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데려온 고양이를 마지못해 보살필수밖에 없던 작가가,
중성화수술을 받고 넥카라를 한 채 마취가 덜 깨어 비틀거리면서도,
아들과 자신에게 걸어오다 넘어지고 걸어오다 넘어지고 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살짝 났고 그 뒤로 고양이에게 무장해제를 선언했다는 브런치 구독자의 글을 읽었다.*
'비틀거리면서도 걸어오다 넘어지고 걸어오다 넘어지고......'
이 대목을 읽다 내 어린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고양이가 떠올라 나도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밤의 고양이도 그랬다.
노랗고 하얀 줄무늬 털을 가졌던, 요샛말로 치즈고양이였다.
'야옹아' 불렀을까.
기억나지 않으니 이름도 없었나 보다.
어릴 때 살던 집의 지금은 없어진 사랑채 뒷방,
대나무밭에 가까운 그 방에는 시와 소설, 백과사전 등이 가득 꽂인 아빠의 책장이 있었다. 책을 읽으러 들렀다가도 서늘하고 어두운 기운이 무서워 밤에는 잘 가지 않는 방이었다.
그 겨울밤, 언니와 나는 웬일인지 그 방에서 자게 되었다. 그즈음 야위어가며 이상행동을 보이던 야옹이도 그곳으로 옮겨져 있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언니와 두런거리던 그때,
우리와 떨어져 문옆에 앉아있던 야옹이가 어깨를 움찔하더니 음식물을 왈칵 게워내었다. 소화되지 않은 누런 토사물이 쏟아졌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말라가는 것에 더해 구토까지 하는 걸 보니 어린 우리 눈에도 어디 아픈 게 틀림없어 보였다.
구토 후 몸을 추스르듯 꿈쩍 않고 있던 야옹이가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가는 다리로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우리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다리가 흔들거렸다.
곁을 잘 주지 않고, 한번 안을라치면 몸을 뻗대며 우리 몸에 발톱 생채기를 남기던 고양이가, 마치 '나 힘들어, 나 좀 안아줘, 당신의 무릎이 필요해' 하는 듯 우리에게 오고 있었다.
입과 수염에 토사물을 묻힌 채 휘청거리며 다가오는 야옹이는 너무 가련하고 처연했다. 한번 안아보고 싶어 어쩔 줄 몰라했던 그 마음을 더럽다고 밀어내 버릴 수 없었다.
나는 야옹이를 들어 올려 무릎에 앉혔다.
야옹이는 허벅지 사이에서 곧 편안해졌고 우리는 나란히 잠이 들었다.
외갓집에서 고양이를 데려왔다는 동생들 말에 너무너무 기뻤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내팽개치고 사랑채 뒷방 문을 열었다. 그곳에 새끼부엉이같이 거꾸로 된 세모꼴로 다리를 모은 아기고양이가 있었다. 주먹만 한 게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야옹이는 곧 안방으로 옮겨졌다. 우리와 같은 공간에 살며 세끼 밥을 함께 먹었다. 방 한구석에 고양이 물그릇과 밥그릇이 있었다.
할머니는 '사람이 자꾸 만지면 고양이는 말라죽는다' 말하시곤 했지만,
나는 야옹이를 안고 싶고 쓰다듬고 싶어 안달이 났다.
야옹이는 우리가 안아주면 아주 잠시 그대로 있다 기어이 발톱으로 할퀴고 품을 벗어났다. 내 손과 팔은 긁힌 자국 투성이었다.
어느 날 안방문을 여니 야옹이가 벽장을 향해 펄쩍펄쩍 뛰어오르고 있었다. 어림도 없는 그 높이에 닿으려 뛰어오르다 주저앉고 뛰어오르다 주저앉고 하였다.
벽장 속 북어포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우리와 함께 먹는 식사들이 부실했을까.
나는 몰래 북어포를 꺼내 한 귀퉁이 떼어 주었다.
그 무렵부터 토실토실 인형같이 부드럽던 야옹이는 조금씩 야위어 갔다.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어서, 자꾸 저를 안아보려는 손길 때문에 야옹이가 야위고 있는지 모른다 생각하니 슬펐다.
야옹이가 토했던 겨울이 지나고, 나는 도시로 전학을 갔다. 산골에서 살던 내가 세련되고 잘나 보이는 도시 아이들 속에 적응하는 것은 제법 고된 일이었다.
토요일이 되어 시골집에 와도 사랑채 뒷방문을 열어 야옹이를 한번 들여다볼 뿐이었다. 나의 앞가림만으로도 주말이 짧았다.
그렇게 몇 주 지난 토요일,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사랑채 뒷방문을 열었다.
야옹이가 보이지 않았다.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동생들에게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엄마에게 물었다. 고양이가 죽어버렸다고 했다.
죽은 야옹이는 어디 있냐 물었다.
엄마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뒤꼍 담장너머 대나무밭에 던졌다고 하였다.
'묻어줘야지, 왜 거기다 버렸어' 나는 원망했다.
야옹이를 찾아 어두컴컴한 대나무밭으로 들어갔다.
부서진 가재도구와 사금파리 조각과 수북이 쌓인 댓잎사이 노랗고 하얀 야옹이가 있었다. 얼음막대처럼 차갑고 딱딱하였다.
나는 야옹이를 안고 마을회관 앞으로 갔다.
회관 앞 공터에서 놀고 있던 동네오빠들에게 고양이 묻는 것을 도와달라 부탁했다.
순박하고 착한 오빠들이 선뜻 삽을 들고 와서
대나무밭 한 귀퉁이 뿌리가 뻗지 않은 평평한 곳을 파주었다.
싸늘하게 굳은 야옹이를 땅속에 넣고 흙으로 덮어 꾹꾹 눌러주었다.
대나무밭에 불쌍한 야옹이를 묻어주었다.
무성했던 대나무밭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텃밭으로 바뀐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나는 야옹이가 묻힌 자리가 어디인지 지금도 찾을 수 있다.
살아있는 것은 죽기 마련이고,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면 또 만나기도 하는 것이라지만,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짧게 머물다간 야옹이는
여전히 마음에 남아 나를 슬프게 하고 미안하게 한다.
그때는,
영양분 가득한 고양이 사료가 있는지도 몰랐고,
키우던 개나 고양이가 아파도 병원 데려가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던 시절이었다고,
또 나는
그저 안아주고 너를 묻어줄 줄 밖에 몰랐다고.
그때는 그랬었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될까.
브런치 글을 읽다 어린 시절 야옹이가 떠올라 나는 눈물을 흘렸다.
* 태생적 오지라퍼, 01화 그렇게 모든 일이 내 차지가 된다.