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루아상을 만드는 시간.
오로지 나에게만 한정 지어 생각해 본다면 지켜야 할 게 있을까.
그래도 결국 마음을 떠올렸다.
보이지도 않고 어디에 있는지도 정확하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진다. 어딘가에 있다고.
마음이라는 게 있다면 나는 그걸 지키고 싶다.
나에게 지킨다는 건 단단해지는 일이 아니라 그 모습을 오래 유지하는 일에 더 가깝다.
상처 입히지 않고 쉽게 부서지지 않게.
그래서 나는 마음을 둘러싼 여러 겹이 필요했다.
시선이나 말, 선의인지 악의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의도가 불쑥 다가와 부딪쳐도 한 번에 무너지지 않도록.
마음에도 겹을 만들 수 있을까.
크루아상을 만들었다. 처음이었다.
쿠키나 머핀처럼 발효가 필요 없는 것들은 꽤 만들어봤지만 발효가 필요한 빵은 늘 망설여졌다.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효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두 번, 세 번. 그동안 온도도 계속 신경 써야 한다.
나는 보통 한두 시간쯤이면 결과를 볼 수 있는 일을 좋아했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마음이 먼저 흐물거리며 주저앉았다. 그러면서도 기다리는 일이 그렇게 싫지는 않다.
빵집에 가면 언제나 맨 앞줄에 당당하게 전시되어 있는 빵.
내 손바닥보다 더 크고 온통 갈색의, 근처에만 가도 고소한 버터 향이 기분 좋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그런 빵.
겹을 만드는 일은 접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접는다고 해서 경계가 사라지면 안 된다.
그걸 크루아상에서는 반죽과 버터가 한다.
버터는 쉽게 녹아버리기 때문에 서둘러 반죽 사이에 넣어 접고 다시 냉장실에서 차게 식힌다.
버터가 녹아버리면 새어 나오거나 반죽 속으로 스며들어 결이 사라진다.
결이 사라진다는 건 층이 아닌 덩어리가 된다는 뜻이다.
세 번 접고 늘리고, 다시 세 번 접고 늘리기를 반복한다.
마지막에는 이등변삼각형으로 자르고 살살 말아 오븐에 넣으면 좋겠지만, 한 번 더 발효를 시켜야 한다.
마음을 쓴 뒤에 나는 늘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따뜻한 공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구의 간섭도 없이 혼자 부풀어 오르는 시간이.
그러지 않으면 마음이 뒤섞여 빵도 떡도 아닌 애매한 식감이 되어버렸다.
마음의 결은 단번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기억이 겹겹이 쌓이고 시간이 그 사이를 지나가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럴 때면 시간은 나를 놀리는 것처럼 오히려 더 천천히 흘렀다.
버터가 끓고 반죽이 부풀며 그동안 눌려 있던 겹들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200도에서 20여 분간 구웠다.
사실 190도에서도 괜찮다.
겨울이었고 내 오븐은 그다지 힘이 세지 않아서 조금 더 분발하라고 기합을 넣는 것처럼 온도를 올렸다.
20분을 채우지 않아도 되고 25분을 구워도 괜찮다.
다만 자주 오븐 앞에 서서 부푼 정도와 겉면이 너무 타지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나 같은 초심자는)
모든 걸 오븐에게 맡겨버리는 건 아무래도 무책임한 일이라서.
완성된 크루아상은 결국 드러났다.
여러 번 접고 기다렸던 시간과 한 번쯤은 실패했던 접힘까지 모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마음은 매끈해서가 아니라 겹이 보여서 아름다운 게 아닐까.
나는 결국 부풀어 오르기 위해 몇 번쯤 눌렸던 걸까.
조금 못생겼지만 결은 살아 있었다.
강력분(빵용, 쿠키는 박력분)으로 반죽해서인지 속은 쫄깃했고 버터 향은 부드러웠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잘 구워졌다.
성공을 목표로 하지 않는 연습, 결과보다 하루의 감각을 기록하는 삶의 태도.
이것들은 베이킹을 하는 것과도 닮아있어서 마음이 힘들 때면 정말 조용하게 빵을 구웠다.
서툴러도 오븐에서 나오는 순간 그 노력은 두 배로 부풀어 내게 돌아온다.
딱 기다린 시간만큼, 적당히 발효된 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