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가 되기 위해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는데, 왜 개발자가 됐나요?
면접을 보거나, 커피챗을 하거나, 프로그래밍을 가르칠 때 늘 듣는 단골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발이 재밌어서 개발자가 됐다. 문제를 직접 해결하면서 희열을 느꼈다. 재밌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니 남들보다는 좀 늦게 개발 공부를 시작했음에도 다행스럽게도 개발자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개발'이 재밌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불안하고 무서웠다. 프로그래밍을 공부한다고 하는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왜 하는 것인지, 지금 이 공부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일지 확신이 없었다. 운영체제, 데이터베이스, 네트워크, 자료구조, 알고리즘 등 남들은 대학 4년을 공부하는데, 내가 과연 이들의 노력을 따라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심지어 나열한 과목 중, 어떤 과목을 먼저 공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비전공자였기 때문에 적어도 4년 동안 공부하는 전공자들과 경쟁했을 때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공부해야 했다.
더 절망적이었던 것은 개발자로서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경험까지 있어야 했다. 전공자들은 인턴까지 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는데,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실력을 갖춰야만 했다.
"20대 후반에도 개발을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공부도 해야 하고 프로젝트 경험도 해야 했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개발자가 되기 위해 불확실한 미래에 도전하기로 했다. 내 선택이 정답일지 오답 일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선택한 길을 정답으로 만들어가야 했다. 도전을 하며 크고 작은 일들을 거쳐가며 노력한 결과, 결국엔 두려움을 이겨내고 현재는 개발자로서 일을 하고 있다. 어려움을 극복하며 오답이 될 수 있던 내 선택을 정답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개발자가 되기 위해 왜 이런 불확실하고 두려운 길을 걸으려 했는지 글로 적고 싶었다. 내 경험이 어쩌면 오늘도 개발 공부를 하면서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길일까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도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적는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런 이유에서였을까. 3, 4학년들만 듣는 '사회적 기업론' 수업을 스무 살에 과감히 수강했다. 수업을 들으면서 사회적 기업이야 말로 내가 가고 싶고, 가야만 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학교를 1년 휴학하고 21살의 나이로 '아름다운가게'에 입사했다. 1년 간 일하면서, 나도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사업 아이템을 만들어야 했고, 좋은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기획자가 되어야 했다. 좋은 기획자가 되려면 어떤 능력을 쌓아야 할까 고민하면서 이 고민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기획' 공부를 시작했다.
기획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기획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사업 기획, 행사 기획, 마케팅 기획, 전략 기획 등 기획에도 공부할 것들이 참으로 많았다. 어떤 기획을 해야겠다 명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추상적으로나마 누군가의 불편함을 해결하면서 이를 비즈니스 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기획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획 능력을 쌓고자 창업 동아리를 전전했다. 나의 비전에 공감하는 이들과 함께 현장을 돌아다니며 문제를 찾아다녔다. 그 덕에 인천의 작은 섬 '덕적도'의 관광 활성화를 위해 '호박 캠핑' 프로젝트, 대한민국의 무슬림 관광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 당뇨 환자를 위한 IoT 스마트 약 케이스 제작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돈도 많이 버는 성공한 사람이 되었어요~라는 해피엔딩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좌절을 거듭했다. 스마트 약 케이스를 만들면서, 약 케이스와 APP을 직접 연동시켜야 했는데, 기술이 전혀 없으니 기획한 내용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템 개발을 함께할 개발자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동업자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기술을 몰라서, 혹은 기술이 없어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다는 좌절을 경험하며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직접 아이디어를 개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 현실을 깨달았다. 늘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왔는데, 아버지는 퇴직을 앞두고 있었고, 어머니의 몸은 서서히 아픈 곳이 늘어만 갔다. 평생 나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었다. 이젠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할 것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늙어버린 부모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빠르게 돈을 벌어야 했다.
나이가 주는 무게감이 두려웠다. 창업동아리에 활동하면서 무조건 창업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나보다 어리거나 동갑인 친구들이 취업을 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볼 때면 부럽기도 했다.
늙어가는 부모를 생각해서라도, 현실에 직면하기로 했다. 창업은 못하더라도, 적어도 하고 싶었던 기획일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아간다면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업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기획자로 빠르게 취업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기업 기획자가 되기 위해 지원 서류를 쓰면서, 능력이 없어서 아이디어를 실현하지 못했다는 좌절의 순간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개발 공부를 시작한다면, 언젠가는 아이디어를 직접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 도전하지 않는다면 평생 좌절의 순간들이 기억 속에 남을 것 같았다.
선택해야만 했다. 빠르게 취업해서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행복하게 살 것인가, 혹은 내 인생을 위해 모든 걸 다 내려두고 도전할 것인가. 무조건적인 정답은 없겠지만,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부모님에게는 죄송했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나만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7살의 1월 1일. 처음으로 개발 공부를 시작했다. 막상 개발을 시작하니 기획을 처음 공부할 때처럼 엄청난 재미를 느꼈다.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지금 새로운 도전을 해도 괜찮을까, 공부가 막상 나에게 맞지 않는다면 시간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만 한 가득이었다. 하지만 막상 공부해보니 도전해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늦은 나이에 시작했기에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만 했다. 컴퓨터에 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작했기에 앞서가는 사람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개발 공부에 투자해야만 했다.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친구들, 취미, 여행 등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잠시 포기했고, 미래를 위해 정진했다.
기획자의 삶을 살아도 좋았겠지만, 참 그때 도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반복해서 든다. 그때 도전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평생을 좌절 혹은 열등감 속에 살았을 것 같다.
도전을 통해 의외의 이득도 있었다. 선심 쓰듯 충고와 조언을 전하는 이들이 많아졌는데, 어느 순간 충고와 조언은 가스 라이팅 공격으로 돌아왔다.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며, 내게 빨리 취업해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 정신 차려야 한다, 지금 도전한다고 따라잡을 수 있겠니 등의 충고 혹은 조언을 전했는데, 그걸 듣고 있는 시간 자체가 아까웠다. 덕분에 충고와 조언을 빙자한 가스 라이팅을 하는 이들과 과감히 인연을 끊을 수 있었다. 도전을 통해 자존감을 깎는 이들과 절연할 수 있었고, 대신 그들을 만나지 않는 시간을 내 인생을 위해 사용했다. 시간의 소중함을 크게 깨달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지금은 처음 개발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개발을 가르치며 기업이 직면한 문제를 코드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면서, 처음 개발을 공부하는 이들이 나는 어떻게 개발자가 됐는지, 왜 개발자가 됐는지,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와 같은 것들을 물어보곤 했다. 개발을 처음 공부하던 시절을 돌아보면 나 또한 선배 개발자가 작성한 글 하나하나가 소중하던 시절이 있었다. 왜 나는 개발자가 됐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 개발자가 될 수 있는지와 같은 글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개발자가 될 수 있겠지 하며 위로를 얻었다. 그랬던 내가 이젠 어떻게 개발자가 될 수 있었는지 질문을 받는 사람이 됐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초심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제는 나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니, 이젠 나의 경험, 혹은 시행착오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개발자로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와 같은 경험들을 공유한다면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끝으로, 오늘도 '나도 개발자가 될 수 있을까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혹은 '개발자가 되기 위해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김영하 작가의 말을 빌려 말을 전하고 싶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 자신이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프로그래밍을 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면, 언젠가는 개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도전이 두려워 망설이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일단 도전해보시길. 만약 오늘도 개발자가 되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면 정진하시길. 그 길이 때론 두렵고 힘들더라도 노력한 시간들이 모여 더 멋진 당신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정진하시길. 노력 끝에 당신이 개발자가 됐을 때, 언젠가는 왜 당신이 개발자가 되려 했는지 여러분들만의 이유를 찾아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