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도시의 노을은 더 붉게 물든다

by 고양이

가이드는 말했다. 이곳이 세계 3대 선셋 명소라고.

바다 끝으로 천천히 물드는 하늘을 사진에 담기 위해 각국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휴대폰을 들었다.
누군가는 감탄했다.
" 와, 비현실적이다."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었다.


현실 앞에서 비현실을 찬탄하고, 비현실을 마주하며 ‘리얼리즘’이라 말하는 그 아이러니가 어쩐지 슬쩍 아팠다. 마치 너무 눈부신 걸 오래 바라볼 수 없어 감정의 차단막을 하나 더 씌우는 것처럼.


나는 노을을 이유 없이 좋아한다.
아니, 굳이 이유를 찾자면 이렇다.
돈을 들이지 않아도,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않아도, 고개만 들면 누구나 같은 하늘을 볼 수 있어서.
그것도 꽤 근사하게.

"정말 비현실적이구나."
내 옆에 서 있던 그가 중얼거렸다.

"근데 너 그거 알아? 도시의 노을은 더 붉게 물든대."
내가 답했다.


나는 도시와 시골의 경계에 산다.
건물은 드물고 별은 자주 보이지만, 행정구역상 ‘도시’라고 불린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가 사는 곳조차 애매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한적함이 좋으면서도, 이곳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땅값이 더 오를까 은근히 기대하는 이중적인 마음도 있다.
그리고 그 뒤엔 이곳도 도시처럼 번잡해지면 또 어디로 들어가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나날들.

하지만 이곳에서도 하늘은 종종 붉게 물든다.


왜 저녁 하늘은 붉을까?(미리 말하지만 지구과학 아니에요)

태양빛은 무지개처럼 여러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파란빛은 파장이 짧고 빨간빛은 파장이 길다.

낮엔 짧은 파장의 파란빛이 공기 입자에 부딪혀 산란되고 푸른 하늘을 보게 된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태양빛은 지구 대기를 길게, 비스듬히 통과한다.
이때 파란빛은 흩어지고 남은 건 파장이 긴 붉은빛뿐.

그래서 하늘이 붉어지는 것이다.


도시의 하늘이 더 붉게 물드는 이유는 공기 중에 먼지가 많기 때문이다.
먼지는 빛을 더 많이 산란시키고 그 결과 파란빛은 흩어지고 붉은빛이 짙게 남는다.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짧고 날카로운 감정들은 먼저 흩어지고,
끝내 남는 건 오래되고, 깊고, 무거운 마음들이길 원한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나도 붉어지길 바란다.

누군가의 눈동자도, 말투도, 걸음걸이도 더 따뜻하고 조금 더 아려오는 순간.

마음속 먼지들이 모여 만들어낸 그 사람만의 노을빛 같은 온기에 나를 말리는 시간.

붉어지는 건, 오래 머문 것들 인지도 모르겠다.

쉽게 사라지지 못하고, 시간을 들여 가만히 스며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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