 단어를 화면에 띄우고 무작위로 이름을 불렀다.
뜻을 말하지 못하면 빗자루가 허벅지에 닿았다.
그날 몇 대를 맞게 될지는 누구도 몰랐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해석하던 날,
단순한 문장들이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는 걸 알았다.
그 힘듦이 시에서 비롯된 건지, 타인의 강요에 의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가 자초한 건지는
지금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도'를 아시냐고 물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道), 길이라는 한자를 들먹이며 따라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길을 알려줘 봤자 뭐해요. 전 어차피 또 길을 잃을 텐데요.'
집을 지으려면 땅이 도로와 맞닿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땅이 좋아도 길이 없으면 건물을 올릴 수 없다고.
길이 없으면 허가도 나지 않는다고.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마음이 울컥했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길에든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걸, 그 당연한 사실을 자주 잊는다.
나는 지금 길 위에 있는 걸까.
도망치지 않기 위해 쓰는 글이,
결국엔 도망칠 방법을 찾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쓰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지만,
그 순간 나는 다시 길을 잃는다.
지도를 봐도 방향이 보이지 않고 기억을 되짚어도 갈 길은 낯설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마음속 골목 어귀에 서 있는 걸지도 모른다.
길을 몰라 주저앉은 아이처럼 ‘여기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