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골라낸 내 방식 하나

이거 하나 익히기도 쉽지 않았다

by 윤나다



비우는 청소를 하는 편이다. 웬만해서는 내 손에서 살아남는 것은 많지 않다고 봐야 한다. 재활용 쓰레기로, 당근 마켓으로, 기증처로 빠르게 흩어져 사라지기 때문에. 그래서 청소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장갑을 찾는 날은 이 집의 무게를 꽤나 덜어내는 결말로 이어진다. 사실 이 얘기에서 '마음먹고'라는 말이 중요한데 일정한 주기도 없이 별안간 어느 날 아침에 토너로 얼굴을 닦다가 책장을 째려보면서 '널 정리하겠어!'라고 마음먹거나 주말 낮잠까지 다 자고 커피를 사러 나가려고 옷을 챙겨 입다가 옷장에 얼굴을 묻고서는 '다 버려야겠어'라고 불현듯 마음이 서는 날 모든 게 시작되는 것이다.


정리정돈으로 해결되던 날도 있었다. 얼룩지며 꽂혀있던 책들을 일괄 정리하여 보기 좋게 전시하거나 책들 앞에 자질구레하게 올려져 있던 여러 기념품과 소품의 자리를 옮기거나 보이지 않는 쪽에 치우는 것으로 만족하기도 했다. 더는 읽고 싶지 않아 덮어둔 책, 누군가에게 받았지만 열지도 않고 꽂아둔 책, 이유도 없이 그냥 있는 책들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작가와 책 사이에서 애정 없는 시간만 잔뜩 먹어가고 있음을 자주 목격했으나 정리된 것으로 됐다 싶었다. 그러다 어느 밤엔가 책장 앞에 서 있다가 몇 권의 책을 보고 자각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저 책을 읽고 싶지도 않고 읽을 수도 없을 텐데. 더는 내 인생과 함께 갈 수 없는 책을 모두 골라내는 일을 해야겠다고.


내 주변 물건을 정리하는 방식은 여러 단계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데 결국 어느 때마다 앞으로의 인생과 함께 갈 것과 아닌 것을 골라내는 일이 필요했던 건 확실하다. 애정으로 골랐던 것이든 포장에 끌렸던 것이든 더는 보기 좋게 나열하는 방법과 눈에만 안 보이면 되는 수법으로는 함께 시간을 통과할 수 없다는 걸 체감하게 됐다. 이대로 같이 더 가봤자 결국 짐이 된다는 것을.


무엇을 해도 아무런 소득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시절, 나를 읽는 일에 매진하는 거라고 가난한 합리화를 시전하던 때 내 인생의 필요한 기술 하나가 버리기였다는 걸 제대로 각인한 사례들은 내 몸에 여러 에피소드로 압축되어 흐르고 있다. 내게 일어난 일을 해치우며 꾹꾹 밟아 나아갈 때 그 끝에서 건져 올린 건 대단한 교훈이나 깨달음보다 나로 잘 살아가는 방법 하나를 잘 골라내는 일이었다. 꿈꾸던 일을 접고 다른 방향으로 마음을 돌릴 때, 서로에게 남은 미래가 없음을 확인했을 때, 이대로 사는 풍경에 물릴 만큼 물려 다른 걸 보고 싶을 때 나는 잘 버리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닌 일을 끝끝내 붙잡고 있을 기운도 없거니와 내가 가진 추진력이라면 어디로든 갈 수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 떠난 일에 내 시간을 더 쓸 수는 없었다.


지난 주말에 새 컵들을 기증처로 보냈다. 컵을 좋아해 눈에 띄는 것은 다 사고 싶어 끙끙대거나 일부러 더 끙끙대고 싶어 직구 사이트까지 열고 제발 앓게 해줘라는 마음으로 구경하던 날들의 결과가 수납장 한 층에 입주해있다. 계절마다 쓰고 싶은 컬러가 있고 음료마다 담고 싶은 디자인이 다 따로 있다는 걸 나만 아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런 마음으로 사다 보니 알쓰 주제에 술잔마저 탐하며 선을 넘는 일도 다반사였다. 결국 맥주잔에 우유를 마시고 막걸릿잔에 요거트를 부어 먹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예쁜 컵은 죄가 없는데. 그렇게 껴안고 살다가 가구 재배치를 하며 모든 컵을 꺼내 놓던 날 보았다. 찰랑대는 내 지난 욕망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겁고 아름답지 않음을. 이 욕망도 비우는 날이 왔다는 생각에 단번에 보내버렸다. 앞으로 일부러 끙끙 앓고 싶어 컵을 구경하는 일은 없겠지만 아이스 라떼를 마실 때 내가 좋아하는 컵의 크기, 디자인, 재질을 잘 알고 있으니 살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컵이 있다면 놓치지 않기로. 그런 행복은 버리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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